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북한군 사진 한 장이 국제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북한군의 처참한 모습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국제적 이슈로 부상했다.
북한은 지난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1만 명 넘는 병력을 파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와 미국·우크라이나 당국은 북한군 상당수가 실제 전투에 투입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수부대인지, 노동자인지, 죄수인지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북한 인력이 전쟁에 투입된 건 사실로 밝혀졌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12월 24일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전사자 한 명의 편지를 공개했다. “그리운 조선,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여기 로씨야(러시아) 땅에서”라고 시작되는 편지에는 “(러시아 땅에서) 생일을 맞는 저의 가장 친근한 전우, 동지인 송지명 동무 건강하길 진정으로 바라며 생일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고 적혀있다. 또 “우크라이나 요원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군을 계속 제거하고 있다”고 알렸다. 한글로 적힌 편지다.
이들은 어쩌다 이역만리 추운 전쟁터에서 유명을 달리하게 됐을까. 사지로 내몰리는 북한군들의 참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북한군 출신이 말하는 북한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은 노동당의 장기 말에 불과합니다.”
북한 공군으로 8년간 복무하다 2019년 탈북한 류성현(29)씨는 “북한군은 체제 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세뇌당한다”며 “이번에도 해외에 나가 싸우면 그에 합당한 대우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인간 생명존중 정신이 전혀 없다”고 했다.
“무조건 김정은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라고 교육합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그 예로 적에게 포로가 되지 말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말은 포로가 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얘기입니다. 전쟁 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 기준을 정립한 제네바 협약과 같은 국제 규정은 이들에게 전혀 소용없습니다. 들어본 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류씨는 과거 북한군으로 지낸 시절을 떠올리며 “북한에서는 먹는 것만 잘 줘도 최고의 부대라고 여긴다”고 했다. “제가 속했던 부대는 상황이 나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쌀밥이 옥수수밥으로 바뀌고 결국엔 옥수수만 보일 정도로 식량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더 열악한 부대에선 입대 한 달 만에 10㎏ 빠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류씨는 “한반도의 산악지대에서 훈련받은 북한군이 평지와 참호로 구성된 쿠르스크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2011년 탈북한 북한연구소 국제활동팀 김일혁 연구원은 “북한군은 훈련을 받는다기보다 대부분 일하는 현장에 투입돼 주로 농사 짓거나 집을 짓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전했다. 또 “탄약 자체가 부족해 총 한 번 못 쏴본 군인도 많을 것”이라며 “북한군이 300만 명이라는데,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군은 최첨단 드론 공격에는 물론,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실수로 러시아 군에 총을 겨누다 8명이 숨졌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최근엔 퇴각하던 북한군이 오발 사고를 일으켜 러시아군 3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 미국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북한군 사상자가 38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목숨값, 피의 대가
우크라이나군이 입수한 북한군 분대의 일부 명단을 보면, 9명 부대원들의 평균 연령은 21살로, 군 경력은 10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어린 군인은 2006년생, 가장 나이가 많은 군인도 고작 2000년생이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북한학 박사는 “이번 북한의 파병은 평화유지군으로 간 것이 아니라, 교전에 직접 참가해 ‘피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 입장에선 중요한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이 파병을 통해 외교적·정치적 지원을 계속한다면, 북러 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긴밀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서 북한이 자국민 목숨을 담보로 외화벌이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백장현(대건 안드레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위원장은 “북한은 10년 후에 물자 구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조치에 들어갔다”며 “이번 파병 이유로는 재원 조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아 중국과도 협상력이 생기는 등 북한 입장에선 상당히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하노이 노딜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북한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며 “이번 파병은 일종의 목숨값”이라고 밝혔다.
그러는 와중에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 “2025년은 러시아 군대와 인민이 신나치즘을 타승(쳐서 이김)하고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는 21세기 전승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을 기원했다”면서 “러시아 인민의 번영과 복리·행복을 축원했다”고 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 담당 부국장을 역임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메시지는 기존의 관계를 확인하고 북한이 러시아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서약으로 보인다”며 “러시아 역시 경제뿐 아니라 군사 기술 지원으로도 보답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기도와 관심 필요한 시기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는 더 짙은 안갯속에 파묻히게 됐다. 전문가들 역시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북한학 박사인 김연수(예수회 성 알로이시의 집 원장) 신부는 “인권적 측면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이 매우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성경 교수도 “고도의 외교적인 시도가 필요한 시점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상황에 있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든 우선 전쟁이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가브리엘) 교수 역시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며 “이른 시일 안에 전쟁이 중단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북향민들은 관심과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김일혁 연구원은 “암울한 상황이라도 무관심이 더 안타깝다”며 “정치적 견해를 떠나 당장 희생당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의 시작은 관심”이라며 “함께 기도하는 자체가 굉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류성현씨도 “현재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함께 마음 아파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