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이탈리아 국도를 다니면 드넓은 벌판에 펼쳐진 포도밭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풍광이 조금 달라지는데요. 라인강이나 모젤강 좌우로 산비탈에 테라스식으로 포도밭이 있습니다. 강물에 반사된 햇빛까지 온전히 이용해 ‘포도주의 땅’인 이탈리아보다 못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오늘 순례지인 뤼데스하임에서 코블렌츠로 이어지는 라인강 강변도로에도 그런 포도밭이 많습니다. 곳곳의 고성들과 함께 빚어낸 멋진 경관으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돼 인기 있는 드라이브 코스지요.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는 게르만족이 포도주와 비슷하게 발효시킨 보리나 밀로 된 음료를 마시고 있으며, 강가의 사람들은 포도주도 거래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언급된 포도주는 라인강 서안(西岸), 지금 프랑스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주로, 동안(東岸)에 사는 게르만족은 포도를 아직 재배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사주 만들기 위해 포도 재배한 수도원
사실 포도 재배가 라인강 동안으로 퍼진 건 그리스도교의 복음화 덕분입니다. 카롤루스 대제의 후원으로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미사에 쓸 포도주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중세 초만 해도 포도주는 낯설고 귀한 음료였습니다. 중세 서사시를 보면 달고 향이 좋은 포도주를 접대하고 대접받는 건 귀한 신분의 상징이었고, 이른바 ‘어머니의 방울’은 귀족만의 음료였습니다. 그래도 왜 수도원이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양조까지 했을까요?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것이 힘든 중세 도시에서 포도주는 맥주와 더불어 식수로 자리 잡습니다. 근데 당시 팔던 포도주는 이른바 ‘찌끼’ 포도주로 대부분 저급 포도주였습니다. 포도를 두 번째 짜낼 때 생기는 술지게미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었기에 포도 식초 맛에 가깝다고 할까요. 그래서 귀족들은 물로 희석해서 꿀이나 향신료를 타서 마셨고, 평민은 이마저도 비싸 시큼털털한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환경에서 가격을 떠나 순수한 포도주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불순물이 섞인 저급 포도주를 미사에 쓴다? 아닙니다. 수도자는 ‘하느님께서 키우신 그대로 만든 포도주’를 원했기에 직접 포도주를 생산하는 전문가가 된 거죠. 품질과 보관·유통에도 크게 신경을 썼기에 15세기 독일 식료품법 제정에도 이바지합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성인의 성해 모신 성당
뤼데스하임 역에 내려 선착장을 지나 걸으면 포도덩굴과 아기자기한 간판이 있는 2m 폭의 드로셀가세가 보입니다. 뤼데스하임의 명동이라고 할까요. 좁지만 늘 사람들로 붐빕니다. 골목 끝에서 오른쪽 주택가로 10여 분 올라가면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 성인의 성해를 모신 순례 성당에 닿습니다. 원래 힐데가르트가 두 번째 세운 아이빙엔 베네딕도회 수녀원이 있던 곳입니다.
힐데가르트 성인은 독일 최초 여성 신비가·식물학자·음악가·시인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매력적인 중세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천재로 이미 생전에서부터 지역 성인으로 추앙됐지만, 공식적으로는 2012년 성인품에 올라 ‘교회 학자’로 선포됐지요.
힐데가르트는 1147~1150년 빙엔의 루페르츠베르크에 베네딕도회 수녀원을 세웁니다.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1165년 강 건너편의 이곳 빈 옛 아우구스티노회 이중수도원 건물을 인수해 분원을 세웠던 것이죠. 30년 전쟁 중 스웨덴군에 의해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이 파괴되자, 1641년 수녀들은 아이빙엔 수녀원에 정주합니다. 이때 성인의 성해, 성인이 기증받은 다른 성인들의 성유물, “주님의 길을 알라”라는 뜻으로 성인의 환시를 기록한 필사본인 ‘스키비아스(Scivias)’도 옮겨왔습니다.
성당 안은 원통형 내부 공간에 제대 쪽 하늘색 파스텔 색조가 어우러져 단아한 느낌이 납니다. 성인의 성해가 모셔진 제단의 금빛 성해함과 본당 왼편 성유물 진열장이 이곳이 순례지임을 알려줍니다.
1802년 세속화로 수녀원이 폐쇄되고, 수녀원 성당이 교구 본당으로 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성인의 성해는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100여 년이 지나 순례 성당에서 1㎞ 떨어진 언덕에서 다시 공동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일 테지요. 1904년 뤼데스하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설립된 상트 힐데가르트 베네딕도회 수녀원의 아빠티사는 힐데가르트 성인의 직계 후계자입니다.
독일에서 유일하게 포도주 생산하는 수녀원
성인이 아이빙엔에 수녀원을 세운 데에는 포도 재배도 한몫한 걸로 생각합니다. 이곳은 남향의 비탈길이라 일조량이 풍부한 곳이었고, 귀족만 입회했던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과 달리, 시토회 수도원처럼 노동력을 위해 평민도 받아들였거든요. 지금도 순례 성당 뒤에는 림부르크교구의 포도밭과 양조장이 있고, 상트 힐데가르트 수녀원도 독일에서 유일하게 포도를 직접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중세 포도 품종은 쉽게 상하고 낙과가 많아 들인 공에 비해 수확량이 너무 적었습니다. 포도 수확과 양조는 땅과 식물에 대한 지식, 땀과 노동력 집중이 필요해 수도자들은 끊임없이 식물과 재배법을 연구했지요. 일례로 이곳과 가까운 1136년에 설립된 에버바흐 시토회 수도원은 12~13세기 200여 군데 포도밭을 운영하며 중부 유럽 포도주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지금 뤼데스하임 일대가 포도 산지로 유명한 건 그런 노력 덕분이고, 아마도 ‘작은 전사(戰士)’라는 뜻의 이름처럼 성인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례 팁>
※마인츠나 비스바덴에서 자동차(코블렌츠/로렐라이 방향 B42)나 기차(RB10)로 30분. 라인강을 건널 때 빙엔-뤼데스하임 카 페리 이용(5:30~22:00/24:00)
※상트 힐데가르트 수녀원 성당의 성녀 생애를 담은 보이론 화풍의 프레스코화, 수녀원에서 내려다보는 풍광! 수녀원 전례(6시 아침기도, 8시 미사, 12시 낮기도, 17시 30분 저녁기도, 19시 30분 끝기도)
※수녀원 성물방에서 수녀원 포도주를 시음·구매 가능. 시내에서 지역 브랜디가 들어간 뤼데스하임 커피는 색다른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