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교회의 첫 번째 세계 공의회인 니케아공의회가 열린 지 1700주년이 되는 해다. 니케아공의회는 오늘날에도 모든 그리스도교가 인정하는 공의회로, 교회 일치의 중요한 사건이다. 일치 주간(1월 18~25일)을 맞아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 신학위원회 공동위원장이자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송용민(요한 사도) 신부에게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과 니케아공의회, 우리나라의 일치운동에 관해 들어본다.
‘일치(一致)’는 인류의 소망이자 과제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분열과 갈등, 화해와 협력의 반복 속에 남겨진 과제이자 간직한 희망이다. “하느님과 온 인류가 맺는 깊은 일치를 드러내는 표징이자 도구”(「교회헌장」 1항)인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하여 복음의 대의를 손상시키는 그리스도인 분열의 책임이 교회 밖이 아닌 교회 안에 있음을 자각했다.
1054년 동방교회(정교회)와의 단절과 1517년 종교개혁으로 인한 서방교회에서 일어난 분열의 상처를 극복하는 일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보수적 배타성이 아닌 하나의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와 일치한 모든 그리스도인과의 화해와 연대였다. 공의회는 「일치교령」을 통해 갈라진 교회들, 곧 정교회와 개신교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참된 그리스도교적 보화들을 공동 유산에서 나온 것으로 기꺼이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할 필요”(4항)가 있음을 강조했다.
오늘날 에큐메니즘(ecumenism)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ecumenical movement)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은 세계 개신교계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창립 이후 로마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부와의 협력을 통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일치 재건을 향한 교회 일치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정교회와의 상호 파문 철회(1965년)와 개신교 교단들과의 대화를 지속해 1999년 루터교세계연맹과 종교개혁의 불씨가 된 의화론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직제위원회의 회원으로 신학적 대화를 이끌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단들과 대화와 상호존중의 가치를 지키며 종교개혁 500주년(2017년)을 함께 기억하고, 개신교단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적 빈곤문제, 기후위기, 인권 등의 인류 공동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2025년, 희년이자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 기념의 해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사도 2,44)한 초대교회의 이타적 연대의 삶은 교회의 원형이자 인류의 이상이었다.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 그리스도인들은 회심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신앙의 자유의 선포(313년 밀라노 칙령)에 이어 제국교회가 추구한 로마의 일치의 한 축을 형성하며 그리스도 신앙의 단일성을 추구하는 역사의 도정을 걸었다. 교회의 단일성에 가장 큰 장애는 그리스도인의 원체험, 곧 예수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구원자, 곧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성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신앙의 확신에 의심하는 이들로부터 시작됐다.
3세기 이후 교회의 혼란은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둘러싼 세 가지 맥락에서 시작됐다. 곧 신학적 용어의 해석 차이, 교도권의 교회적 위상, 신자들의 신앙 감각이다. 특히 박해를 견뎌내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신성을 체험한 신자들의 깊은 믿음은 그리스 사상에 물든 신학 논쟁을 통해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의구심과 이원론적 세계관, 그리고 지고하고 단일한 신성을 지닌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말씀(로고스)인 그리스도는 피조된 제2등급의 신이라는 ‘영지주의’(Gnosticism)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였던 아리우스는 성자는 하느님이 아닌 창조된 자로 아버지인 신과 아들인 그리스도의 동질성에 반대하고 신자들의 신앙 감각으로 지켜온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이단적 교리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이어진 수많은 신학자들과 주교들의 논쟁과 단죄로 이어졌고 이는 신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예수의 신성체험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325년 개최된 니케아공의회는 이전에 발생한 예수의 신인성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어쩌면 로마 제국의 단일성을 지키려고 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회의 권위를 넘어 개최한 첫 번째 세계 공의회였다.
아리우스를 반대하며 정통 신앙을 지킨 아타나시우스(290~373)는 많은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가 성부 하느님과 같은 본질(homoousius)임을 확신했고, 니케아공의회의 교부들은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가 되는 예수의 신인성 논쟁을 종식시켰다. 비록 공의회가 제국의 일치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신앙의 내적 확신은 교회의 제도적 권위인 주교들의 교도권의 행사와 신앙 고백의 선언으로 이루어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다.
니케아공의회는 비록 수많은 그리스도교 종파와 교단의 분열의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초를 지켜낸 뜻깊은 공의회였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현장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의 일치운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추진해 온 일치운동을 지역교회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이다. 2000년대부터 본격화된 일치운동은 한국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 교단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동시에 2014년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의 창립은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가 추진해 온 정교회와 개신교와의 일치운동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열매였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에큐메니칼 일치순례(2024년 11월 25일-12월 3일)를 통해 교단의 대표들은 세계교회의 중심지(로마 바티칸, 스위스 제네바, 이스탄불)를 방문하고, 일치는 분열의 책임을 함께 통감하는 마음의 회개와 상호 존중의 대화와 친교임을 확인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일치운동의 여정은 멀고도 험하다. 천주교 교계 안에서 개신교에 대한 폄하와 오해는 여전하고, 일치의 당위성보다는 분열의 현실성에 발길을 돌린다. 한국 개신교계의 극우화와 뜻있는 목회자들을 외면하는 교회의 시장화, 사회 구원 없는 영혼구제에 매달리는 샤머니즘과 주술의 재부흥에 교회는 속수무책인 듯싶다.
작금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극단의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양극화는 교회 안의 민주주의의 가치와 복음의 도덕적이고 정신적 가치를 왜곡하고 악마화하는 극단적 우매한 이들의 망국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자기 희생 속에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소서”(요한 17.21)의 말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일치 주간이 시작됐다. 분열을 넘어 일치를 향한 길은 험하지만,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의 신앙 감각에 깊이 새겨져 희년의 기쁨과 희망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희망을 간직한 자만이 고통을 견뎌낼 용기가 있으며, 희망을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씨의 울림 있는 말이 절실한 이유이다.
글 _ 송용민 요한 사도 신부(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 신학위원회 공동위원장, 인천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