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올해 5월이 돼서야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 특별법)이 통과되고, 9월 13일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해 본격적인 진상규명에 들어갔다.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과정이 미뤄지는 동안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투사가 됐다. 추모공간 ‘별들의 집’에는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사고의 명확한 원인 규명을 기다리는 그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어려 있었다.
이곳은 별들의 집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1층엔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이하 별들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로비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카페의 복작거림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고요하다. 유가족에 따르면 이곳은 건물에서 가장 밝게 디자인된 곳이다. 아픔을 딛고 희망을 꿈꾸는 유가족의 바람인 걸까. 별들의 집은 찾아오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 듯한 흔적이 보인다. 그 마음을 아는지, 한쪽 벽에 걸린 희생자 159명의 얼굴빛도 한결같이 밝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진들 위로 천장에 달린 반짝거리는 별 장식들이 보인다. 또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별 모양 장식품들도 있다. 딸 고(故) 이주영 씨의 아버지이자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정민(프란치스코) 씨는 “별은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희생자들을, 또 반짝이던 삶을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한쪽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들이 보인다. 유가족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도 쪽지에 적힌 시민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을 얻는다.
드문드문 방문객이 들어와 추모공간을 둘러본다. 시청 앞 광장 분향소 때처럼 야외에 개방된 장소는 아니다 보니, 추모공간의 존재는 알아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유가족은 말한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별들의 집은 ‘기억소통공간’이라는 말답게 참사 희생자들과 그들이 살아온 삶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유가족이 서로 소통하고 의지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2년 지나도 명확한 원인 규명 없어
언제 또 옮겨야 할지 모를 추모공간
159명 희생자 얼굴 사진 걸린 벽면
한 쪽엔 유가족 위로하는 쪽지들도
“시민들의 연대와 공감이 커다란 힘”
어려움 속에서도 별을 지키는 이들
“언제 다른 곳으로 또 옮길지, 옮길 만한 장소가 있기는 할지 몰라요. 그래서 좋아질 거라는 희망과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게 보장된 게 없다는 걱정 두 가지를 다 안고 버티고 있습니다.”
추모공간은 올해 6월 시청 앞 광장 분향소에서 을지로 부림빌딩으로 옮겨 ‘별들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했으나 11월 2일 지금의 자리로 또 옮겼다. 모두 서울시가 임시로 대여해 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언제 또 다른 장소로 공간을 옮길지 모르지만, 별들의 집에는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줌은 물론이고 진상규명을 기다리고 염원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고(故) 이상은 씨 어머니 강선이 씨는 “정식으로 추모공간을 조성하라고 특별법에 명시돼 있지만, 그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그때까지 몇 번을 더 옮길지, 옮길 만한 장소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추모공간은 유가족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강 씨는 “2년이 넘으면서 유가족도 각자의 경제적 어려움 등 현실적 문제로 이 ‘지킴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도대체 이 사고가 왜 발생했나”를 밝힐 진상규명에 대한 희망이다.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도대체 왜 이 사고가 발생했고, 우리 아이가 사고 후에 제대로 인계가 안 됐을까… 그나마 이런 것들이라도 밝혀져야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희생자들 억울한 거 다 풀고, 또 앞으로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규명이 돼야 해요.”
유가족은 진상규명만큼은 정쟁이 아닌 ‘정의’에 기반을 두길 바랐다. 하지만 대통령이 특별법을 최종 공포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진통 끝에 여야 합의가 이뤄져 특별법이 공포됐고, 이 법을 근거로 범정부적인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참사 행정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있었다. 이정민 씨는 “재판 결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일어나선 안 됐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 하나”라고 말한다. 특별조사위는 재판 결과를 토대 삼아 더 구체적인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조위는 국회를 방문해 여야 원내대표를 모두 만나 “진실에는 정파가 없고, 진상규명에는 여야가 없다”며 조사 여정이 다시는 정쟁에 휩싸이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희망, 길고도 긴 그들만의 ‘대림’
이정민 씨는 딸의 희생에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신을 원망하며 신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그를 가장 많이 위로한 이들은 수녀들이었다. 그래서 이제 숨기지 않는다.
강선이 씨는 딸 덕분에 지금은 남편과 함께 예비신자다. 강 씨는 “상은이의 꿈이 천주교 신자가 돼 명동성당에서 결혼하는 것이었다”며 “못 이룬 딸의 바람을 이어 ‘로즈마리’라는 세례명으로 남편과 함께 내년 3월 세례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채 가시지 않았고, 불확실하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지만 유가족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이들은 좀 더 일찍, 그들만의 간절한 대림을 보내고 있다.
“많은 분이 연대하고 공감해 주시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하늘의 별이 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진상규명 중인 저희 모두를 위해 신자 분들도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