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라고 하면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에 늘 어린이, 청소년, 청년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발달장애인들이다.
발달장애인은 바로 우리 곁에(등록 인구 약 26만 명) 있으나 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 서울·의정부교구만 해도 장애인 주일학교가 17곳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모든 이에게 평등한 주님의 사랑에 장애가 과연 장벽이 될까. 발달장애인 신자들은 비장애인 청년들과 어떻게 경계를 넘어 함께 찬양하고 어울리는 ‘진정한 젊음’을 보여주고 있을까. 서울대교구 오류동본당 장애인 주일학교인 무지개주일학교(교감 이경선 스텔라·지도 정성원 루치오 신부, 이하 무지개) 수업 현장, 장애인 학생들과 비장애인 청년들이 함께하는 청년 미사 현장에서 그 답을 찾았다.
■ 우리 성당에 늘 떠 있는 무지개
주일인 9월 8일 오후 5시30분 오류동성당으로 발길을 향했다. 추분(秋分)을 기다리는 여름의 막바지라 그런지 아직 저녁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하늘빛은 침침하고, 햇볕은 초가을 저물녘에나 볼 법한 거무스름한 금빛으로 사뭇 어둑했다.
성당은 다소 인내심을 가져야 오를 수 있을 만큼 봉긋한 언덕에 있었다. 저녁 7시 청년 미사까지 한참 남은 이 시간에 성당으로 향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날도 더운데 가파른 길을 걷기 싫어 볼멘소리로 터덜터덜 발을 구르는 동네 아이 두어 명만 저만치서 보였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성당에 일찍 오는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져요.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 예수님 공부도 하고 같이 미사에도 참례하니까요.”
이윽고 발달장애인 학생 10여 명이 성당 2층 무지개 교리 수업 공간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늘의 주제는 ‘아브라함과 이사악’.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던 성경 속 이야기를 배웠다. ‘야훼이레’(하느님께서 마련하신다)가 무슨 뜻인지 맞히는 등 가로세로 낱말 퀴즈도 풀고, 천사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것을 말리는 장면도 붙임 딱지(스티커)를 붙여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렇듯 매 주일 청년 미사 전 열리는 무지개는 발달장애인 학생들 신앙 교육의 장이다. 본당 인근에 특수학교 2곳이 있어 발달장애인 학생이 많기도 했다.
무지개가 생기기 전에는 부모들의 자조 모임이 있었다. 당시 발달장애인 자녀들은 부모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동안 교리실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종이접기 등을 했다. 그런 그들을 그냥 두지 말고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과 성호경이라도 제대로 알려주자는 취지에 사목자와 신자들이 한마음이 돼 무지개의 문을 열었다.
17~42세 학생 17명이 무지개에 다니고 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장애인신앙교육부에서 교육을 수료한 교리교사 3명이 동반한다. 매주 교리 수업에 이어 비장애인 청년들과 같이 청년 미사를 참례하고, 한 달에 한 번 성지순례 및 야외 활동도 같이 간다.
이처럼 무지개는 장애인 학생들의 신앙 배움터를 넘어 비장애인 청년들과도 장벽 없이 친교를 맺는 기회가 되고 있다. 금방 사라지는 무지개와 달리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경선 교감은 “무지개는 청년들이 하느님을 믿고 친교를 이루는 데 장애가 결코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고 말했다.
■ 무지개의 색깔에는 경계선이 없으니까
“자비로우신 주님,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시고 우리가 이웃의 정신으로 당신의 참사랑을 이루게 하소서.”
이날 수업 후 청년 미사 보편지향기도 낭송 청년 4명 중에는 발달장애인 청년이 1명 있었다. 그는 실수 없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매끄럽게 기도 지향을 읽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를 때는 발달장애인 청년 2명이 율동 찬양을 펼쳤다. 비장애인과 아무 차이 없이 크고 명료한 동작에 신자들은 헤매지 않고 따라 움직였다.
이렇듯 무지개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수업 후 청년 미사에서 비장애인 청년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전례에도 동참한다. 예물 봉헌, 독서까지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하는 광경이 매주 펼쳐진다. 어디까지가 빨강이고 노랑이고 초록인지 나눠놓는 경계선 따위 없는 무지개의 스펙트럼처럼, 서로가 허물없이 손을 맞대고 하느님을 한마음으로 찬양할 뿐이다.
장애 때문에 발음이 약간 어눌하게 들리거나 더듬거리고 실수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은 신자들에게 진심을 느끼게 한다. 기도 지향 낭송, 독서를 막힘없이 해내고 싶어 한 주 내내 연습해 오는 학생도 있다.
비장애인 청년들은 장애인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찬양하는 기쁨으로 매 미사 때 힘을 얻고 있다. 오히려 매주 미사 때 전례에 대한 부담을 장애인 학생들이 나눠서 들어줘서 고맙다는 마음뿐이라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표현한다. “주말에 시간 내어 성당을 찾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느님만이 가능케 하는 ‘장벽 없는 어울림’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만큼 청년들은 오히려 더욱 서로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무지개 학생들이 청년 성가대나 전례부에도 참여할 수 있길, 진입장벽을 낮추길 희망하는 청년도 많다. 정은경(크리스티나) 청년회장은 “같이 해온 청년 성서 공부 외에도 함께 어울릴 프로그램을 넓혀 가고 싶다”며 “모두가 어려움 없이 다름을 극복할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서로 포개질수록 오히려 밝아지는 빛
“빛은 포개질수록 밝아지잖아요.”
무지개 학생들도 비장애인 청년들도, 주일이면 다른 곳이 아니라 성당으로 향하게 하는 매력은 ‘함께하는 모두를 이롭게 하는 포용’이다. 특히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무지개 덕분에 안정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장애인 주일학교가 없는 성당에서는 자녀가 미사 중 소리를 내거나 돌발행동을 했을 때 장애인식 부족으로 비난당하는 일이 많아 학생들도 부모들도 상처와 소외감을 토로했었다. 그런데 무지개라는 소속이 생기자 교우들은 이해해 주고, 학생들도 미사 안에서 자기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한 발달장애인 학생은 “미사 때 자유롭게 노래도 부르고, 익숙한 곳에서 변치 않는 친구·동생들과 기도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비장애인 청년들의 내면도 자기도 모르게 성장한다. 전례를 방해하기는커녕 묵묵히 역할을 해내는 무지개 학생들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눈 뜨게 된다. “무지개가 없었고 이들과 한자리에서 만날 일조차 없었다면 지금처럼 그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칠 일이 있었을까” 하며 기도의 불꽃도 더욱 뜨겁게 타오른다.
함께 나들이를 가고 친교를 나누며 “우리는 하나였구나” 하는 감동을 맛보기도 한다. 비장애인 청년 김수지(수산나) 씨는 “어색함은 잠시, 금방 장난치고 농담을 주고받았던 소소한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며 “평범하지만 특별한 추억이 다음 한 주를 살아낼 원동력이 된다”고 전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