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자유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포착되는,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이라고 정의했다. 곧 향주덕의 삶, 하느님을 향한 삶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인 것이다. 그러면서 라너 신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찾아 얻게 하는 것은 실상 이념이나 고상한 말이나 자아 반영이 아니라, 이기심에서 나를 풀어주는 행위, 나를 잊게 해주는 남을 위한 염려, 나를 가라앉히고 슬기롭게 해주는 인내 등”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을 진지하게 깨달을 때가 노년기일 것이다. 물론 어리고 젊은 나이에 삶의 의미를 직관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노인이 되면 하느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논할 만한 삶의 경륜이 쌓인다.
그래서 구약성경 집회서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그들 또한 조상들에게 배웠고 이제는 네가 그들에게서 지각과 적절한 때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리라”(8,9)며 “풍부한 경험은 노인들의 화관이고 그들의 자랑거리는 주님의 경외함”(25,6)이라고 예찬한다. 이런 이유로 구약성경은 노인을 존경하라고 권고한다.(레위 19,32)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노인들을 적지 않게 촬영했다. 그는 단순히 나이 든 늙은이를 찍은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삶의 품격이 온몸에 배어있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이 얼굴에 드러나는 이들을 담았다. 비단옷이 아닌 하얀 무명옷을 입고, 가죽신이 아닌 짚신을 신었어도 베버 총아빠스가 사진에 담은 노인들은 한결같이 기품이 있다.
먼 곳 응시하는 깊은 눈은 삶을 달관한 듯
기품은 하루아침에 풍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일상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다. 신앙을 토대로 담백하고 성실하게 받아들여진 일상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숨은 은총 속에 사는 삶이라 하겠다. 신앙이 일상이 될 때 인생은 인내의 태도, 성실과 공평·책임감의 태도, 사랑이 깃든 몰아의 태도를 보여주게 된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노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한국사진 아카이브에 있는 ‘노인’<사진 1>은 삶을 달관한 표정이다. 먼 곳을 응시하는 깊은 눈은 담담하게 살아온 넓은 인생의 지평을 엿보게 한다. 선한 눈빛은 자신의 내심을 드러낸다. 구릿빛 피부는 노인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음을 웅변한다. 굳게 다문 듯하나 옅은 미소가 피어나는 것은 만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보여준다. 흑발과 백발이 뒤섞인 긴 수염은 위엄과 평정을 드러낸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환갑이면 노인 대접을 받았다. “환갑의 기쁨은 담뱃대로 그치지 않는다. 이 잔칫날에는 아들딸과 손자 손녀, 친척과 친지들이 모두 부모 곁에 모인다. 다들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넨다. 물론 이 땅에 다른 주인(일본)이 다른 법도를 들여온 후에는 민족 정서를 마음껏 표출했던 옛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 옛날에 왕과 왕비의 환갑잔치는 가장 성대한 축제였다. 이날은 축제의 기쁨이 거센 파도처럼 방방곡곡에 넘쳐흘렀다. 아마 이런 시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죄수가 부모의 환갑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석방되었다가 잔치가 끝난 후 정직하게 다시 돌아와 수감되는 불문율 또한 새로운 체제하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75쪽)
베버 총아빠스 일행은 1911년 2월 25일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어느 집 앞에서 장기판에 빠져있는 노인들을 사진에 담았다.<사진 2> 노인 넷이 양지바른 담장 앞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판은 막판을 달리고 있다. 장기판 왼편 노인이 장기알을 움직이려 하자 그 옆의 노인이 훈수를 둔다. 이 훈수가 맘에 들지 않는지 장기를 두는 상대 노인이 주먹 쥐듯 왼손을 움켜잡는다. 그 옆의 노인은 이 장면이 재미있는지 담뱃대를 문 채 옅은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이 장면을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둘러서 지켜본다.
베버 총아빠스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인들의 신발에 주목했다. 장기를 두는 노인이 나막신을 벗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나막신은 일본 나막신과 판이하다. 일본 나막신은 두 개의 굽을 나무 밑장에 덧대지만, 한국 나막신은 통나무로 깎아 만든다. (?) 이 둔한 신을 처음 신으면 몸이 앞뒤로 기우뚱거려 몹시 위태롭다. 그러나 한국인의 몸놀림은 나막신을 신고도 안정적일 뿐더러 우아하기까지 하다. (?) 짚신은 가볍고 편해서 도보 여행에 좋고, 자갈투성이의 험한 산길에도 제격이다. 산행이 가볍고 잘 미끄러지지도 않는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99~100쪽)
신틀도 없이 짚신 삼는 노인의 솜씨에 감탄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5월 황해도 신천군 청계리를 방문했을 때 두건을 쓴 노인이 마당에 앉아 짚신을 삼고 있는 걸 촬영했다.<사진 3> 그는 신틀도 없이 짚신을 삼는 노인의 숙련된 솜씨에 감탄했다. 짚신을 삼는 것은 지나친 고역은 아니지만 삶을 유지하게 하는 일상의 노동이다. 양쪽 엄지발가락에 새끼를 꼬아 지탱하며 짚신 꼴을 만들어가는 노인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이마의 굵고 짙은 주름과 팔뚝에 불끈 솟은 핏줄이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노인의 수고를 보여준다. 베버 총아빠스가 본 짚신 삼는 노인은 가족을 향한 희생과 공동선을 향한 순종과 극기의 모습이었다.
베버 총아빠스는 청계리에서 또 한 분의 노인을 사진에 담았다.<사진 4>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다. 머리에 쓴 갓은 높이가 낮고 양태가 매우 좁고, 귀 밑에 끈을 달아 턱 밑에서 묶는 형태다. 고종의 갑신의제 개혁 이후 전형적인 남성들의 성장(盛裝)이다. 흑립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행전을 치고 버선발에 초혜를 신는 정갈한 차림이 당시 남성의 일상복이었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일상 사진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모습을 그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담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