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이기 위한 구성원 간 상호의존적 관계, 그리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들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실현될까?.(의안집 3부) 분명히 교회는 ‘코린토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항상 어떤 장소와 문화에 뿌리내리고 그것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교회는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께 대한 예배와 복음선포라는 사명을 수행하는 공동체이다. 시노달리타스가 실현되는 자리 또한 그곳이다.
장(場), 물리적 공간 개념을 넘어서
의안집은 본당-교구-관구-주교회의-보편교회의 직선적 이해 방식을 극복하기를 요청한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이 질서에 따라 이루어져 있고, 필요에 따라 수행될 교회적 제도 개혁도, 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88항) 그런데도 의안집이 직선적 이해 대신 상호성, 혹은 상호내재성을 강조한 것은(3부 서론) 하느님 백성 구성원의 변화된 삶 자체가 지닌 공간적, 문화적 역동성 때문이다.
도시화와 세계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동으로, 과거처럼 생애 전체를 한 지역에서 보내는 이도 많지 않고, 주거지역과 활동지역이 다른 경우는 허다하다. 더욱이 디지털 문화의 확산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경험이나 개념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83-85항) 따라서 시노달리타스가 실현되는 장에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관계들이 전개되는 네트워크 환경도 포함된다.
지역교회의 가치, 그리고 하나인 교회
이번 시노드는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 곧 다양성과 일치를 중요시한다. 지역교회의 고유성과 다양성 존중이 상대주의나 개별주의의 허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구원이 어떤 장소와 시간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적합한 경험들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되기 때문에 지역교회를 존중하고, 지역교회의 전례적, 신학적, 영적, 규범적 전통이 가톨릭교회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복음은 하나이고 유일하기 때문에 하나이고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친교 안에서 실현한다.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그 문화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의 풍요로움에 대한 경험은 교회의 삶의 조건이지, 보편성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81항) 복음은 다양한 백성과 문화, 전통과 언어 안에서 표현되며, 이런 “형태의 다양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구원의 복음을 교회적 삶과 전례적, 사목적, 그리고 윤리적 표현들을 획일적으로 이해하지 않게 해준다.”(81항) 이 속에서 일치의 보증이 주교단과 교황의 역할이다.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장, 특히 평의회
본당이나 기초공동체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즉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이다. 본당 사제는 기도와 예배, 진리 증언과 봉사를 위해 부름받은 제자요 선교사로서 일하고, 수도자, 평신도, 신심 운동들, 사도생활단도 이 교회 실현에 참여한다.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장으로 의안집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평의회이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평의회를 사목활동의 계획과 실행, 평가를 위한 본질적 도구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의안집은 현행 교회법이 정한 구조들은 시노달리타스 스타일에 더 적합한 형태로 개선할 수 있으며, 그 구조들이 ‘교회적 식별과 시노드적 결정 과정의 주체가 될 수 있고, 권위를 행사하는 이들에 대한 설명책임과 평가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교회로 나아감에 있어 ‘가장 뛰어난 영역들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91항)
특히 의안집은 평의회의 구성 및 작동 방식의 개선을 제안하는데, 구성원 다수를 주교나 본당신부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방식, 공동체나 지역교회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뽑을 것을 제안한다. 특히 여성, 젊은이, 가난하거나 소외된 이들, 그리고 활동단체에 속한 이들만이 아니라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신앙을 증거한다고 인정되는 남녀 평신도들도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 또한 현행 교회법에서 그 설립이 재량에 맡겨진 평의회의 경우, 설립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시노드 여정에서 많았음도 언급한다.
지역교회를 넘어,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연합들
의안집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모습이 지역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개별교회들 간, 나아가 동방교회와 개신교와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제안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주교회의에 대한 것인데, 사회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각 사회 문화적 맥락에 적합한 전례, 규율, 신학, 영적 표현을 발전시킴은 물론 교의적 권위를 부여받은 교회적 주체로 주교회의가 인정되는 것이다. 주교회의의 교의적 권위 문제는 신학적 논쟁이 많은 주제이다. 이 외에 대륙 혹은 광역에서 결정을 위한 총회 개최, 결정 과정과 문헌 작성에 다양한 교회적 주체의 참여, 나아가 사회 조직들, 타종교 대표자들과의 경청과 대화를 위한 공간 마련도 제안된다.
일치를 위한 로마 주교의 봉사 그리고 탈중심화
지역교회의 중요성과 다양성의 인정과 함께, 주교회의에 교의적 권위까지 부여된다면, 교회 안의 일치를 위한 로마 주교(교황)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의안집은 교황의 수위권 교의를 재확인하면서, 교황이 시노달리타스의 보증임을 강조한다.(100항-101항) 의안집은 교황의 직무 수행 형태가 ‘건실한 탈중심화’의 전망 안에서 다루어져야 함을 언급한다.(102항)
사실 지역교회의 강조는 탈중심화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탈중심화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복음의 기쁨」(16항)에서, 그리고 시노드 여정에서 여러 주교들이 제안했다. “목자들이 ‘스승’과 목자로서 ‘자기 고유 직무’를 수행하는 때에 그들이 잘 알고 있고 또한 교회의 일치된 교리와 규율과 친교를 건드리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권한을 그들의 관할권에 맡기면서 늘 공동 책임으로 행동하고자 합니다.”(「복음을 선포하라」 21항)
탈중심화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로 로마 교황청의 교황과 주교단에 대한 봉사가 있는데, 의안집은 이에 대하여도 투명성과 설명책임의 원리가 적용될 것, 그리고 활동에 대한 평가를 제안한다.(105항)
세상 안에서 희망의 표징인 교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누구도 자족적이지 않으며 모두가 타자를 갈망한다. 이것은 의안집에 전제된 인간에 대한 이해이고,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세상 안에서 희망의 표징일 수 있다는 확신의 근거이기도 하다. 교회는 힘없는 이들과 곤경에 빠진 이들의 피신처, 폭우에 피난처, 폭염에 그늘이 되고자 한다.(이사 25,4 참조) 의안집은 어떻게 우리가 경청과 깊은 대화 안에서 살지, 어떻게 세례성사를 통해 받은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소명에 비추어 공동책임성을 살아낼지, 어떻게 모든 이가 자기 몫으로 참여하고 공동선을 위해 각자 받은 은사를 공유하면서 교회 내 구조들과 과정들을 변화시킬지, 어떻게 교회 안에서 권력과 권위를 행사할지를 질문하고 있다.(111항) 이는 한국교회도 함께 고민할 질문일 것이다.
글 _ 최현순 데레사 교수(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