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
<인테리어>
그럭저럭 대부분의 공정은 이루어졌고 마무리만 하면 되었다. 남은 것은 인테리어... 인테리어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내가 인테리어에 대해 뭘 아나? 하지만 몇몇 인테리어 관계자를 불러 설계를 맡겨보았지만 전혀 내 눈에 들지 않았다. 나는 내 눈썰미와 감각을 믿고 두루두루 쫓아다니며 견학하고 자문을 구했다. 실상 고딕 성당은 그 구조 자체가 가장 뛰어난 인테리어지 별다른 인테리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전례적으로 아름답고 경건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할 것인가가 문제고, 또 어떻게 하면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와 색감을 연출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성당 내부가 너무 여러 가지 화려한 색상으로 되어있으면 어수선하고 눈도 혼란스럽고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랜 탐색과 궁리 끝에 결국 미색(아이보리, 밀크 화이트)과 갈색(브라운(체리))으로 모아졌다. 실제로 완성 단계에 이를수록 예쁘고 단아하며 차분한 것이 맘에 들었다. 순간 나의 눈썰미와 감각이 이정도 였나...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고딕 성당 내부 인테리어의 백미는 역시 스테인드 글라스였다. 인간이 만든 유리를 통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니 빛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름다운 광채가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만민이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에 비쳐 들어오는 그 아름다운 빛깔... 마음 같아서야 노트르담 대성당(가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만..)의 스테인드 글라스나 적어도 명동 성당 정도의 모습이라도 구현하고 싶었지만 예산이 어마어마하기도 하거니와 국내에 어느 고딕성당을 가도 내 눈에 차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공주 중동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김동억 신부님 재임시 이남규 화백 작)를 만들었던 화가의 제자(파주 헤이리 유리재연구소)인 조규석(요한) 화백에 대해 듣고 무작정 쫓아갔다.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유구성당 내력과 순교자의 얼이 깃든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선뜻 수락을 하지 않았다. 여러 번 쫓아가고 연락하며 졸랐더니... 어렵게 수락을 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여러 가지 평가와 구설수에 오를 수 있음에 쉬이 수락을 못 하고 신중히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나의 끈기와 열정에 감복했는지 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이 오래도록 진행되는 가운데 성당 바닥재, 제단석 등 … 중요한 부분의 자재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궁리하다가 휴게실 화장실에까지 흔하게 까는 타일이나 화강석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여 대리석을 깔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색상과 문양이 중요했기에 역시 신중하게 궁리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스페인의 Granada 라는 업체에 의뢰하여 역시 아이보리 빛깔과 브라운(체리)톤 그리고 붉은 계통의 걸레받이석으로 하여 주문했다. 고맙게도 제대와 감실을 비롯하여 구입하는데 수원 교구 김진태 신부님이 자상하게 조언을 해주시고 아울러 유학 시 공부했던 현지 교구장 주교님까지 아시게 되어 정말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시고 크게 배려해 주셨다. 거의 100여 일 만에 항공으로 실어 온 대리석과 성물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튼튼한 포장과 내구성, 성물들의 아름다움은 정말 가슴 떨리는 감동이었다. 자부하건대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제대, 감실, 성물(성작, 성합 …)은 다시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제단 구성도 흔히 대부분 성당이 그렇듯 제대 뒷벽에 어두운 색상의 칙칙한 십자나무에 예수님의 몸이 걸쳐져 있는 모습들... 그것이 십자가의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칙칙하거나 비율이 맞지 않는다든가.. 등등 뭔가 자연스럽지 않고 어떤 것은 심지어 패션쇼를 하는 것인지 너무 지나치게 멋을 부렸다든가 등등 맘에 들지 않았다. 일본에 서 본 성당 … 책자나 인터넷 등에서 검색하고 탐색을 거듭한 결과 딸랑 십자가만 걸쳐 놓기보다는 십자가 양 옆에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함께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또 따랐던 두 사람의 꾸밈없는 비통한 심정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리고 처음에는 십자가를 스테인드 글래스로 표현해 볼까 했는데... 작가와의 여러 가지 숙의 끝에 스테인드 글래스와 십자가는 별개로 하되, 스테인드 글래스의 중앙에 십자가를 배치하는 형식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가 중심이지만 그 십자가를 배경처럼 병풍처럼 스테인드 글래스가 받쳐주는 모양새 그리고 스테인드 글래스의 내용도 너무 구체적인 인물이나 성경 주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문양이나 색감으로 의미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추상적으로 구상했다. 그리고 제대 쪽 스테인드 글래스는 두꺼운 오리지널 오스트리아 색 유리로 제작하고 성당 양 사이드 창은 부드럽고 맑은 톤으로 꾸미기로 했다. 또 색상에 민감한 나인지라 수시로 가서 샘플을 보고 색상에 대해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십자고상과 성모상 요한상도 스페인에서 나무로 조각하여 색채를 입혔는데 내가 의도한 대로 우리 성당 어르신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친근하게 알아볼 수 있는 또렷한 색깔로 마무리해서 질감이 참 좋았다. 그리고 뒤에서 (신자석에서) 봤을 때 위아래 높낮이나 좌우 비율이 맞아야 하겠기에 수십 번도 더 올렸다 내렸다 옮겼다를 반복하다가 마치 영화 감독이 큐 사인을 외치듯이 오케이 선언을 해야만 시행되었다. 조금이라도 어색하거나 눈에 안 차면 마음이 불편해서 도무지 잠을 못자기에 다음날 또 바꾸게 되기가 십상이었다.
제대도 벽 제대를 따로 만들어 감실을 올려놓고 실제 성찬례를 거행하는 제대는 앞쪽에 별도로 설치하고 (최후만찬 조각을 새겨 넣음) 독서대는 네 복음서의 상징을 금도금을 넣어 새겨 넣었다. 그리고 뒤늦게 제대 난간목을 설치했는데, 그러고 나자 고딕성당다운 멋이 구현되었다. 신자석과 지성소(제대)를 구분하면서도 경건한 맛이 더 좋았다. 나중 일이지만 파이프 오르간도 오랜 고민 끝에 제작, 설치하니 제대와 화답하듯 화룡점정인 듯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성당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고, 거기서 아름다운 미사곡이 울려퍼지고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울려퍼질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파이프 오르간 마스터가 세밀하게 점검도 해줘서 더욱 마음이 놓였다. 요한 비안네 성인께서도 본당은 가난했지만 성물만큼은 정말 정성을 들여서 좋은 것으로 쓰셨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고 성물도 비싸더라도 정말 좋은 것, 예쁜 것, 튼튼한 것으로 엄선해서 고르고 골랐다.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세례대까지 비싼 돈을 주고 대리석으로 맞추었다. 본당을 떠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례성사에 써보았다.
그러는 중에 진즉부터 맞춰놓은 성당 장의자, 제대의자, 성당 출입문도 점검,수정했다. 나름 이름 있는 천주교 성물업체 여러 군데에 직접 가보고 샘플을 맞춰 여러차례 상의 끝에 영세하지만 성심껏 만들고 우리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곳을 최종 낙점하여 제작했다. 무엇보다도 장의자는 앉았을 때 등이 다소 뒤로 기울고 허벅지가 엉덩이보다 조금 높아야 편하기에 그 각도를 맞추느라 수백번 다시 해오라고 호통을 쳤다. 아울러 대부분 장궤틀을 만들지 않는데 나는 반드시 장퀘틀을 만들어야 했다. 무릎이 불편한 사람이야 그냥 앉아 있으면 되지만, 성한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느님 앞에 죄인이 가져야할 자세... 그래서 의자와 장궤틀에 골백번도 더 앉아보고 꿇어보고 내 몸으로 느낄 때 어느정도 편하고 인체공학적으로 맞는다고 확신했을 때 비로소 OK 사인을 해줬다.
색상도 너무 튀어도 안되고 희뿌연해도 안되었다. 브라운과 체리색이 잘 조화된 그런 색감을 낼 때까지 계속 반복시켰다. 그 사람들도 지겨워 치를 떨었을 것이다. 어지간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두고두고 불편할 수 있는데... <계속>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