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가 넘는, 비행기로도 12시간 넘게 날아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거리. 초대 조선대목구장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는 아시아 선교를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프랑스를 떠나 기나긴 여정에 나섰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성직자가 없던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선교를 위해 헌신한 것은 사랑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주교)·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와 함께 10월 15~24일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인 프랑스 카르카손-나르본교구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등을 방문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를 따라간 이번 방문에서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위한 희망을 발견했다. 본지는 기획 취재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을 가다’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브뤼기에르 주교 고향땅 고향 마을 레삭 도드 방문
미사 봉헌 통해 마음 모아 현양
주교의 수단·십자가 전달 받고
용산 묘역에서 가져온 묘소 흙 전달
브뤼기에르 주교 삶과 영성 본받고
시복 위해 함께 기도하자 다짐
비가 그치고 하늘이 열리다
방문단은 10월 23일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마을인 프랑스 남부 레삭 도드(Raïssac d''Aude)를 찾았다. 하느님의 섭리였던 걸까. 놀랍게도 프랑스 방문 중 실내 일정 때엔 비가 내렸고, 외부 일정이 이어지는 날에는 날씨가 온화했다. 레삭 도드로 가는 길은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이 한국 교회 방문단과 함께했다. 도로 양옆으로는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졌다. 들판에 말들이 뛰놀았다. 200여 년 전 브뤼기에르 주교가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시에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레삭 도드에 닿자 마치 한국에서 온 손님을 반기기라도 하듯 성당 종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레삭 도드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사랑했던 한국의 신자들을 품어줬다. 마을 주민들은 미리 다과와 식사를 준비하는 등 방문단 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카르카손-나르본교구장 브루노 발렌틴 주교는 방문단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춰가며 반갑게 맞았다. 마을 사람들의 환대가 이어졌다.
브뤼기에르 주교, 200년 만에 귀향하다
“오늘 한국 교회와 프랑스 교회의 만남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이날 레삭 도드 성당에서는 뜻깊고도 거룩한 미사가 거행됐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교구 주교인 카르카손-나르본교구장 브루노 발렌틴 주교와 한국 교회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후배 주교인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와 사제단이 공동집전으로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 것이다. 구요비 주교는 이번에 한국 교회 주교로는 처음으로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과 출신 교구를 공식 방문했다.
발렌틴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한국에 선교하러 가셨을 때 한국은 작은 교회였지만, 지금은 큰 교회가 됐다”며 “한국 교회는 지금 선교의 대상에서 선교하는 주체가 됐고, 교세가 약해진 프랑스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비록 한국에 들어가시는 꿈을 이루진 못하셨지만, 오늘 한국 교회와 프랑스 교회의 만남을 통해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꿈이 이뤄졌다”며 “브뤼기에르 주교님 성소의 씨앗이 뿌리내려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고 크게 기뻐했다.
이어 두 교구 간 브뤼기에르 주교와 관련한 상징물을 주고받는 예식도 이어졌다. 발렌틴 주교는 미사 중 구요비 주교에게 브뤼기에르 주교가 200여 년 전 착용했던 수단과 십자가를 전달했다. 작은 두건과 보라색 어깨 망토가 달린 수단과 함께 전달받은 십자가에는 ‘1836’과 ‘갑사의 주교(Évêque de Capse)’, ‘레삭 도드(Raïssac d''Aude)’가 불어로 새겨져 있다. 1835년 선종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십자가에 ‘1836’이 적힌 것으로 보아 이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고향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갑사의 주교’는 1829년 그가 샴대목구 부대목구장이자 갑사의 명의 주교로 임명됐을 때의 명칭이다.
구 주교는 발렌틴 주교에게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 내 브뤼기에르 주교의 묘소에서 퍼 온 흙을 전달했다. 발렌틴 주교는 한국의 전통문양이 표현된 작은 자개함에 한지로 정성껏 포장된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흙을 받자마자 크게 반색하고 자개함에 친구(親口)하며 경외감을 표했다. 미사에 함께한 마을 신자들도 고향 출신으로 선교하다 ‘하느님의 종’이 된 주교가 방문한 듯 기뻐하며 박수쳤다. 발렌틴 주교는 자개함을 성당 한편에 모셔진 성모상 아래에 봉헌했고, 신자들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얼이 서린 흙을 함께 바라보며 기도하고 성가를 노래했다.
구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는 박해 속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다 바쳐 아낌없이 사랑을 내어주신 착한 목자셨다”면서 프랑스 교회에 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서울대교구는 조선교구 설정 200주년인 2031년 9월 9일 브뤼기에르 주교 선종 200주년인 2035년 10월 20일을 기념하고자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고향 신자들에게 거듭 알렸다.
구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영웅적인 덕행은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기에 시복시성은 한국 교회만이 아니라 브뤼기에르 주교를 낳고 파견한 프랑스 교회, 특히 카르카손-나르본교구를 포함하는 오드 지역 전체 신자들의 영광이기도 하다”면서 “여러분도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영성을 새롭게 익혀 복음적 신앙인으로 함께 성장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브뤼기에르 주교 후손들
“서울대교구에서 저희 가문의 신앙선조인 브뤼기에르 주교님 시복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또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주교님의 여정과 도전 또한 다시금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주교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할 것이며, 주교님의 시복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신앙적으로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취재단은 미사 후 브뤼기에르 주교의 후손인 샹탈 애로(Chantal AYRAUD)씨를 만났다. 그는 구요비 주교를 통해 서울대교구에 전달한 브뤼기에르 주교 수단과 십자가에 대해 “집안 대대로 전수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언제부터 또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고, 거실 한편에 늘 걸려 있었습니다.”
애로씨는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교를 위해 자신을 다 바쳐 희생하고 헌신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주교님과 200여 년에 걸친 혈연관계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늘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교회가 추진하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시복시성과 현양을 위해 저희 가족이 할 수 있는한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면서 “주교님의 시복이 큰 열매를 맺도록 함께 기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