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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보내주십시오] 성 베네딕도회 진 토마스 신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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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3월 10일, 29살 때 독일 함부르크에서 배를 타고 42일간의 고생 끝에 부산에 도착한 일을 ‘좋은 휴가’였다고 웃어넘긴 진 토마스 신부(토마스 모어·Joseph Wilhelm Timpte·91·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순분원). 진 신부는 한국에서 사제로, 교수로, 선교사로, 수도원 수련장으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올해 수도서원 70주년을 맞은 진 신부의 한국에서의 여정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선교사 꿈꿨지만 한국행은 뜻밖


“꼭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싶었습니다.”


선교사가 꿈이었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아 수도회에 들어와 양성 과정을 자연스레 받고 사제가 됐다는 진 신부. 1950년대 전 세계에 퍼져있던 공산주의의 심각성 때문에 그를 해결하기 위한 선교 열망이 커졌다.


“원래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파견됐습니다. 그냥 순명했죠.”


순명이 쉽지만은 않았다. 북한의 강제 노동 수용소를 경험한 선배 선교사들이 한국에 대해 조언해 주는 말은 언어를 배우기 어렵고 너무 춥다는 것뿐이었다. 처음엔 파견지를 바꿔달라 얘기도 해봤지만 수도회 결정에 순명한 결과로 한국에 온 것을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성 베네딕도회의 기본 원칙인 ‘순명’을 하면 하느님께서 은총을 내려주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 신부는 한국에 대한 첫인상으로 “너무 가난하고 비참해 보여서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학교와 병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판잣집이었고,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 밖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초가집뿐이었다. 진 신부는 “한국이 가난하다고 말은 들었지만 직접 심각한 현실을 마주치자 너무 슬프고 불쌍했다”고 밝혔다. 이 애처로운 땅에서 진 신부는 몇 년 안 되는 본당 사목을 시작한다.


33세에 수도원 수련장이 되다


“오토바이 타고 전깃불도 없는 거리를 달리며 공소를 찾아다녔어요. 스릴 있었죠.”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혹은 구호물자 때문에라도 세례를 받던 시절이었다. 경북 상주 서문동본당 주임으로 2년 있을 땐 신자 수가 2000명에서 2500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한국 이름도 지었다. 철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관련되도록 글월 ‘문’에 길 ‘도’를 써서 ‘문도’가 이름이 됐다. 원래 독일어 이름의 ‘진’을 성으로 써 한국 이름은 ‘진문도’가 됐지만 거의 병원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만 쓰고 평소에는 ‘진 토마스’로 불린다고.



본당에서 잘 지내던 진 신부는 갑작스레 왜관수도원 수련장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아빠스가 35세에 수련장이 될 수 있다는 교회법을 따르지 않고 로마에서 관면을 받으면서까지 33세인 저를 수련장으로 발령했어요. 너무했다고 생각했죠.”


한국 생활 4년 차. 한국말은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였지만 지난 29년을 보냈던 독일 문화가 더 익숙할 때였다. 뜻하지 않은 수련장 발령에 놀랍고 걱정됐지만 진 신부는 다시 순명했다.


“독일인들과 많이 다른 한국인들을 수련시키기 너무 힘들었다”고 그때를 회상한 진 신부는 수련장을 세 차례나 역임하며 15년 동안 현재 왜관수도원장인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를 비롯한 100여 명의 수도자 양성에 힘썼다.



‘말씀’의 선교사


진 신부는 상주 가르멜 수녀원 언저리에 예쁜 공소를 하나 지은 적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성당을 짓거나 다른 사업을 하는 능력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은총을 받은 것은 ‘말씀’ 쪽이 아닐까 진 신부는 조심스레 추측했다.


“저희 부모님과 이모, 고모 등 모두 학교 교사였어요. 그 유전이 어느 정도 있나 봐요.”


1965년 로마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진 신부는 30년간 왜관 가톨릭신학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학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고 신학원 원장도 역임했다. 영남지방 수녀들은 거의 자신을 안다고. 뿐만 아니라 피정 지도나 외부 강의도 많이 나간다. 진 신부는 “작년엔 두 번 정도밖에 피정 지도를 못 나갔지만 그 전엔 못해도 다섯 번은 나갔다”고 말했다.


말씀으로 무장한 선교사로서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 싶지만 선교가 어려운 나라들이 있다. 파키스탄, 북한 등은 신자가 되려면 이민을 가야 할 정도이고 베트남과 중국도 박해가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 한국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 진 신부는 “6·25전쟁 때 한국 사제들이 많이 사살당해서 그 수가 독일 사제들보다 적었다”며 “지금은 많아진 한국 사제가 독일에 가는 것도 교회의 보편성 안에서 서로 새로운 자극을 주고받는 데 좋은 것 같다”고 선교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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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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