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석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11. 오스트리아 성모 순례지 ‘마리아첼’
마리아첼 바실리카.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에 봉헌된 성당으로 14세기에 세워진 90m 높이의 호화로운 고딕 양식의 중앙탑과 1690년 이후 확장된 바로크 양식의 두 탑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1907년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필자 제공
독일어권의 유일한 국가 성지
처음 오스트리아 수도원에 답사 다닐 때 고속도로 표지판에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딴 지명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거나 성유물을 모신 곳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들어간 지명은 성모 순례지였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본가였던 오스트리아가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 신앙을 수호자로서 성인을 공경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했기에 그렇게 이름 붙은 겁니다. 멜츠 수도원에서 그라츠로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마리아첼도 그런 곳 중 하나였습니다.
마리아첼은 슈타이어마르크주(州) 인구 3600여 명의 조그만 산골 동네로 하이킹과 스키 휴양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에게는 특별한 곳입니다. 독일어권에서 유일한 국가 성지로 지정된 성모 순례지로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독일·체코·헝가리·슬로베니아 등에서도 많은 순례자가 찾아오는 곳입니다. 198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목 방문하셔서 순례하셨지요.
마리아첼 대성당 안의 은총 소성당과 기적의 성모자상. 은총 소성당의 위치는 처음부터 있던 자리 그대로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성당을 증축할 때 뒤편으로 내진(內陣)을 새로 만들면서 성당 중앙에 위치하게 됐다. 루트비히 1세 왕이 기증한 성모자상은 13세기에 제작됐다. 필자 제공
바이에른 알퇴팅과 더불어 독일어권 성모 신심의 고향
마리아첼은 근처 할탈의 소금 덕분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던 지역입니다. 할슈타트처럼 알프스 지명 중 ‘sal, sulz, hall’이 들어가 있는 곳은 대부분 소금 광산이나 매장지입니다. 대략 알프스 능선 북쪽인 인스브루크 근처에서 마리아첼까지 약 350㎞의 좁은 띠에 소금 매장지가 있는데, 마리아첼이 동쪽 끝입니다. 로마 시대 소금길이 이곳을 지났고, 게르만족 이동 이후 헝가리인과 슬라브인까지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은 조금 낯선 독일어를 쓰는데, 사실 바이에른 사투리에 가깝습니다. 743년부터 바이에른 땅이 되어 빈이 있는 오스트리아 공국과 함께 이민족의 침입을 막던 신성 로마 제국의 변경이었죠. 이후 976년 작센 출신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2세는 바이에른 공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려고 알프스 산맥 남쪽 지역을 분리해 케른텐 공국을 세웠지만, 문화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마리아첼은 바이에른의 알퇴팅처럼 성모 신심의 중심지라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마리아첼 대성당의 서쪽 정문. 하얀 벽면에 테라코타 색상의 필라스터와 팀파늄이 인상적이다. 팀파늄 아래 부조는 1369년 파를레 공방의 작품으로 헝가리 왕 루트비히 1세(좌측 동상)의 전설이 묘사되어 있다. 정문 우측 동상은 보헤미아 공작이자 모라바 변경백 블라디슬라프 하인리히이다. 필자 제공
기적의 성모자상으로 시작된 마리아첼
1103년 케른텐의 하인리히 3세 공작은 마리아첼 주변 지역과 소금 채굴권을 상트 람브레히트 수도원에 기부합니다. 그 뒤 그곳 백성에게 복음을 전할 수도자를 파견해달라고 청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1157년 오트커 아빠스가 마그누스 신부를 이곳으로 파견했는데, 신부는 평소 자신이 직접 조각한 성모자상 하나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초겨울 무어강을 따라 200㎞를 쭉 내려가다가 튀르니츠 알프스를 넘어야 하는 여정이었으니 성모님의 보호가 절실했을 겁니다.
12월 21일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큰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짙게 밀려오자 마그누스는 겁이 나서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즉시 바위가 갈라지면서 길이 열렸다고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마그누스는 성모자상을 그루터기 위에 놓고 소성당 겸 숙소로 ‘암자(Cella)’를 지었습니다. 암자는 곧 그 지역의 신앙 중심지가 됐고, ‘암자의 성모’란 뜻의 마리아첼이란 이름도 여기서 비롯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의 마리아첼 대성당이 서 있습니다.
기적의 성모자상 모신 은총 소성당
마을 언덕에 자리한 마리아첼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중앙탑과 바로크 양식 두 탑이 조화를 이룬 게 특징입니다. 서쪽 정면의 팀파늄은 마리아첼에 얽힌 또 다른 두 전설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전설은 통풍으로 크게 고생하던 12세기 보헤미아의 블라디슬라프 하인리히 공작 부부 이야기입니다. 공작은 꿈속에서 선조의 지시대로 성모님께 의지한 뒤 병이 치유되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봉헌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은 지금의 고딕 성당을 짓는 데 이바지한 헝가리 왕 루트비히 1세 이야기입니다. 1377년 루트비히 1세는 수적으로 네 배가 넘는 튀르크 군대와 전투를 앞두고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꿈속에서 성모님이 나타나 도와주시겠다고 했는데, 깨어나 보니 기도방에 있던 성모상이 자기 가슴에 놓여있는 겁니다. 루트비히 1세는 하느님 뜻으로 여겨 출정했고, 압도적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후 왕과 군대는 감사의 표시로 마리아첼을 순례하고 고딕 성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 은총 소성당에 있는 성모자상은 그때 왕이 기증한 것이지요.
마리아첼 전경, 마리아첼 협궤철도와 기적의 바위. 마리아첼은 알프스산맥의 동쪽 끝자락 경사면에 자리한 산골 마을로 교통편이 편리하지 않지만,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마리아첼에서 1.5km 떨어진 라징 고갯길에 둘로 갈라진 기적의 바위가 있다. 필자 제공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어머니’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마리아첼 성모님을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수도 빈에서 시작되는 ‘거룩한 길(Via Sacra)’ 순례길을 비롯해 수많은 오스트리아 순례길의 종착지도 마리아첼입니다. 이는 성모 신심이 궁극적으로 하느님께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일 겁니다.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마리아첼 대성당 850주년 기념 미사 강론에서 현대 사회에서 진리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면서, 진리이신 하느님을 찾아 나서라고 하셨습니다. 일상의 순례, 유럽 간 김에 순례할 마음이 그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 미래가 있습니다.”
<순례 팁>
※ 빈 중앙역(쥐트티롤 플라츠)에서 순례길 ‘비아 사크라’를 따라 마리아첼까지 가는 버스(169번)가 매일 7시·10시에 출발한다.(www.vor.at)
※ 마리아첼 뒷산 뷔르거알페(1207m) 하이킹(케이블카), 장크트푈텐과 마리아첼 사이에 운행되는 협궤 열차(2시간 30분 소요)는 순례 간 김에 누리는 즐거움.
※ 대성당 미사 : 평일 8:00·10:00·11:15·18:30(5/1~10/31), 08:00·11:15(11/1~4/30), 주일과 대축일 08:00·10:00·11:15·18:30(5/1~10/31), 08:00·11:15·18:30(11/1~4/30) / 빛의 행렬 : 매주 토요일과 8/14 20:30(5/1~9/6), 매주 토요일 20:00(9/7~10/26) / 은총 소성당 묵주기도 : 매일 18:00. 미사 후 성물 축복이 있다. (www.basilika-mariazell.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