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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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소박하게 살던 우리 선조들 삶의 모습 정갈하게 담아

[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3. 전통 혼례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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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트 베버, ‘교배례’, 1925년 함경남도 내평,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교배례에 이어 술잔 주고받으며 혼인 서약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의 전통 혼례 과정을 이어간다.

“신랑이 초례상 상차림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상 뒤에는 중년의 수모(手母) 둘이 신부 양쪽에 서 있다. 신부는 길게 펼쳐진 활옷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신랑을 지금도 보지 못한다. 신부가 손을 이마에 올리고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신랑에게 세 번 깊이 절한다.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면 수모는 신부의 팔을 붙들고 신부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는 신랑이 절할 차례다. 신부는 상 앞에 서 있다. 신랑은 온절 두 번, 반절 한 번으로 두 번 반만 절한다. 이는 그가 한 여인의 지아비임을 뜻한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447쪽)

함경남도 내평성당에서 촬영한 베버 총아빠스의 ‘한국의 결혼식’ 사진은 100년 전 소박하게 살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정갈하게 담고 있다. 황토로 궁색하게 벽을 쌓은 나지막한 기와집에 울퉁불퉁한 생나무 기둥들이 들보를 힘겹게 받치고 있다. 빗물받이 함석은 내려앉아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돼 보인다. 비록 삶은 가난하지만 사진 속 어른들의 얼굴은 기품이 있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두 손을 모은 채 신부 뒤편에서 교배례를 지켜보는 여인의 모습은 몸에 밴 신앙인의 자세가 자연스레 풍긴다.
 
노르베르트 베버, ‘한국의 전통 혼례식 신랑 신부’, 1925년 함경남도 내평,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은 부부간의 신뢰를 상징하는 기러기를 신랑이 신부에게 건넨(전안례) 다음 진행되는 교배례 장면이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교배례 사진은 1925년 함경남도 안변군 내평성당을 방문했을 때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사례비를 주고 연출한 것이다. 그래선지 보통 혼례식이 거행되는 교배상에는 대개 붉은 촛대와 푸른 촛대, 홍실을 감은 소나무와 청실을 감은 대나무를 꽂은 화병, 밤, 대추, 쌀, 표주박 잔 한 쌍, 보자기에 싼 암탉과 수탉 등을 올려놓지만 사진 속 초례상은 조촐하게 화병 2개만 놓여있다.

교배례를 마친 신랑과 신부는 교배상을 가운데 두고 떨어져 자리에 꿇어앉는다. 그러면 교배상의 술잔과 과일 접시를 작은 상으로 내려놓는다. 이때 신랑의 상에는 밤을, 신부의 상에는 대추를 둔다. 신랑 신부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혼인 서약을 하는 합근례(合?禮)가 이어진다. “신부 왼쪽의 수모가 술잔에 술을 부어 신랑에게 건네면 한 모금 마신다. 술잔은 왼쪽으로 돌아간다. 신부도 잔에 살짝 입을 댄다. 술잔은 세 번 맞바꾸어 돌린다. 수모가 술잔을 청실홍실로 감아 묶는다. 청실은 신랑, 홍실은 신부를 상징하니 이로써 신랑과 신부도 부부로 묶인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448쪽)
 
노르베르트 베버, ‘신행’, 1911년 황해도 청계(?),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혼례 마친 후 한평생 살아갈 시댁으로 신행

합근례로 혼례 예식의 정점인 대례가 마무리된다. 이제 신랑 신부의 백년가약이 맺어졌으니 남은 건 한바탕 흥겨운 잔치뿐이다. “수모와 몇몇 여자들이 새색시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신랑은 친구들이 있는 사랑으로 다시 나간다. 가는 데마다 질펀하게 먹고 마신다. 혼행 손님들을 비롯한 하객들 모두가 넉넉한 술과 음식을 대접받는다. 이 흥겨운 잔치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딱 둘뿐이다. 과음과식을 삼가야 하는 신랑과, 짓궂은 여자들 틈에서 비련의 조각상처럼 입 꾹 다물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신부가 그들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448쪽)

혼례를 마친 신랑 신부는 신방을 차린 후 앞으로 한평생 살아갈 시댁으로 길을 나선다. 이를 신행(新行)이라 한다. 신행 시기는 다양했다. 혼례식을 마친 그날 바로 가기도 하고 사흘 후, 한 달 후, 1년 후에 가는 신행도 있었다. 1년을 묵혀 가는 신행을 ‘묵신행’·‘해묵이’라 했고, 달을 묵혀 가는 신행을 ‘달묵이’, 사흘 만에 가면 ‘삼일 신행’, 혼례식 당일 시댁으로 가면 ‘도신행’이라 했다. 신행할 때 신부는 보통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갔다. 이때 신부는 요강에 찹쌀을 담아 가마 안에 넣어 갔다. 이 찹쌀로 신행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시어머니가 밥을 지어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 찰밥처럼 차지게 잘 살라고 먹는 것이었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신행 장면은 제법 화려하다. 패랭이를 쓴 건장한 가마꾼이 환하게 웃고 있다. 학생인 듯한 앳된 소년이 신부를 위한 햇빛 가리개를 들고 있다. 신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신행을 떠나는 신부를 보기 위해 가마 주변에 몰려 있다. 배웅하는 이들의 옷차림이 모두 깔끔한 것으로 보아 신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엿보인다.
 
노르베르트 베버, ‘큰상 받는 신부’, 1925년 함경남도 내평,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노르베르트 베버, ‘현구고례’, 1925년 함경남도 내평,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노르베르트 베버, ‘혼인후 큰상 받은 여인들’, 1911년 황해도 청계동,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시댁으로 간 신부, 처음 뵙는 시부모께 폐백

시댁으로 간 신부는 큰 상을 받고 처음 뵙는 시부모께 폐백을 드린다. 이를 ‘현구고례’(見舅姑禮)라 한다. “젊은 부부는 이제 하객들 곁을 떠나 시부모에게 공식적으로 예를 올린다. 신부가 나와 무릎을 꿇고 시부모에게 술잔을 올린다. 또 몇몇 중요한 웃어른들께 절을 올리면 그들은 축하의 뜻으로 얼마간의 절값을 주어야 한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448쪽)

베버 총아빠스는 시댁에서 큰상을 받은 신부의 모습과 현구고례, 그리고 폐백 후 시댁 여인들이 음식상을 받는 모습을 촬영했다. 시댁에 간 어린 신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그 주변으로 여인네들이 신부를 보기 위해 몰려있다. 신부는 수모들의 부축을 받아 시부모에게 큰절을 한다. 시부모 뒤에 있는 젊은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신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내평본당 주임 카누도 다베르나스 신부는 베버 총아빠스의 전통 혼례식 촬영 후기를 이렇게 남겼다. “수탉이 울고 암탉들이 그 주위에 모여드는 통에 촬영이 중단되곤 했다. 외교인들이 색다른 체험에 즐거워했다. 된더위 속에서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총아빠스와 새 필름을 갈아 넣을 때까지 혼례 중간에 종종 기다려야 했던 신랑 신부가 고생이었다. 혼례 장소로 쓰인 성당 마당과 정원이 넓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분도통사」 297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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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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