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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곳곳에 잠복한 불발탄…예방 교육은 공포를 희망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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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폭발물 200만 톤을 라오스에 퍼부었다. 58만 번의 폭격에서 쏟아진 불발탄으로 라오스 모든 민족이 고통받았다. 불발탄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힘없는 라오스 사람들은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더 많은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지 않게는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사단법인 평화3000(상임대표 곽동철 요한 신부) 활동가들이 현지에서 보고 들은 불발탄 피해 이야기를 전하고, 피해국 라오스에서도 손꼽히는 가난한 산간 오지 후아판주에서 꾸준히 불발탄 사고 예방 교육을 펼쳐온 과정을 소개한다.



■ 아물지 못한 상처


“아물지 못한 상처는 가난한 이들이 일어서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 중 하나예요.”


후아판주 ‘위앙싸이 소수민족학교’에서 지원 사업 관련 일정을 마친 평화3000 활동가들이 다음 일정을 위해 지역을 떠나던 10월 30일. 이른 아침 울룩불룩한 산악지역을 빠져나가는 길에서 이관택 코디네이터가 말을 꺼냈다. “라오스 국토에 퍼져 있는 불발탄이 경제·사회 발전을 막는 원인 중 하나”라는 말이었다.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에 휘말리면서 전역에 불발탄이 깔렸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선은 라오스·캄보디아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북베트남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2억7000만 개 폭발물을 라오스 전역에 퍼부었다. 그중 30가량인 약 8000만 개는 지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바로 터지지 않는 미폭발물(Unexploded Ordnance, UXO)로 남겨졌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터질지 모르는 그 흉기들 때문에 하루아침에 죽거나 다친 피해자가 지금까지 5만 명을 넘는다.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6월까지 라오스 불발탄 규제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44건의 불발탄 사고가 있었다. 후아판주만 해도 9월에 잔디를 깎다가 불발탄이 터져 죽은 사람이 있었다.


불발탄은 인명을 해치는 걸 넘어 국가 개발을 저해한다. 도로 등 사회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도 해당 지역의 불발탄부터 찾아내고 제거해야 해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농지 사용조차 위험한 상황에 농촌 개발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완전 제거까지 2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제거 비용도 막대해,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도 개발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유엔의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라오스는 특별히 18번째 목표로 ‘불발탄으로부터의 안전한 삶’(Lives Safe from UXO)을 정한 이유기도 하다.


고즈넉한 경치로 이름난 라오스의 도원경(桃源境)에는 이렇듯 특유의 평화로움과는 정반대인 아픔이 감춰져 있었다. 여정에 동행한 박희선(안젤라) 활동가는 “곳곳에 죽음이 도사린다는 공포에 내몰렸던 라오스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불어넣어 줘야 하는지 가슴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 죽거나 다치지 않게


평화3000 활동가들은 비엔티안에 도착하자마자 라오스 국립재활원 내 ‘COPE’ 센터로 향했다. 불발탄 폭발 피해자들을 위한 비영리단체 COPE가 운영하는 센터로, 그 피해와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기념관과 같은 곳이라 바쁜 일정 틈을 내 발길을 향했다.


수많은 라오스인을 악몽에 몰아넣었던 그날의 하늘을 되새기듯, 센터 천장에는 골프공만 한 크기의 집속탄 등 폭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폭발 피해로 다친 잃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의족과 의수들도 전시돼 있었다.


현지에서 불발탄 사고 예방 교육 활동을 펼치던 중 평화3000과 협력하게 된 이관택·정유은 두 코디네이터가 해설을 맡았다.


“피해자들 재활과 회복만큼 중요한 건 지속적인 예방 교육이에요.”


정유은 코디네이터는 계속 일어나는 폭발 사고를 언급하며 “꾸준한 예방 교육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라오스에서 불발탄은 주로 산악 지역에 묻혀 있다. 그곳 사람들은 매체 접근에 제약이 있어 위험에 많이 노출된다. 특히 어린이는 계속 새로 자라나는 만큼 한 지역에 한 번 교육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 적 없는 불발탄의 위험성에 대해 어른보다도 인식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이전에는 한 해 평균 300건에 달하던 폭발 사고는 2011년부터 100건 이하로 줄어들었다. 2010년 ‘불발탄 영향 감소’를 새천년개발계획으로 채택한 라오스 정부의 의지에 국제사회가 불발탄 제거, 예방 교육 등 더 크게 동참하면서부터였다.


평화3000도 이에 발맞춰 라오스 불발탄제거청과 협력해 2023년 9월 현지에서 아이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불발탄 전문 강사들과 함께 산간 지역 초등학교와 마을회관에 찾아가 시각 자료, 포스터, 영상물 상영 등으로 예방 교육을 진행해 오고 있다.


9월 후아판주 오지 중 하나인 썬군에서는 4개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과 주민 총 800여 명에게 8회에 걸쳐 교육을 진행했다. 주도인 쌈느아에서 10시간 거리에 위치해 예방 교육에서 소외됐던 곳인 만큼 평화3000의 우선적 지원 대상이 됐다. 올해는 8월 히암군 5개 마을에서 초등학생과 마을 주민 500여 명이 예방 교육을 받았다. 후아판주 불발탄제거청, 체육교육청, 교육부 관계자들도 강사 및 실무인원으로 함께해 활동가들의 열의에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활동가들과 강사들은 폭넓은 교육 기자재를 동원한다. 불발탄으로 오염된 라오스 지도를 보여주며, 폭탄의 종류와 유형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불발탄으로부터 안전한 생활과 사고 피해자를 돕기 위한 안내, 연령층에 따라 눈높이를 맞춘 예방 사항도 마련됐다. 사고를 당한 4명의 어린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등 영상 자료도 빼놓지 않았다. 예방 포스터와 배너는 교육 이후 마을회관과 학교 게시판에 전시된다. 향후에도 위험 인식을 위한 교육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 희망을 안겨준다는 것


“폭탄 조사 및 제거, 긴급 구조 등 분야는 전문가를 필요로 해요. 하지만 예방 교육은 누구나 관심을 지니고 배우기만 하면 참여할 수 있죠.


활동가들이 귀국하던 30일 밤, 두 코디네이터가 불발탄을 녹여 만든 숟가락을 활동가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건네며 말했다. 이 코디네이터는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예방 교육 강사와 활동가)의 존재만으로도 라오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상황을 구체적으로 돌아보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낼 동기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또 예방 교육은 라오스인들이 불발탄 문제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줄 수 있다. 아직도 불발탄 오염지역은 산골에 사는 일부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정 코디네이터도 “예방 교육은 여전히 폭발 사고로 고통받는 이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민들과 라오스 사람들을 연결해 불발탄은 전쟁으로 피해받은 모든 사람들의 사안, 평화의 문제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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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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