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전한 진심에 프랑스 교회는 기쁘게 응답했다. 두 교회는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신앙을 통해 하나 된 형제 교구로서 서로의 신앙 증진을 위해서도 더욱 힘을 모으기로 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주교)·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와 평화상조 협찬으로 10월 15~24일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인 프랑스 카르카손-나르본교구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등을 방문했다.
프랑스 파리=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세례대장·생가 지적도 등 확인
한국 교회 방문단은 이번 프랑스 카르카손-나르본교구 방문 중 브뤼기에르 주교와 관련한 중요 고문서를 새롭게 발견하는 성과를 얻었다.
10월 21일 오드 주립 기록보관소. 방문단은 기록보관소가 공개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세례대장에서 세례명 ‘바르톨로메오’를 대부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세례대장에 따르면 대부는 바르텔레미 파지(Barthélemy Fazi), 대모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누나 루이즈 브뤼기에르(Louise Bruguière)라고 적혀 있다.
그동안 브뤼기에르 주교의 세례명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바르톨로메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레삭 도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므로 본당 수호성인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추측해 왔다. 하지만 이번 세례대장을 통해 브뤼기에르 주교의 세례명은 대부의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것이 처음 확인됐다. 세례대장에 대부의 서명은 있었지만 누나인 루이즈 브뤼기에르는 문맹이었던 터라 서명이 없다. 이밖에 오드 주립 기록보관소에서는 브뤼기에르 주교 생가 지적도, 재산목록 등도 있어 당시 그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단은 카르카손-나르본 교구청이 열어준 문서고에서도 의미 있는 사료들을 확인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삭발례, 시종품, 차부제품, 부제품, 사제품 기록이 적힌 카르카손-나르본교구 서품기록부 제1권(1803.9.24~1827.12.22), 카미유 부르동클 신부의 브뤼기에르 주교 전기 필사본 초고, 전기 작성을 위해 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이동 경로 지도도 확인했다. 또 1825년 9월 29일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랑글루아 신부가 카르카손 교구장 생롬갈리 주교에게 브뤼기에르 신부의 전교회 입회 허가를 감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서한을 보낸 것도 확인됐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서울대교구로선 중요한 사료들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탄생 배경과 성장 과정을 더욱 면밀히 확인할 수 있는 문서들”이라며 “새로 발견한 문서들은 판독을 통해 그 의미를 확인하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송란희(가밀라) 학술이사는 “브뤼기에르 주교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광범위한 조사를 이어왔다면, 이제는 좀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라며 “브뤼기에르 주교를 더 많은 한국 신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교육과 순례 프로그램 등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가 된 한불 신자들
10월 23일에는 레삭 도드의 브뤼기에르 주교 생가터에서 기념판 제막식도 열렸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미사 봉헌 후 열린 제막식에는 한국과 프랑스 교회 신자들이 함께했다.
기념판에는 프랑스어로 이곳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동시에 한국어로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 생가, 카르카손 신학교 교수, 초대 한국 교구장, 1792년 2월 2일 레삭 도드 출생 - 1835년 10월 20일 한국 국경 피리케우(펠리쿠)에서 선종’이란 설명이 함께 새겨졌다. 두 나라 언어가 나란히 기재된 작은 기념판이 한국과 프랑스 교회를 더욱 가까운 형제 교회로 잇게 됐다.
이날 한국 교회 방문단은 레삭 도드에서 프랑스 신자들이 건넨 선물로 큰 감동을 받았다. 레삭 도드 인근 요양원 어르신들이 1시간 넘는 거리의 루르드 성모성지에 직접 가서 떠온 ‘기적의 샘물’과 프랑스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1806~1876년) 수녀가 1830년 11월 27일 성모님께서 발현해 알려주신 대로 제작한 ‘기적의 메달’ 성물을 만들어 선물한 것이다. 거동이 편치 않은 어르신들이 떠온 샘물과 종이를 붙여 가위로 잘라 만든 비뚤비뚤한 모양을 한 기적의 메달에는 브뤼기에르 주교로 연결된 한국 방문단을 귀하게 환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신학생 교환 의견 나누고 서울 WYD 초대
이튿날인 10월 24일 카르카손-나르본교구청에서 교구장 브루노 발렌틴 주교와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교구 시복시성위원장) 주교가 마주 앉았다. 두 교회 주교들의 공식 회담이 이뤄진 것이다. 두 주교는 1시간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을 위해 협력할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구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 신자들이 카르카손과 나르본 지역을 성지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자 한다”며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발렌틴 주교는 “한국 교회 신자들의 프랑스 교회와 우리 교구 지역 순례 여정에 도움이 되도록 지역 관광청과 함께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교회 간 신학생 교환에 대해서도 의견을 함께했다. 구 주교는 서울 대신학교 신학생들의 현장 체험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신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발렌틴 주교는 “구 주교님의 제안을 형제 교회로서 기쁘게 받아들인다”며 “한국과 프랑스 교회의 신학생들이 서로의 나라에서 6개월~1년 동안 머물며 양국 교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프랑스 교회 젊은이들과 발렌틴 주교님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도 공식 초대하고 싶습니다.” 구 주교의 이같은 깜짝 초대에 발렌틴 주교는 “서울 세계청년대회 초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며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번 회담으로 3년 뒤 양국 젊은이들이 서울 WYD에서 만난다면 브뤼기에르 주교의 신앙 후손으로서 그의 삶과 믿음의 역사를 한국 교회에서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카르카손-나르본교구장 브루노 발렌틴 주교 인터뷰
“교구의 한 인물이 시복시성되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시복시성은 카르카손-나르본교구에도 큰 기쁨이자 큰 희망입니다. 또 이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작은 교구인 우리도 성인을 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카르카손-나르본교구장 브루노 발렌틴 주교는 한국 교회가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프랑스 교회에서 한 사람이 용감한 신앙의 증인이 됐고, 프랑스 교회가 새로운 신앙의 증인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쁨”이라고 밝혔다.
한국 교회의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 추진에 발맞춰 카르카손-나르본교구도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위해 유물과 문서·기록 등 직접적인 증거들을 찾기 위한 연구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가계도를 정리하는 등 그의 행적을 세심히 살피고 있다. 발렌틴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신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한국 순례자들이 프랑스 성지순례 시 카르카손과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가 마을인 레삭 도드도 방문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발렌틴 주교는 “한국 교회의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 노력 덕분에 프랑스 교회 전체에 브뤼기에르 주교를 더 잘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며 한국 교회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프랑스 오드 지역 청년들이 한국 교회와 한국의 청년들을 만나고, 서로가 형제 교회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