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였던 초록 들판과 파란 하늘이 펼쳐진 제주도 성 이시돌 목장보다 싱그럽고 활기찬 미소가 인상적인 이어돈 신부(리어던 마이클 조셉·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그 안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았던 이 신부의 다방면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들어봤다.
우선 하느님을 믿고 나서기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은 하느님 명령으로 고향을 떠날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 것이다. 이어돈 신부는 이와 달리 현대 생활이 계획의 연속임을 우려했다.
“고(故) 임피제 신부님도 제주도에서 처음부터 성 이시돌 목장, 복지병원, 피정의 집, 어린이집, 사제관 등 이 모든 걸 하리라고는 생각 못하셨을 거예요. 물론 계획은 있으면 좋은데, 앉아서 3년 후 계획을 얘기하는 일은 없었어요. 사랑은 말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거예요. 어떻게 실천할까 생각하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방법이 생겨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큰일을 성취하게 되는 거죠.”
이 신부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일들에서 앞으로의 희망도 본다고. 자신도 처음 한국에 온 이유가 그저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지려다가, 였기 때문이었을까.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라는 성경 구절처럼, 처음부터 너무 원대한 무언가를 찾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시작하는 것, 그러다 보면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의 도우심대로 역사하실 것이라고 이 신부는 믿는다.
“누구나 성소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저의 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은 선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를 통해 ‘다름’을 배우다
“방 2개짜리 집에 신부 두 명이 살았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와서 몇 명이 함께 사냐고 물었어요. 두 명이라고 하니 둘밖에 안 되냐고 놀라더라고요. 자기는 이만한 집에 10명이 함께 살고 있다고요.”
1986년 1월 사제 서품을 받고 8월 한국으로 파견된 이 신부는 서울에서 1년 반 정도 빈민 사목을 했다. 한 도시 안에서 누구는 따뜻한 방에서 자고 누구는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후 30년이 훌쩍 넘게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 신부는 “한국에 오래 살아서인지 이제 아일랜드 가면 좀 어색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일랜드에서만 살 때보다 한국에 와서 생각이 많이 넓어지고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됐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는 예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 가장 좋은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신부는 자신의 견해나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반대는 외면하는 성향을 경계한다.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끼리만 모이면 어떠한 틀 안에서만 사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버린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지금도 새로운 걸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어요.”
다른 나라를 가게 되면 ‘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이 많아진다. 그 후 고향에 돌아가면 그동안 당연했던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고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신부는 “다양성 안에서 하느님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며 “여러 문화를 통해서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때론 다투기도 해야 서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면 양쪽에서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선교사는 부족할수록 많이 배울 수 있으니 서로의 문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이 신부는 유쾌하게 귀띔했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웃기
“제가 믿는 하느님은 신자 비신자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신자들만을 위해서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다른 종교라고 차별하지 말고 상대방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게 이 신부의 생각이다. 다른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선교 사제가 다른 나라에 갔을 때 그 문화에서는 아무리 이상해 보이더라도 신자들은 ‘그래도 우리 신부님’이라며 인정을 한다. 이것은 차별을 조금씩 없애는 데 효과적이라고. AI가 우리 하는 일을 거의 모두 다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을 받는 요즘, 다른 사람을 자기 도구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세상엔 심각한 일이 많죠. 웃지 못하면 미쳐버릴 수도 있어요.”
인터뷰 내내 재치 있는 말로 웃음을 자아낸 이 신부는 “예수님이 옆에 계셨더라면 농담을 많이 걸었을 것”이라며 “위트로 어떤 어려움도 넘어갈 수 있다”고 유머에 대한 철학을 전했다. 어떠한 긴장 속에 있는 관계에서도 농담을 하면 이내 굳었던 얼굴이 얼음 녹듯 풀리며 미소로 바뀐다. 물론 자칫하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농담을 할 땐 조심해야 한다. 또 남들은 웃지만 나 혼자 상처를 받았을 때, 열을 내면 혼자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위트에서는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이 신부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웃음과 농담이라는 부드러운 방법이 더 좋은 선교 방식이라고 여긴다. 이 신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한마디를 들을 차례가 왔다. 장난기로 무장한 이 신부의 앞날은 역시나 하느님과 함께다.
“하느님은 앞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는 길을 도와주실 거예요. 하느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말이에요. 뭐, 믿으면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