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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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주일 기획] 미등록 이주민 부모를 둔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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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를 권리’와 ‘꿈꿀 권리’를 요청하며 ‘WE ARE ALL DREAMERS’를 만든 이주 청소년들이 연대에 참여해 달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한국 땅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한국서 태어났지만 법적으로 미등록
병원 갈수도 없고 보험 가입 안 돼

전국 미등록 이주아동 2만 명 추산
조건부 구제대책마저 내년 3월 종료

영국·프랑스 등 국적 취득 폭넓게 인정
교황청, 이주아동 체류·교육 권리 강조



법무부 출입국통계에 따르면, 2024년 10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이 269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총 인구의 5.2에 달하는 수치다. OECD는 외국인 비중이 인구의 5를 넘어서면 ‘다인종·다민족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수치상 확실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더 큰 성공을 위해 건너온 이들도 있지만, 전쟁과 생활고 등 자국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죽음을 피해 쫓겨나다시피 온 이주민과 난민들이 있다. 이땅에서마저 이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2세대 이주 자녀·미등록 이주아동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은 ‘태어났지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인권 주일(8일)을 맞아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짚어봤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리사(17, 가명)양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다. 여느 한국 학생들과 같이 K-팝과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가 친구들과 다른 점은 엄마는 필리핀, 아빠가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아빠와는 어릴 때 연락이 끊겨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흑인년’이라 놀렸다. 법적으로도 미등록 상태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수학여행 때도 여행자보험이 안 돼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제 꿈은 간호사예요. 아픈 사람들을 보살펴주며 살고 싶어요.” 하지만 리사양의 꿈은 막혀 있다. 지금 국내 제도로는 리사양이 자격증을 취득할 방법이 없다.

헨리(17)군도 한국에서 태어나 이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엄마는 필리핀, 아빠는 나이지리아 출신이다. 그나마 헨리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대책’으로 한시적 체류자격을 취득한 상태. 밝은 성격에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다. “제가 축구를 곧잘 하는 편이에요. 축구 선수가 되어 태극 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는 게 꿈입니다.” 헨리는 실력을 인정받아 선수로 활약 중이다. 하지만 귀화하는 게 국가대표 되는 것만큼 쉽지 않다.

이들은 모두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이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 아이들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말이다. 한국어를 쓰고 우리 문화 안에서 자라 또래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꿈은 가로막혀 있다. 성인이 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강태완(32, 몽골명 타이반)씨는 지난 11월 8일 전북 김제시의 특장차 회사에서 10톤짜리 무인 건설장비와 고소작업 차량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1998년 5살 때 몽골 출신 엄마와 한국으로 이주해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가 막 취업해 꿈을 펼치려던 때였다. 성인이 된 그는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자진출국을 신고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법무부가 자진출국을 하면 미등록 이주민에게 다시 입국할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다.

이후 강씨는 2022년 국내 한 대학에 합격해 구제대책을 신청하고 유학 체류자격을 받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안정적인 체류자격은 여전히 주어지지 않았다. 지역특화형 비자(인구소멸 지역 5년 거주자)를 얻기 위해 전북 김제 회사에 취업했다. 그리고 입사 8개월 만에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이다.

강씨와 같은 처지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11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결의한 단체 이름은 ‘WE ARE ALL DREAMERS’. 체류자격이 없다고 꿈마저 없지 않다는 외침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촉구했다.

 
물놀이를 떠난 ‘에뚜알’ 학생들이 봉사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풋살을 하고 있는 파주 엑소더스의 ‘에뚜알’ 소속 이주배경 학생들.


 
‘에뚜알’ 학생들이 봉사자 지도하에 단체 놀이를 하고 있다.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의 명암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법무부 장관에게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권고했다. 이에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발표했고, 2022년 1월 개선안을 내놨다.

개선안에 따르면 조건부 구제 신청 조건은 국내 출생 또는 6세 미만 입국의 경우 6년 이상, 6세 이후 입국의 경우 7년 이상 국내에서 체류해야 하며, 국내 중·고교 재학 또는 고교 졸업을 해야 한다. 부모에게는 범칙금 납부를 조건으로 내걸고 성년이 될 때까지 임시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범칙금 납부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 감면을 적극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구제대책마저도 2025년 3월 31일 종료된다. 한시적인 대책이다.

체류자격을 취득하게 되면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고, 각종 대회 참가와 대학 진학 등이 안정화된다. 통장·휴대폰·학생카드 발급과 자격증시험 응시도 가능하다. 다만 부모에게 주어지는 G1 비자(일정 기간 체류를 허가해 주는 임시 비자)는 원칙적으로 취업이 불가하고,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더라도 종사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된다. 특히 자녀가 성인이 되면 출국해야 하는 맹점이 있다. 범칙금 납부 능력이 안 되거나 성년이 된 후 가족이 해체되는 두려움에 신청을 망설이기도 한다.

법무부 이민조사과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이주아동은 총 1205명이다. 하지만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들만 3000명이 넘는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많은 수의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들이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 전체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인구감소 해결과 인력난 해소 명목으로 매년 이주노동자와 유학생 유치 규모를 늘리고 이들의 국내 정착을 유도하는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아동들에게는 안정적 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의정부 엑소더스 강슬기 활동가는 “미등록 이주민을 줄이는 데 가장 필요한 방안은 단속이 아닌 안정적인 체류권 보장과 합법화”라고 호소했다.



아동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의무

국제사회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준해 이주아동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협약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국제인권조약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비준한 인권조약으로 한국도 포함된다. 협약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제2조) 의무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 아동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제3조)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이주아동들의 국적 취득과 체류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영국의 경우, 국적법에 따라 자국에서 태어나 최초 10년을 보내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아이의 미래가 명백히 영국에 있는 경우 적극적인 심사를 통해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8세 미만 아동에 대해 외국인 등록 의무를 부과하지 않아 아동이라면 원칙적으로 강제퇴거당할 걱정 없이 교육권과 건강권을 누릴 수 있다.

캐나다는 국적과 별개로 아동이 살아가는 데 최상의 이익을 도모해주고, 더불어 신청자가 자국에 정착한 정도, 거주하는 가족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호주는 태어난 후 10년 동안 자국에서 거주한 사람에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



난민과 이민을 위한 교황청 지침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는 2017년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사목 행동 지침’과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행동 지침’을 발표했다. 이 두 지침은 유엔이 2018년 총회에서 채택한 ‘난민 글로벌 콤팩트’와 ‘이주민 글로벌 콤팩트’의 초안을 작성하는 데 기여했다. 교황청의 지침과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 역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준거한다.

글로벌 콤팩트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의 강화된 협력과 난민 보호, 그리고 난민 수용국들과의 연대를 위한 정치적 의지와 포부를 드러낸 협약이다.

글로벌 콤팩트의 기반인 교황청이 발표한 두 지침의 골자는 △환대 △보호 △증진 △통합이다. 이 중 7~9번이 이주아동에 대한 내용으로, 이주아동의 체류와 교육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아동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의무’를 재차 강조하는 차원이다.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예외 없이 모두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다는 ‘인간 존엄성’은 사회교리의 바탕을 이루는 동시에 보편적 차원의 인류애와 이어지고 있음을 교황청과 유엔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주아동의 꿈

체류할 수 있는 기본권 보장이 국제사회와 정부의 몫이라면, 교회는 내적 성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의정부교구 파주 엑소더스는 이주배경 청소년의 성장활동을 돕는 ‘에뚜알’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어 에뚜알(Étoile)은 우리말로 ‘별’이란 뜻이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23명의 이주배경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생태놀이부터 요리·그림·캠핑·풋살 등 다양한 활동으로 동반한다. 또 학생 눈높이에 맞는 경제·과학 수업 등을 통해 현실적인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동반의 소중함을 느낀 학생들은 이곳에서 배운 가치를 꿈으로 이어간다. 태국 출신 엄마를 둔 조태근(22)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에뚜알을 처음 방문해 졸업 때까지 꾸준히 다녔다. 태권도 사범을 하다 현재 군 복무 중인 그는 “에뚜알에서 배운 대로 차별하지 않고 모든 아이를 챙길 수 있는 도장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그의 시선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풋티펀(18)군 엄마도 태국 출신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으로 온 그는 곧바로 에뚜알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혔다. 그는 “경영 수업에 매료돼 경영학과 진학 후 음식점을 열고 싶다”면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꿈”이라고 포부도 내비쳤다.

에뚜알은 이주배경 학생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차별당한 상처가 치유되는 공간인 동시에 꿈이 지켜지고 실현되는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파주 엑소더스 위원장 김항수 신부는 “이주아동들은 정체성 혼란은 물론이고,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부모와 달리 자녀들은 정체성 혼란·학업 부진·빈곤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 깊은 어둠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칫 범죄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한다. 김 신부는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놀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성인이 되어 건강한 노동력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체류자격이 없다고 꿈마저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겐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결성한 ‘WE ARE ALL DREAMERS’ 발언 중에서)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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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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