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하루에 48분 ‘시간제 부모’의 돌봄을 받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양육 환경을 다룬 cpbc 특집 다큐(연출 전은지 / 글·구성 김현경). ‘시간제 엄빠의 나라’ 하편에서는 호주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한국인 부모들을 만나 호주의 양육 정책을 살펴봤다. 본 다큐멘터리는 cpbc 플러스에 공개돼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작 지원했다.
‘엄빠’와 잠깐 만나는 한국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 가는 시간 빼고 하루 중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 아이와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 아이에게 취재진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정반대.
경기도 성남에서 맞벌이 부모와 사는 김도하(5)군은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벌려 보이며 “짧다”고 표현했고, 호주 멜버른에 사는 김지후(안젤로, 9)군은 활짝 웃으며 “많은 거 같다”고 답했다. 두 아이에게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취재진은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짧다고 대답한 도하군에게 “하루에 엄마 아빠와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물었고, 호주의 지후군에게는 “부모님과 어떤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한지” 물었다.
도하군은 머리 위로 큰 원을 그리며 “이만큼, 이만큼”이라 답했고, 지후군은 “밥 먹고 엄마 아빠와 같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운동도 하고 같이 놀며 이야기하는 게 되게 좋다”고 말했다.
오후 4시 30분, 호주의 ‘가족 풍경’
멜버른에서 맞벌이하는 이종원(안드레아)·정예슬(율리아)씨 부부가 1살 된 딸 루미(루치아)양을 안고 집으로 들어온다. 엄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빠는 딸과 기차놀이를 한다.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보내는 삶은 호주에서 꿈이 아닌 일상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가족이 우선시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아이가 어리다 보니 같이 일하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셨고요. 호주에서 전일제 근무 시간은 주 38시간인데, 저는 주 20시간으로 줄였어요.”(엄마 정예슬씨)
“출근해서 할일이 많아도 아침에 아이가 아프면 직장에 전화해 양해를 구해요. 병원에 갔다가 늦게 출근하거나 아예 하루 쉽니다. 아이를 중심으로 배려해 이러한 상황들이 다 용인되는 분위기죠. 무엇보다 부모로서 딸 루미가 필요로 할 때 곁에서 대화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추억 쌓아서 아이가 의지하고 마음을 열고 지낼 수 있는 아빠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아빠 이종원씨)
육아정책의 중심은 ‘아이들의 행복’
호주는 OECD 회원국 중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4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 아빠와 아이의 교감 시간은 하루 6분으로 가장 짧았다. 반면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2시간 30분 이상인 나라는 호주 외에 오스트리아·아일랜드·미국·캐나다·스페인·핀란드·영국·이탈리아 등이었다.
“호주 사회는 부모 역할을 소중하게 여기며 이를 인정하고 싶어 합니다. 동시에 부모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도록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과 돌봄 책임을 관리하는 다양한 방식을 존중합니다.”(호주 가족연구소 책임연구원 제니퍼 백스터 박사)
제니퍼 백스터 박사는 “호주에서는 육아정책을 만들 때 전반적으로 아이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호주의 대다수 부모는 자녀가 전일제 보육 서비스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호주 멜버른에 사는 김지후군 아빠 김두용(스테파노)씨는 “한국처럼 경쟁이 심한 나라에 살고 있었다면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적었을 것”이라며 “호주가 가족 위주로 시간을 보내는 환경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백스터 박사는 “호주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매우 중요시한다”며 “그렇기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한 보육을 선택해야 할 때 기관에서 보육서비스를 받는 시간을 연장하기보다 가정에서 부모가 보육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부모 근로자들을 장시간 또는 유연성 없는 근무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정책과 관행이 저출산 문제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인터뷰 / 노혜진 강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은 시간 빈곤국… 부모는 일 우선, 돌봄은 학교서 해결
부모에겐 ‘자녀 돌볼 권리와 노동할 권리’·자녀에겐 ‘돌봄 받을 권리’ 균형있게 보장해야
“한국은 정말 시간 빈곤 그 자체인 국가입니다. 부모의 장시간 근로로 아이들은 부모가 퇴근한 후에 만나죠. 만나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아요. 부모가 아이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려면 부모의 몸과 마음도 좀 건강해야 합니다.”
노혜진(강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니까 대안으로 부모는 근로를 우선하고, 아이들의 돌봄은 학교가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라며 “이 제도의 취지는 아이들도 집밖 공간에 있다가 부모가 퇴근할 시점에 맞춰 보내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얼마나 피곤할까요? 부모가 늦게 오니까 너도 저녁 7시까지 어딘가에 있다가 집에 오라고 하는 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올바른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노 교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시간 빈곤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 2021년 기준 OECD 통계를 통해 한국의 워라밸 수준이 최하위라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냈다. 노 교수는 연구팀과 함께 미국·호주·스위스 등 31개국의 시간 주권(개인이 자유롭게 시간 배분을 조직할 권리) 보장 수준을 노동시간과 가족시간 등으로 26개 지표를 통해 점수를 매겼다.
그는 “부모에게는 자녀를 돌볼 권리와 노동할 권리, 자녀에게는 부모에게 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이 세 가지 권리를 적절하고 균형 있게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이 구현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자녀 돌봄이 중요한 만큼 아빠, 엄마가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고소득·고학력자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육아휴직 제도도 고용보험에 가입된 정규직 근로자가 활용할 수 있다”며 “임금 근로자만 아기를 낳는 건 아니기에 자녀와 함께 시간을 누리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비임금 근로자에게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 교수는 “부모는 자녀에게 행복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만 우리 사회는 행복보다는 불평등을 물려주는 사회”라며 “내가 나를 건사할 시간도 없는데 다른 누군가를 헌신과 노력, 정성으로 돌봐야 한다고 했을 때 (출산은) 아주 큰 결단을 해야 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은 이유로 ‘부모가 되면 저렇게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아기를 낳기 싫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일과 삶의 균형은커녕 정신없이 바쁘고 뒤죽박죽인 부모의 삶을 아이들이 보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부모의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고,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