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시사진단]착한 사마리아인의 원칙(김성우 신부, 청주교구 가톨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유난히 길었던 더운 날씨로 울긋불긋한 가을의 낭만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채 이제 연말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이맘때면 우리는 주위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거리에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각종 대중매체에서 연말연시를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뜻깊게 보내자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맞춰 여러 기관이 자선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필자가 노인복지관에서 지내던 때였다. 매년 그러하듯 11월 말에 홀몸노인 김장지원 사업을 준비했다. 김장김치를 후원받고, 또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 50여 세대에 김장김치를 나눠드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을 무렵, 김장김치를 받으신 어르신 한 분이 드린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김치를 복지관으로 가져오셨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영문을 여쭤보니, 어르신께서 “집에 김치가 너무 많아. 복지관·동사무소에서도 주고, 통장도 가져다주고?. 이렇게 많이 필요 없으니, 복지관에서 필요한 곳에 써”라고 말씀하셨다. 죄송한 마음과 너무 안일하게 김장을 지원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의 애덕실천에는 원칙이 있다고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밝히셨다. 그 원칙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원칙’(루카 10, 29-37 참조)이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초주검이 되어 길에 쓰러져 있었다. 이 사람 곁을 사제와 레위인이 지나갔지만,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이방인이라 무시당하던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핵심은 우리의 애덕실천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 중심의 애덕실천을 강조한다. 이웃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교회의 자선활동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시대에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원칙’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인간을 향한 정성이다. 즉, “이웃들의 일시적인 요구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해, 그들이 풍부한 인간애를 체험할 수 있도록”(「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양성되어야 한다.

이웃을 향한 정성은 나의 이웃들을 존중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무시하거나, 내가 더 가진 자라고 우쭐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예외 없이 하느님에게 그 존귀함을 부여받은 이웃임을 깨닫고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잊지 않음으로써 이웃을 향한 정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

많은 사건·사고와 불안한 국제정세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사상 최고라는 발표만 보더라도 얼마나 힘든 시기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칫 사회적 우울과 허탈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 하지만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사회에는 아직도 곳곳에 있다. 그들이 밝히는 작은 불빛은 살아있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우리 또한 각자 삶의 자리에서 이웃을 정성을 다해 바라보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줄 수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이 시대에 필요한 작은 빛이 되길 기대한다.





김성우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11-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7

시편 85장 11절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