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들은 11월 21일 프란치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의 영성과 숨결이 깃든 아시시를 순례했다. 1000년 고도(古都)이자 세계적 평화의 성지인 이곳에 새천년기 신세대 복자가 영면해 있다.
가톨릭 신앙을 지닌 젊은이 모두가 잘 알고 공경해야 할 10대 소년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Carlo Acutis, 1991~2006)다. 가톨릭교회에서 21세기 선종한 첫 복자로 내년 희년에 시성을 앞두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복자의 유해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둔 한국에 당도해 한국 청년들에겐 더욱 남다른 관계가 된 복자다.
청년들은 아시시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에 생전 모습 그대로 안치된 그의 유해 앞에 무릎 꿇고 참배했다. “성체는 천국으로 가는 저의 고속도로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놀라우리만큼 깊은 성체신심과 성모신심을 지녔던 소년은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묵주기도를 바쳤고, 성체조배와 성지순례를 좋아했다. 천진난만했던 소년의 생각과 삶은 온통 예수님과 성모님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를 이웃과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전하며 ‘주님의 인플루언서’로 불렸던 그는 급성 백혈병으로 15세에 선종하고 만다.
청소년 복자로서 희년인 내년 4월에 성인이 될 아쿠티스 복자와 만난 이 날 한국 청년들 앞에 복자와 꼭 닮은 여성이 모습을 보였다. 아쿠티스 복자의 모친 안토니아 살자노 아쿠티스씨였다.
안토니아씨는 “아들은 7살 때부터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면서 “깊은 성체신심과 성모신심을 지녔던 아들은 내년 4월 시성이 될 예정이며, 결국 여러분과 같은 밀레니얼 세대 첫 성인이 된다. 여러분에게도 이것이 큰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안토니아씨는 “세계청년대회는 정말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며, 한국의 젊은이들은 잘해낼 것이라 확신한다”면서 “여러분 또래였던 아들 아쿠티스처럼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 특별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십자가와 성모성화가 선사한 가슴 뭉클함
이번 WYD 십자가와 성모성화 이콘 전달은 한국 청년들에게 생각지 못한 감격을 선사했다. 성윤주(라파엘라, 대구대교구)씨는 “십자가를 처음 손에 든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면서 “어떤 식으로 내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십자가의 무게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며 2027 서울 WYD에서 전 세계 젊은이가 기쁘게 신앙체험을 해낼 수 있게끔 역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솔비(라파엘라, 인천교구)씨는 “십자가를 전달받는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면서 “뭉클했던 그 감정이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가까이 있는 청년들에게 WYD의 정신을 잘 알릴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종강 주교는 “우리가 이제는 진정으로 십자가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며 “세계청년대회는열정을 발산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삶의 한가운데로 받아들이는 내적인 여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는 “십자가는 곧 승리를 뜻하며 세상이 힘들더라도 극복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희망과 승리의 메시지인 십자가가 리스본에서 서울로 오는 모습을 통해 우리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이자 한 형제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한국 청년 대표단이 받은 두 상징물은 앞으로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교구들을 순회하며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십자가와 이콘 전달식에 함께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세계청년대회를 위해 십자가를 전하는 것은 십자가 안에 최고의 사랑과 희망, 구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십자가를 사랑하고 성모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면 대회가 끝난 후 충만히 받은 하느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게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BOX] WYD 십자가와 성모성화의 유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전 세계 다니며 보여줘라” 청년들에게 건네며 당부
나무로 만든 3.8m 높이 WYD 십자가는 1983년 구원의 성년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전 안에 세워졌다. 이듬해인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바티칸을 찾은 청년들에게 십자가를 건네며 당부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성년을 마치며 십자가를 여러분에게 맡기니, 전 세계를 다니며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으로 이를 보여주십시오.”
WYD 십자가는 본당에서 본당, 교구에서 교구, 국가에서 국가로 이동하며 5개 대륙 90개국을 누볐다. 2003년부터는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 사본도 순례에 동행했다. 6세기부터 로마 시민들이 역병 종식을 위해 그 앞에서 기도했다는 연유로 붙은 이름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성화를 젊은이들 가운데 현존하는 성모 마리아의 표징으로 여겼다. 높이 120㎝, 너비 80㎝의 원본은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