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순례지는 뮌헨과 뉘른베르크의 중간쯤인 국립공원 알트뮐 계곡에 있는 아이히슈테트입니다. 지형상 프랑켄 고원의 낮은 협곡 지대에 있어 도시 전체가 아침저녁으로 안개에 파묻힐 때가 많습니다. 그 덕에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면해 중세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할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 이곳은 도시 탄생 때부터 지금까지 신앙의 열기가 온전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주민의 70가 가톨릭 신자로 한때 주일 미사 참여율이 50를 넘었습니다. 2023년도 아이히슈테트교구의 첫영성체자 수가 3000명에 육박했으니, 유럽 교회가 늙어간다는 말이 무색한 곳입니다.
이런 배경에는 독일 최대 사립대학교인 아이히슈테트-잉골슈타트 가톨릭대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한몫합니다. 학생과 교직원들로 도시 전체가 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히슈테트는 1300여 년 전 낯선 땅에 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가족 성인들의 선교 열정으로 탄생한 도시로, 가족 중심의 신앙이 뿌리 깊은 곳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성 빌리발트가 교구 설립하면서 도시 탄생
아이히슈테트의 초대 교구장 빌리발트, 하이덴하임 수도원장 남동생 부니발트, 그 뒤를 이은 여동생 발부르가뿐 아니라 부모까지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웨섹스 귀족 출신인 성인들의 삶은 하이덴하임 수도원의 휘지부르크 수녀가 기록한 「빌리발트의 전기」(77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778년 여름 빌리발트 주교가 하이덴하임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들려준 내용을 기록한 것인데, 아버지와 두 형제의 순례 여정, 순례 중 아버지 리차드의 죽음, 이후 빌리발트의 예루살렘 순례, 로마에서의 삶, 외삼촌 보니파시오 주교를 도와 게르만족 선교에 뛰어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빌리발트가 41세 때 주교로 서품되어 이 지역 선교를 맡았을 때, 강가 숲에 조그만 성모 소성당 밖에는 이렇다 할 건물이 없었습니다. 빌리발트는 수도원과 12m 크기의 석조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사실상 ‘꿀밤나무골’을 뜻하는 아이히슈테트의 시작이었지요. 지금 그 자리에는 가로 98m, 폭 38.5m 크기의 고딕·바로크·로코코 양식 모두를 갖춘 주교좌성당이 서 있습니다.
대륙 최초 이중수도원 설립한 성 발부르가
이름들이 낯설겠지만, 발부르가는 한번 들어보셨을 겁니다. 유럽 곳곳에 성녀에게 봉헌된 성당이 많고, 괴테의 「파우스트」로 우리에게 마녀들의 축제로 알려진 ‘발푸르기스의 밤’ 명칭도 성녀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게르만족의 봄축제가 중세 성녀 기념일인 5월 1일(지금은 2월 25일)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져 붙은 이름입니다.
오빠 부니발트의 뒤를 이어 하이덴하임 수도원장이 된 발부르가는 수녀원을 추가로 설립해 대륙 최초로 이중수도원을 세웁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성 중심의 중세 사회에서 30년 동안 수도원을 탁월하게 이끌며 선교와 교육을 펼쳤지요. 이중수도원은 남녀 수도자가 한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한 원장을 따르는 형태인데, 수녀들의 봉쇄 생활을 좀더 엄격히 규정하는 수도원 개혁으로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이덴하임 수도원도 다른 형태로 변했고, 발부르가도 한동안 잊혔죠.
‘발부르가 성유(聖油)’의 기적
870년 성당 공사 중 성녀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유해를 아이히슈테트 북쪽에 있는 소성당으로 옮겨 성대히 안치합니다. 지금의 상트 발부르가 베네딕도회 수녀원이 있는 곳이지요. 이런 전례는 당시로서는 시성식이었습니다. 그 뒤 성녀의 유해 일부를 모신 인근의 몬하임 베네딕도회 수녀원에서 여러 기적이 일어나면서 성 발부르가 공경의 물결이 전 유럽에서 일어납니다.
전승에 따르면, 1035년 무덤을 재정비한 뒤부터 성녀의 석관에서 ‘성유(聖油)’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0월 12일부터 성녀가 세상을 뜬 2월 25일까지 석관 아래로 기름같이 끈적한 투명한 액체가 방울져 고이는데, 이 성유로 치유의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금도 수녀원에서 이 발부르가 성유를 모았다가 순례자들에게 나눠줍니다.
16세기 몬하임 수녀원이 폐쇄된 후 상트 발부르가 수녀원은 가장 중요한 발부르가 순례지가 됩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성녀 무덤 위로 바로크 양식의 순례 성당을 새로 짓습니다. 높은 입지 덕분에 수녀원은 아이히슈테트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알트뮐 골짜기를 넘어 아이히슈테트를 찾아온 순례자들은 멀리서 성당을 보면서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을 것입니다.
순례 성당에 딸린 무덤 소성당은 3개 층이 한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녀 무덤 위로 성인 가족상이 보입니다. 참으로 복된 가족입니다. 아버지 성 리차드는 지위와 재산을 전부 포기하고 가난한 순례자로서 삶을 마쳤다는 사실만으로 성인품에 오른 분입니다. 왕의 신분으로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고 병자들을 치유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11세기까지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맨 오른쪽 동상은 어머니인 성 분나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기쁜 여인’이란 뜻의 이름으로 볼 때, 분명 성인들의 숨은 조력자로 여겨 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을 겁니다. 남편은 순례자, 자녀들은 성직자와 수도자로 살다가 천상 낙원에 들었으니, 어머니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까요. ‘희망·순례·선포’를 하는 2025년 희년을 맞아 이들의 순례와 선교의 삶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순례 팁>
※ 뮌헨, 뉘른베르크에서 자동차로 각각 1시간 30분, 1시간 소요. 기차 이용 시, 도심역은 ‘아이히슈테트’역이 아니라 ‘아이히슈테트 슈타트역’임! 두 역 사이에 매 시간 셔틀 열차가 다닌다.
※ 대성당, 수도원, 수호천사 성당. 대학교 캠퍼스가 도보 15분 거리 내에 있으니 둘러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