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13만 원.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집의 방 값이다. 이들의 행복은 방 값과 비례한다. 가장 싼 인스턴트식품을 먹어야 하고, 추운 겨울에 온기를 채울 수 있는 고가의 점퍼는 언감생심이다. 무엇보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지내는 단절된 삶은 이들에게 희망을 빼앗았다. 실제로 2016년 대학동을 포함한 관악구의 고독사 확실 사례는 17건, 고독사로 의심되는 사례는 129건으로 조사됐다. 관악구는 서울시에서 자살자 통계가 가장 높게 분포된 곳으로 꼽힌다. 긴 세월 깊게 새겨진 고독은 인간다운 삶을 잊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희망’이 사라진 동네에 빛이 드리웠다. 그 빛은 “요즘 잘 지내시죠?”라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전한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어둠만 남았던 대학동 고시촌, 빛이 드리우다
2023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인 782만9000가구로, 전년 대비 32만7000가구 증가했다. 이중 40~60대 중장년층 남성 1인 가구는 49.6로 여성(40.4)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시·군·구는 서울 관악구로 조사됐다. 대학동 고시촌도 서울 관악구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신림역 방면으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고시촌 입구. 큰길을 끼고 있는 고시촌 입구는 편의시설도 많고 오가는 청년들로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비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인적이 드물다. 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사람 사는 소리나 온기를 찾기 어렵다.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 박보아(루치아) 대표는 “대학동 고시촌에 지어진 주택들이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눕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고 열악한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고시촌의 가장 꼭대기는 방 값이 제일 싸다. ‘윗동네’라 불리는 이곳에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독거중장년층이 주로 거주한다.
윗동네에 사는 장인국(가브리엘·62) 씨는 20~30대 시절 고시 준비하다 실패한 뒤 고시촌을 떠났다가 20여 년 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장 씨는 “시험에 실패하고 일을 구하려고 했지만 녹록지 않았고 생활비가 싼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며 “한창 일할 나이인데, 방에 틀어박혀 있는 대학동 고시촌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좌절감을 경험하면서 가족도 떠나고 건강도 나빠진 사람들이 예전처럼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동 고시촌에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2017년, 대학동 고시촌에서 혼자 사는 중장년층 주민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동굴 속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5~6년 전까지만 해도 독거 중장년층에 대한 복지가 전혀 없었고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하고 계셨다”며 “결국 직접 찾아다니며 고시원 문을 두드려 해피인에서 밥을 드시라고 말씀드리면 와서 밥상만 보고 밥을 먹고 돌아가실 뿐,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셨다”고 전했다.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와서 같이 밥 먹어요.”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 지 8년이 지난 2025년. 고시촌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커다란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한 곳으로 향한다. 해피인에서 음식을 받아 가기 위해 도시락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지나는 길에 만난 이웃에게 “어제는 왜 밥 먹으러 안 왔어?”, “감기 걸린 건 괜찮은 거야?”라며 안부 인사를 건네며 미소 짓는 일도 흔하다. 8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다.
힘들고 지친 수험생들과 동행하고자 2004년 대학동 고시촌과 인연을 맺은 박 대표는 그들이 떠나고 다시 어두운 동굴로 들어온 독거 중장년층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2017년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지도 이재열 야고보 신부)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함께 밥을 먹는 것. 하지만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은 방 안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박 대표는 “모두 쪽방에 혼자 사는 분들이다 보니 말을 걸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을 싫어해 이분들과 접촉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었다”며 “직접 만든 음식을 무료로 드리는 곳이 유일하다 보니 한 분씩 나와서 밥을 먹기 시작해 30명이던 분들이 이제는 150명이 됐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도 대학동 고시촌 독거 중장년층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책을 찾으려 했으나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부터 난항을 겪었다. 그때, 점심을 먹으러 주민들이 모이는 해피인이 그 창구가 됐다.
박 대표는 “하루에 한 번 주민들이 오는 곳이 해피인이라는 것을 알고 지자체나 정부기관에서 저희와 연계해 심리상담이나 주거복지상담과 지원을 진행하게 됐다”며 “해피인 활동 소식을 듣고 치과 치료를 돕겠다는 의사 선생님도 계셨고,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와도 연결돼 해피인 사무실 옆에 쉼터인 ‘참 소중한...’ 센터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거 중장년층을 돕기 위해 모인 8개 기관은 ‘대학동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쉼터와 주거복지, 의료와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예수님을 닮은 이들이 뿌린 희망의 씨앗이 더 큰 희망을 낳아 희망을 확장시킨 것이다.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안에 갇혀있던 이들에게는 큰 희망의 빛이 됐다. 대학동 고시촌 주민들은 윗말협의회를 만들어 동네 청소, 꽃길 가꾸기, 주민 돌봄 활동 등을 통해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베풀고자 누군가의 옆에서 함께 걷는 노력을 하고 있다. 주민 장인국 씨에게 대학동 고시촌에 희망이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해피인에서 찾은 희망이요? 스스로 노력해서 충분히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았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해피인 앞 길을 ‘해피로’라고 불러요. 이곳에서 우리 모두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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