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2일 무안국제공항 내에 설치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가뜩이나 얼어붙었던 우리 사회가 슬픔으로 가득 찼다. 무안국제공항은 사고 이후 통곡의 현장이 됐다. 승진을 기념해 일가족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연부터 오랜 암 투병을 마치고 건강을 되찾은 기념으로 떠났던 여행이 마지막이 된 이들까지.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이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을 찾아갔다.
2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철조망 너머로 검게 그을린 꼬리 날개가 보인다. 인근에서는 구조대원과 장병들이 비행기에서 튕겨져 나온 잔해를 수습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만 가득한 참사 현장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닷새째인 2일. 181명을 태웠던 제주항공 여객기의 몸체는 온데간데 없고, 시커멓게 타버린 꼬리만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전하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사고 현장을 가로막고 있는 차가운 철조망 너머에는 희생자들의 작은 소지품들과 함께 뜯긴 좌석들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형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공항에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했다. 검게 탄 날개는 슬픔을 머금은 듯 말이 없다.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맞닥뜨린 사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고, 깊은 슬픔이 되어 모두를 눈물짓게 했다. 공항 입구에는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화환이 늘어섰고, 그 옆에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무안국제공항은 사고 이후 거대한 슬픔의 현장이 됐다. 공항 1층은 입구부터 향내가 물씬 풍겼다. 평소 같았으면 캐리어를 든 여행객들로 붐볐어야 할 공항은 유가족들의 통곡과 바삐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로 채워졌다. 한쪽에는 유가족들의 임시 텐트, 다른 쪽에는 이들을 위해 생필품과 식료품을 바삐 전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부스가 차지했다.
“큰외삼촌! 그곳에서는 항상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선생님, 좋은 곳으로 가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입국장과 출국장을 연결하는 계단에는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지인, 시민들이 손으로 적은 추모 메시지가 셀 수 없이 걸렸다.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며 메시지를 붙이는 이도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문’을 붙여놓은 종이도 보였다. 그 뒤로 곳곳에 걸려 있는 각종 여행 홍보문구가 나부꼈다.
“사진 촬영·SNS 이용은 자제해 주세요!” 공항 내 합동분향소의 한 자원봉사자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진심 어린 추모를 위해 사진 촬영과 SNS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강조했다. 무분별한 촬영과 온라인 공유로 유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다.
2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헌화 차례를 기다리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추모에 함께한 신자들
평일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공항에는 수많은 시민이 추모를 위해 찾아왔다. 공항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사흘 동안 1만 명에 육박하는 추모객이 공항을 찾았다. 추모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 중에 헌화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를 바치며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일부 추모객은 분향소 안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광주대교구 각 본당 역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아픔과 함께하며 추모 미사와 연도를 바쳤다.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광주·전남 지역민이었다. 무안국제공항을 관할 지역으로 하는 광주대교구는 사고 직후 빠르게 교구민 피해 상황을 파악했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신자는 광주대교구에서만 12명(2일 기준)에 이르렀다. 이날 추모객 가운데에는 본당 소속 유가족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은 수도자와 교우들도 있었다. 백은옥(예수성심시녀회) 수녀도 참사로 가족을 잃은 본당 유가족과 공항을 찾았다. 백 수녀와 신자들은 유가족에게 “성모님께 전구 기도를 올리자”며 신앙 속에 위로를 얻길 기도했다.
백 수녀는 “뒤늦게 소식을 접한 자매님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있을 수 없어 함께 찾아왔다”며 “광주에 사는 이들은 이미 많은 아픔을 지니고 살고 있는데 무안에서 또 이런 참사가 발생해 신자 모두가 가슴 아파하고 있고, 모두 유가족과 희생된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당 신자들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를 잃은 또 다른 ‘유가족’이다. 희생자가 난 본당은 미사 때마다 희생자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길 기도했다. 이번 참사로 3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함께해온 ‘신앙 친구’를 잃었다는 이정희(아가다)씨는 “함께 미사에 참여하며 신앙생활을 해온 긴 시간이 무색하게 이렇게 한순간에 친구를 보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직도 미사에 참여하러 갈 때마다 함께 앉았던 자리, 독서 봉사를 하던 독서대까지 곳곳에서 하늘로 보낸 친구의 흔적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진다”고 눈물을 보였다. 이씨는 “누구보다 사랑이 많았던 친구였기에 분명 천국에 가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본당 교우들 모두 친구를 비롯한 희생자들을 위해 연도를 바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수도자가 2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인근 계단에 붙은 추모 메시지를 살펴보고 있다.
재난 속 빛난 도움의 손길들
공항의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환기해준 것은 각지에서 쏟아진 따뜻한 도움의 손길들이었다. 각 종교계는 물론 기업과 시민단체들까지 부스를 차려 갑작스러운 사고로 힘겨워하는 유가족과 관계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마음을 모았다.
1일 기준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봉사자 수만 63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공항에 부스를 설치해 물품을 지원하거나 음식을 제공하고 유가족의 텐트 설치·관리, 환경 정화활동에 나서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한 이들은 공항 내 카페에 ‘선결제’를 하며 유가족과 현장 관계자들이 무료로 음료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왔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봉사에 임하고 있는 서기수(광주광역시 서구)씨는 “광주에서만 80여 명이 희생됐다고 들었는데, 그 중에 분명 내 이웃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이분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광주대교구는 현장에서 힘을 보태며 깊은 슬픔에 함께했다.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회장 이봉문 신부)는 이날 참사 현장에 커피차를 보내 찬바람 속에 수색·수습 작업을 벌이고 있는 현장 관계자들에게 따뜻한 차와 커피를 전했다. 3일부터는 공항 인근에 있는 무안·망운본당 등과 협력해 공항 내에 부스를 설치해 유가족에게 생필품을 나눠주며 위로를 전했다.
이 신부는 “검게 타버린 비행기와 인근에서 참사 피해 수습을 위해 24시간 교대로 일하는 구조대원들과 군 장병, 현장 관계자, 유가족들을 보며 슬픔과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했다”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해 많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몫이 있다면 충실히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 우리 정말 친한 딸·아빠 사이였는데?. 나한테나 엄마한테나 말 못할 회사 고민 정말 많았지? 매일매일 5시에 일어나고 힘든 거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 주변에 모두 좋은 친구들뿐이더라.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서 내가 너무 존경스럽고 많은 생각이 드네.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비행기에서 아프지 않았기를, 부디 마지막이 평온했기를 기도해. 내가 너무 사랑해.”(한 유가족의 딸이 공항에 남긴 애도 메시지 중)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