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절이고 뒤집고 헹구고 짜고
양념장 만들어 버무리고 숙성까지…
선교사들이 겪는 과정 아닐까 생각
한국 음식을 나누며 감사를 느끼다
지난 7월 1~5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제26차 아미칼(AMICAL, 라틴아메리카 한국가톨릭선교사회)을 준비하고 또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몇 가지를 나누자면, 무엇보다 ‘감사’입니다. 사실 아미칼 때 많은 선교사가 특히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라면·김치 같은 한국 음식입니다. 그렇기에 매년 모임을 준비하는 나라에서는 한국 음식을 공수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페루 리마 한인 공동체는 중남미 선교지의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적은 수의 신자분들이 계심에도 본당 및 선교센터 담당이자 아미칼 준비위원장이신 김영복 신부님을 주축으로 수많은 한국 식품들을 넘치도록 기부해주셨습니다. 라면·김·포장 김치뿐만 아니라, 저녁 아가페 때는 한국 음식을 직접 해주셨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신부님을 통해 코인 육수와 묵주도 선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이 더 특별했던 건 몇몇 수녀님들께서 그동안 받은 감사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각자 선교지에서 특별한 음식들을 가져와 나누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선지 식사와 간식 자리는 늘 풍성한 기쁨의 잔치가 됐습니다. 또 중남미에서 교포 사목을 맡고 계신 몇몇 공동체 신부님들께서 어려운 상황에도 선교사 기금을 마련해 아마칼에 봉헌해주셨습니다.
더불어 몇몇 신자분들께서는 익명으로 후원금을 봉헌해주셨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받는 후원금과 함께 개별 지역 교회에서 선교사들을 위해 정성을 나눠주심에 아미칼에 참여한 모든 선교사가 따뜻한 사랑을 풍요롭게 받았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 다시금 선교지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미칼이 준 큰 선물 ‘형제적 연대’
또 아미칼을 통해 저희가 받은 큰 선물 중 하나는 바로 ‘형제적 연대’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의 선교를 하며 살아가는데, 특별히 아미칼이라는 모임을 통해 서로가 다시금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고 그 안에서 서로 사랑과 위로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 곳이 바로 아미칼 모임입니다.
아미칼 준비위원장 김영복 신부님께서는 “형제와 같은 선교 신부님들을 알게 된 것과 동반자와 같은 선교 수녀님들, 평신도 선교사들을 만난 것이 아미칼이 주는 큰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미칼에서 우리는 하나의 교회이며, 한 형제자매임을 재확인합니다. 한국에서 지낼 때엔 서로 다른 교구와 수도회에 살면서 이런 공감을 나눌 기회가 적었는데, 오히려 선교지에서 한국 교회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의 교회’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애 첫 김치를 담그며
끝으로 제가 개회 미사 강론을 준비하며 묵상했던 ‘첫 김장에 대한 체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많은 선교사가 아미칼에 참석하면서 기대하는 것이 바로 한국 음식인데, 그중에 제일이 ‘김치’입니다. 개최지의 한인 공동체가 클 경우, 신자분들께서 직접 아미칼 전에 김치를 준비해 봉헌해주십니다. 그런데 페루 리마 한인 공동체는 다른 곳에 비해 신자 수가 워낙 적어 이분들께 아미칼 모임에 참석하는 60여 명의 선교사가 5일간 끼니마다 먹을 김치를 부탁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리마에서 선교 중인 신부님· 수녀님들과 마음을 모아 아미칼 개최 1주일 전에 김치를 담갔습니다. 심지어 아미칼에 참석은 못 하지만 소식을 듣고 함께해주신 신부님들, 한인 신자분들까지 15명의 봉사자가 모였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선교 11년 차이지만 단 한 번도 김장을 해본 적 없었기에 인생 첫 김치를 담그게 되었습니다.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생배추를 손질해 소금에 절이고 물에 담그는 과정, 또 시간이 되면 위아래를 뒤집어줘야 하는 과정, 또 그 사이에 사과·생강·풀·무·파 등 속 재료를 정성껏 썰어 준비하며 고춧가루·액젓과 버무려 양념장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소금에 절인 배추를 물에 잘 헹궈 물기 없이 짜주는 과정과 양념에 버무린 후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 등 모든 것을 일주일 간 바라보면서 문득 우리 선교사의 삶과 참 비슷하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선교를 처음 나와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소금에 절여지는 배추처럼 선교사로서 한국에서 가져왔던 경직된 힘을 빼는 과정도 겪게 됩니다. 선교지 환경 또한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소금에 절여진 것도 힘든데 자꾸 위아래로 뒤집힙니다. 새로운 문화·새로운 언어·새로운 음식·새로운 사람들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선교사들의 모습 같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제 깨끗한 물에 씻겨지나 싶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수분을 완전히 빼야 합니다. 익숙해지는 듯한 선교지 환경에서 계속 마주하게 되는 여러 어려움으로 선교사들은 마지막 힘과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이때 힘없이 축 처진 우리 선교사들의 어깨가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잘 준비된 양념을 만나고 또 숙성 시간을 거치게 되면 마침내 맛있는 김치가 됩니다.
선교사들은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선교지에서 마주하며 삽니다. 하지만 어느새 하느님 시간 안에서 잘 숙성된 김치처럼 아름답게 성숙한 선교사가 됩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 선교사들이 겪는 선교의 과정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소금에 절여져도, 위아래로 나의 삶이 의지와 상관없이 바뀌더라도, 또 선교지 환경이 마지막 힘까지 빼앗아 가더라도 그 삶에서 정성껏 준비된 양념 같은 하느님 말씀과 성사·신자 공동체를 만난다면 언젠가 주님의 시간 안에 잘 숙성된 ‘김치’와 같은 선교사가 되지 않을까 묵상하면서 주님께 은총을 청해봅니다.
아미칼 통해 큰 사랑과 힘을 얻고
감사하게도 저희 선교사들은 이번 아미칼을 통해 큰 사랑과 힘을 얻고, 다시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 선교지의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느님, 아미칼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물적·영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나눠주신 모든 분, 그리고 아미칼을 사랑하고 또 아미칼 그 자체이신 모든 선교사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2년째 봉사하고 있는 우리 회장단 임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 축복과 사랑이 복음을 통해 온 세상에 전해지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