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르포] 착한목자수녀회 이주노동자 방문 사도직 ‘그린도어’ 활동 동행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착한목자수녀회 '그린도어' 사무실 전경.
지난해 5월 기준 국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는 101만여 명에 달한다. 그야말로 ‘이주노동자 100만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매우 취약하다. 고립된 환경 탓에 각종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급격한 도시화·고령화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안 되는 우리네 농촌에서 이들은 아직 기본적인 주거권·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열악한 농촌 이주노동자들을 찾아가는 수녀들이 있다. 새해를 맞아 누구도 돌보지 않는 그들의 ‘코리안 드림’을 이뤄주기 위해, 이주노동자 가정이 춥고 배고프지 않도록 동반하는 착한목자수녀회 이주노동자 방문 사도직 ‘그린도어(Green Door)’ 현장을 동행했다.
초록빛 희망을 향하여
12월 21일 경기도 광주시. 전날 내린 눈으로 도로 양옆에 소복이 쌓인 눈더미 뒤로 낡은 간판을 단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트럭 외엔 인적조차 드문 이곳에 한 수녀가 베일을 흩날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린도어’ 사도직을 수행하는 권영주(착한목자수녀회) 수녀다.
그린도어는 수녀회가 우리나라를 찾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초록빛 희망의 문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 지은 활동이다. 착한목자수녀회 프랑스 모원에 있는 세상을 향한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 문’에서 따왔다. 2017년부터 시작해 7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경기 광주·여주·이천 지역의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가정을 찾아 관심과 따스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집은 작고 숨어있어요. 이 일대는 태국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하면 환경이 양호한 편이에요.”
권 수녀가 가리키는 곳엔 문을 굳게 닫은 낡은 가게뿐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온전한 가정집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가게 뒤편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창고 입구를 연상케 하는 쪽문들이 나란히 보였다.
‘그린도어’ 수녀들이 12월 21일 경기도 여주 일대 농촌을 찾아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
“어서 오세요, 수녀님!” 태국인 부부 수빠뎃(가명)·말리(가명)씨가 수녀를 반겼다. 부부는 얼마 전 태어난 딸 아농(가명)과 겨울을 나고 있다. 남편 수빠뎃씨가 일하는 마트에서 임대한 일종의 ‘사택’에서 아기를 키우며 사는 것이다. 그나마 바닥엔 온기가 있었지만, 쉴새 없이 들이치는 웃풍 탓에 한기가 느껴졌다.
“어제 내린 눈으로 남편이 일하러 못 나갔어요.” 부부가 사는 집 근처엔 대중교통이 없어 마트에서 차량을 보내주지 않으면 일하러 갈 수가 없다. 아내는 신생아인 딸을 돌보느라 일할 수 없는 상황. 남편 혼자 생활비와 병원비,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 양육비까지 챙기고 있다.
집안 분위기를 바꾼 건 권 수녀였다. “아들은 잘 지내죠? 사진 보여줘요!” 고국에 있는 아들만 생각하면 웃음을 되찾는 말리씨가 얼른 휴대전화를 내민다. 권 수녀는 조카를 보듯 사진 속 말리씨의 아들들을 보며 웃었다. “아휴, 너무 예뻐요. 우리 같이 열심히 힘내봅시다!”
사실 권 수녀는 이날 아침 일찍 말리씨 모녀를 태우고 병원을 다녀온 차였다. 7개월 만에 태어나 몸이 약한 아농은 수시로 병원을 찾아 건강상태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집에서 수십여 ㎞ 떨어진 병원을 찾아갈 방법은 택시밖에 없다. 이동에만도 큰돈이 들어 ‘그린도어’가 돕고 있다.
“이동 비용 때문에 많은 농촌 이주노동자가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고, 질환을 키우는 일이 다반삽니다. 멀쩡히 잘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도 적지 않고요. 돈을 벌러 와서 돈 때문에 생명을 버리는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착한목자수녀회 '그린도어' 사무실에 마련된 경당. 경당 오른쪽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도 지향을 담은 쪽지들이 가득하다.
가정부터 병원까지
이 집을 나선 권 수녀의 다음 행선지 역시 병원이었다. 권 수녀는 얼마 전 고혈압으로 쓰러져 입원한 칸라야(가명)씨를 만나기 위해 10여㎞ 를 달렸다. 한국말이 서툰 칸라야씨에게 병원에서 전한 치료 과정과 퇴원 후 해야 할 일을 설명해주려고 일부러 그를 만나러 간 것이다.
“몸은 좀 어때요?” “?어, 잠시만요.” 권 수녀와 칸라야씨의 대화엔 ‘장벽’이 많다. 간단한 인사말 외에 설명들은 통역 앱 없이는 소통이 불가하다. 어려운 의학용어까지 말해줘야 하니 20~30분씩 걸린다. 하지만 권 수녀는 몸이 불편한 칸라야씨를 위해 시종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마주쳤다. 그가 확실히 이해했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설명을 이어갔다. 어떻게든 그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힘들죠. 5분이면 될 이야기를 길게 설명해야 하지만, 이들도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불안해할 그들 곁에서 저는 당연한 일을 할 뿐입니다.”
박순자(왼쪽 세번째) 수녀가 12월 21일 그린도어 활동을 위해 찾은 뽄띱(가명)씨의 집에서 수녀들의 방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비닐하우스에 온기를 전하러
이날 ‘그린도어’의 마지막 일정은 태국인 뽄띱(가명)씨 집 방문. 그의 집은 비닐하우스다. 한국인 농가 비닐하우스를 10만 원가량에 임대해고쳐 살고 있다. 한쪽 일부 공간이 숙식을 해결하는 집이고, 나머지 땅이 밭이다.
이 일정에는 권 수녀의 유일한 사도직 동료인 박순자(착한목자수녀회) 수녀도 동행했다. 시골 길을 달리길 10여 분. 수녀들이 밭 한가운데 세워진 비닐하우스 앞에 차를 멈췄다. 차에는 선물이 한아름이다. 이불과 간식거리를 양손에 든 권 수녀는 특유의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요? 혈압은 어때요? 약은 잘 먹고 있어요?”
비닐하우스 집이 아늑할 리 없다. 흙바닥 위에 장판을 올린 탓에 한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작은 전기장판과 난로가 유일한 난방 수단이었다. 한 달 전엔 갑자기 내린 눈으로 비닐하우스 일부가 무너지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뽄띱씨의 집이 떠들썩했다. 수녀들의 방문 소식에 인근 동료들이 찾아온 것. 박 수녀는 이주민들에게 주기 위해 주머니 가득 가져온 귤과 간식을 일일이 나눠줬다.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권 수녀는 뽄띱씨 혈압을 측정해주며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뽄팁씨는 “수녀님들의 방문은 제게 큰 희망이 된다”며 “새해에도 수녀님들께서 주시는 사랑에 힘입어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고 답했다.
두 수녀는 집을 나와서도 주변 곳곳에 있는 이주민들의 집을 일러줬다. 모두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작은 문의 집들이었다. 수녀들은 이들에게 초록빛 희망을 선사하며 내일도 이주노동자들 마음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이주민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죠. 이들이 그래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권영주 수녀가 12월 21일 병원에 입원한 외국인 노동자의 상태를 살피며 병원에서 전한 주의사항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방인 환대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
이주노동자 방문 사도직 ‘그린도어’ 착한목자수녀회 권영주 수녀
“가족이 생이별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이 오길 기도합니다.”
착한목자수녀회 이주노동자 방문 사도직 ‘그린도어’에 임하고 있는 권영주 수녀는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기억으로 가족들이 ‘생이별’하는 때를 꼽았다. 농촌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열악한 한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에서 낳은 자녀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자녀의 연령대는 신생아부터 10대 청소년까지 다양하다.
“우리 차를 타고 생이별을 한 가족이 지난해에만 다섯 가구에 달했습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아프고 눈물만 납니다.”
방문 사도직 ‘그린도어’ 는 수녀들에게 쉽지 않은 활동이다. 어떤 때엔 어렵사리 이주노동자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40㎞ 거리를 운전해 간 일도 있었다. 관심과 실질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하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질 때도 많다. 두 수녀가 돕는 가정은 400여 가구에 이른다.
“언제 어디에서 연락이 올지 모릅니다. 한밤중에 급히 연락받고 나선 일도 있었죠. 갈 때마다 제발 그들이 크게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운전합니다.”
이전엔 서울 수녀원에서 경기도 일대를 오가며 활동해야만 했다. 현재는 경기도 이천에 ‘그린도어’ 사무실 겸 수녀원을 마련해 활동이 수월해졌다. 이주민과 관계 형성도 한결 쉬워졌고, 바자 등 활동도 가능해졌다.
“기존엔 신뢰 관계 쌓기가 힘들었죠. 할 수 있는 활동도 제한이 많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작지만 긴급 피난처도 설치했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권 수녀는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오늘날 이주민들은 이 땅에서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들도 열악한 환경 탓에 농촌을 기피한다고 합니다. 그들마저 농촌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우리 삶에 다양성과 환대의 문화가 꼭 필요합니다.”
후원계좌: 농협 351-1021-4509-13
예금주: (재)착한목자수녀회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