어느 틈에 교회에 발길을 끊은 냉담 청년이 많아지는 건 그리스도교 전체의 현실이다. 개신교 청년들도 여느 또래처럼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N포세대’ 현실에 지쳤다. ‘공평하신 하느님’ 사랑에 목말라 소극적 신앙생활이라도 이어가지만, 기성세대는 “너희는 신앙에도 열정이 없구나” 하는 몰이해로 일관한다.
팍팍한 생활에 쫓겨 시간을 쪼개야 주님을 뵙는 이 시대 청년들을 위해 개척된 이든교회(담임 한희준 목사)는 ‘하느님만이 주시는 조건 없는 포용’을 선사하는 사역(사목)을 하고 있다. 출석과 봉사·헌신을 강요하는 ‘노력 만능주의’ 신앙을 벗어나 청년들에게 ‘품는 공동체’가 돼주는 이웃 교회를 찾았다.
■ ‘포용’을 간직한 기독교인의 모임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에도 젊은 인파로 붐비는 8월 13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한희준 목사를 만났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전도단이 사람들을 비집고 배회할 때마다 청년들은 혐오성 선전에 불쾌해했다. “저러니까 내가 교회 안 다니는 거야”, “짬 내서 쉬러 나왔더니 기분만 잡쳤어”라는 앳된 볼멘소리가 들렸다.
한희준 목사는 “주님은 포용밖에 모르시는 분”이라며 틈바구니로 기자를 안내했다. 뜻밖에 향한 곳은 공사를 덜 마친 한 레스토랑 건물이었다. 계단을 걸어서 4층에 오르자, 테이블 서너 개가 놓인, 20명가량 들어가면 꽉 찰 법한 방이 나왔다. 그 앞에서 한 목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든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가 빌린 이 공간은 주일이면 예배 장소로 변하죠.”
이든교회는 “교회가 섬겨야 할 이 시대의 약자는 누구일까”라는 문제의식으로 기도해 온 한 목사가 2012년 개척한 교회다. 2001년부터 목회자로서 사역을 시작한 그는 주로 교육부, 청년부를 섬기며 자연스럽게 젊은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다. 청년들은 한 목사에게 ‘청년들은 열정이 없다’, ‘청년들의 비성경적 신앙관에 동조할 수 없다’며 밀어내는 기성세대 신자들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했다.
“교회는 청년들 편이 돼줘야죠. 말마따나 열정이 없으면 북돋아 줘야지 않겠어요?”
교회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번영신학’(주님은 자신을 섬기는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준다는 이해)과 소수자 혐오를 바탕으로 단결하는 기성 교회들과 달라져야 했다. 매 주일예배에 15명 정도가 꾸준히 나오는 작은 공동체이더라도, 모두가 서로 포용하는 그리스도교다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이른바 ‘불신 지옥’ 공포를 무기로 휘둘러 청년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이든’(옛말로 ‘어질고 착한’) 그리스도인 모임이다.
■ ‘사랑이신 하느님’을 너에게
이든교회는 신자들에게 어떤 의무도 지우지 않는다. 예배 출석, 헌금, 봉사 강요도 없다. 받아들여 주시는 주님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믿음으로 누구든 받아들인다.
무신론적 태도를 가진 교우들도 신앙 나눔 때 자신의 의심을 마음껏 이야기한다. 그러는 그들이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는 건 ‘어떠한 다름도 그분 사랑에서 당신을 떼어놓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공동체적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영적 교사로서 신자들을 동반한다. 주일예배 후 청년들과 신앙 관련 활동을 함께하고, 청년들과 더불어 향심기도, 도고기도(전구기도)를 바치며 그들이 각자 주님 앞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한 명 한 명 경청하는 것을 지향한다. 믿음에 대해 함께 연구하는 온라인 모임을 주중 열기도 한다.
신앙에 대한 고민과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이든교회에서라면 믿음을 잃지 않는다. 질타만 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나쁜 마음조차 터놓을 수 있는 따뜻한 주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이든교회에 다녀온 30대 중반의 안경찬 씨는 “성경의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목사들 설교에 불만이 매우 많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안 씨는 한 목사를 만나 반항적으로 질문했던 어느 주일을 떠올렸다.
막상 내뱉어 놓고도 안 씨는 “내 반항에 주님도 화가 나셨겠지”라며 두려워했다. “목사님 앞에서 벌거벗겨질 것 같다고 느낀 그 찰나, 오히려 따뜻한 옷을 덮어 주시는 주님을 느꼈다”고 안 씨는 말했다.
“기도 중에 주님이 말씀하셨단다. 네 얘기를 다 들어주는 게 나(목사)의 일이라고.”
목회자를 통해 전해진 주님의 포용은 안 씨에게 “내 마음이 어떤 상황이든 그분은 개의치 않으신다”는 뚜렷한 믿음을 안겨줬다.
“혼난다는 건 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저도 감추고 싶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주님은 그런 제 모습까지도 알고 계셨던 거죠.“
■ 조건 없이 품는 공동체를 꿈꾸며
“삶이 이미 지옥이 된 청년들에게 지옥이 뭐가 두렵겠어요.”
청년 대다수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기형적인 부동산 현실에서 자기 노력으로 집을 마련할 수도 없고, 취업난 속 독립해 버티려면 아르바이트로라도 해서 푼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 그들이 2시간 성경 공부하러 2시간 교회를 오가며 들인 4시간은 그에 상당한 생존 기회를 주님께 봉헌한 것과 같다.
청년들이 당하는 압박에 대한 기성세대의 몰이해는 청년들이 붙들던 신앙의 끈을 끊어놓는다. ‘가끔은 나를 소중히 대하고 싶다’며 소비주의적 태도를 보이면 “세속적”이라고, 봉사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자기밖에 모른다”고 비난한다.
한 목사는 오랜 사역 여정에 비춰 “청년부 요직을 선뜻 맡는 친구들은 그나마 시간·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두에게 공평한 주님 질서를 찾아 청년들은 교회로 향하지만, 그 교회조차 철저히 자본주의적 공간임을 알자 ‘하느님도 똑같구나’ 하며 떠난다는 것이다.
올바름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을 붙드는 교회의 태도도 청년들이 포용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탄압받는 참사 희생자와 노동자, 단죄받는 성소수자들을 보며 “왜 저 사람들을 외면하죠?” 묻지만, 기성세대는 “사탄에 넘어가지 말라”는 억지만 부린다.
한 목사는 “오히려 우리(그리스도교)가 청년들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과연 교회는 그리스도교만이 줄 수 있는 희망, 즉 ‘조건 없이 품는 공동체’를 청년들에게 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이든교회는 청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퍼브(Pub)를 여는 ‘루터스 테이블’(Luthers table, 루터의 식탁)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맥주를 빚어 순례자들을 환대하던 파르잠의 성 콘라도(1818~1894,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영성을 따른 프로젝트다.
한잔하러 모인 청년들이 신앙, 불신, 삶 그 어떤 주제든 망라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품어주는 기독교 공동체’를 느끼게 하는 것이 취지다.
“청년 세대에게는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고 위로받을 수 있을 곳이 필요합니다. 자기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밀려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죠. 천주교 형제자매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포용’을 안겨주는 똑같은 교회를 꿈꾸며 사역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