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는 새 사목지에 적응이 되기도 전에 본당에 비치된 종이컵을 없앴다. 화장실에 페이퍼 타월도 사라졌다. 신부는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페이퍼 타월 대신 손수건을 쓰자고 제안했다. 신자들 사이에선 “유별난 신부님이 오셨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3년 뒤, 불편했던 변화들은 익숙한 일상이 됐고 하느님의 성전을 함께 지키고 있다는 유대감은 공동체의 신앙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보호를 위해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바꾼 신부의 ‘유별남’은 평범하지 않은 본당 공동체를 만드는, 거룩한 하느님 성전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제19회 가톨릭환경상 대상을 수상한 대전교구 천안성정동본당의 이야기다.
일회용품 줄이고 환경 인식 개선
지역사회와 연계한 환경 캠페인
재생에너지 전환·탄소중립 결실
■ 거룩한 성전을 만들다
“편하게 사용하던 종이컵이 없어지니 텀블러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성당에서 편하게 컵도 쓰지 못한다’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회용품 사용을 안 하고 계세요. 식당에서도 종이컵이나 일회용 접시를 절대 안 쓰신답니다.”
2021년 천안성정동본당에 부임한 임상교(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가장 먼저 종이컵을 없애고, 본당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 제로웨이스트 가게. 성당 카페 한켠에는 담아갈 수 있는 빈 용기와 함께 대용량 주방세제와 섬유유연제가 진열돼 있다. 천연재료로 만든 수세미와 고체 치약, 샴푸바는 물론이고 옆 코너에는 우리농산물도 판매, 성당에 들른 신자 누구든지 환경을 위한 실천에 동참할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천안성정동본당의 노력은 탄소중립이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2023년 54.74kw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본당은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탄소 배출 감축을 추진, 195의 감축을 이뤄냈다. 본당 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데도 신경 썼다. 임 신부는 좀 더 체계적으로 전력사용을 줄이고자 신자들과 논의해 모든 전등을 LED로 교체했고 창문도 이중창으로 바꿨다. 냉난방기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본당 곳곳에 실링팬을 설치하는 등 에너지를 절약한 결과 매년 600만 원가량을 환급받고 있다.
임 신부는 “새로 부임한 신부가 잘 쓰던 것들을 없애면 당연히 불만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처음 바꾸는 게 힘들지 조금만 감내하면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육을 통해 왜 우리 삶이 바뀌어야 하는지 알리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불편하게 바뀐 내 삶이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을 지키는데 힘을 보탠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신자들은 전보다 기쁘고 충만하게 신앙생활을 하실 거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다
임 신부는 시설을 바꾸는데 끝나지 않고 신자들의 일상을 바꾸는 데도 주력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신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다. 삶의 방식을 왜 바꿔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담긴 위기에 놓인 공동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사는 곳, 나의 일상에서 찾고자 했다.
본당 신자 조정흥(아녜스) 씨는 “신부님이 본당 야유회로 생태탐방을 제안하셔서 수라갯벌에서 파괴된 갯벌을 보고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가덕도에 함께 가서 미사를 드린 적도 있었는데 뉴스로만 보던 이야기를 현장에서 보니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삶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개인의 역량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천안성정동본당은 현재 천안녹색소비자연대와 함께 ‘자원순환 118’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자원순환 118은 1일 동안 1인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800g으로 줄이는 활동. 음식물 쓰레기까지 더하면 하루에 배출되는 쓰레기양을 800g에 맞추는 게 쉽지 않지만 환경단체에게 전문적인 방법들을 배워나간 결과 천안성정동본당 신자들은 분리배출은 물론이고 쓰레기 줄이기의 달인이 됐다.
취재를 위해 찾은 10월 25일은 매주 열리는 기후행동이 있는 날이었다. 10시 미사가 끝난 뒤 한숨을 돌린 10여 명의 신자들은 현관에 놓인 박스에서 조끼를 꺼내입고 자신의 피켓을 찾아 들었다. 성당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1시간가량 진행되는 작은 행동이지만 매주 함께하는 이 시간은 하느님 보시기 좋은 신앙인이 되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김향초(제클린) 씨는 “피케팅을 하면서도 ‘우리의 피켓을 보고 바뀌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에 위안이 된다”며 “그만큼 기후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신부가 신자들의 볼멘소리를 감수하고 조금 불편한 삶으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민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에 함께 모여있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임 신부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을 잘 지켜나갈 때 성전의 거룩함은 유지가 되는 것”이라며 “우리 본당이 하느님이 창조했던 그대로의 성전을 지키는데 힘을 보태는 그런 거룩한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