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부르던 동요 중에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이 노래의 제목은 ‘돌과 물’이며 아동 문학가이자 가톨릭 신자였던 고 윤석중(요한) 선생이 노랫말을 만들었다. 윤석중 선생의 노랫말은 지금 들어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할 만큼 명작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젓가락 두 짝이 똑같아요~’의 ‘똑같아요’,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의 ‘우산’ 등의 곡들이 있다. ‘돌과 물’의 가사처럼 커다란 바윗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부서져 결국 모래알로 변화한다. 이것은 흐르는 물에 의한 침식, 온도 차에 의한 부피 변화, 바람과 생물에 의한 풍화 등 물리적·화학적 작용으로 암석이 점차 흙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지질학에서는 이를 풍화작용(風化作用, weathering)이라 한다. 대학 시절 암석 표면이 흙으로 바뀌는 데 대략 200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고 배웠을 때 ‘내가 밟는 흙이 2000년 전에는 큰 바위였다고?’라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덴마크 화가인 카를 하인리히 블로흐는 예수님의 생애를 23개 작품으로 남겼다. 그중 열세 번째 작품이 마태오 복음 5-7장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산속 바위 위에 앉아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산상설교’(1887)다. 이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앉아 계신 넓고 평평한 큰 돌이 있다. 산상설교 후 2000년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아마도 이 돌은 지금 어딘가에 흙이 되어있을 것이다. 넓고 평평한 큰 돌은 반석(盤石)이라 하는데 국어사전에 의하면 ‘사물·사상·기틀 따위가 아주 견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예수님 제자가 베드로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서 어부로 살던 시몬을 불러 제자로 삼으시고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하시며 베드로(반석이란 뜻, 그리스어 페트로스)라는 이름을 주셨다. 베드로는 폭군이었던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해 64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4년 그의 무덤 위에 성전을 지었다. 1506년 율리오 2세 교황 때 이 성전을 확장하기 시작해 1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성년(聖年) 문을 개방하며 2025년 희년(jubilee)의 막을 열었다. 희년을 맞아 온 세상에, 특히 우리나라에 주님의 평화가 내리길 기도하며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 마음과 정신, 신앙이 허물어지는 풍화 기간은 얼마인가?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 알갱이 하나도 우리에게는 교훈이 된다. 바윗돌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2000년의 세월이 걸렸노라고. 그러나 세속적 유혹과 나약함이라는 풍화작용에 당장에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거늘. 우리의 굳은 신념과 의지는 흙처럼 부서지는 데 과연 2000년의 세월이 걸릴까? 어지러운 이 시대를 잘 이겨내기 위해 우리 각자가 신념과 올곧음, 신앙에 있어 오랜 풍화도 견디는 반석 같아야 할 것이다.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