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매년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그리스도인 일치를 간구하는 일치 주간(이하 일치 주간)으로 보낸다. 1054년 동·서방교회로 분열된 이래 마르틴 루터를 시작으로 한 개신교, 성공회 등 그리스도교는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교리에 합의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도 지속했다. 교회가 ‘갈라진 형제’들과 어떤 교리를 논의했고, 이 노력이 주는 의미를 알아본다.
종교개혁의 씨앗, ‘의화’에 대해 루터교와 합의하다
가톨릭교회와 루터교는 30여 년간의 대화와 연구 끝에 1999년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교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의화(義化) 교리란 인간이 어떻게 의롭게 돼 구원에 이르는가에 대한 교리로,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으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오직 신앙만으로 구원된다”며 가톨릭교회를 비판했다.
선언문은 1517년 종교개혁이 발생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이 논쟁을 루터의 신학을 따르는 루터교와 함께 다뤄 교리적 오해와 편견을 깨고 핵심 교리 내용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선언문은 “가톨릭신자들이 의화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협력한다’고 말하는 것은, 천부적인 인간 능력에서 생기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결과 그 자체라고 본다”고 밝힌다. 이어 “루터교 신자들이 인간은 오로지 의화를 수동적으로 받기만 할 수 있다고 강조할 때에, 이것이 하느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신앙에 개인적으로 충만하게 참여(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가톨릭교회와 루터교가 ‘하느님 은총을 통한 신앙’과 인간이 이 은총에 ‘협력하는 의미의 실천’ 모두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선언문은 ▲죄의 용서와 정의의 수행으로서의 의화 ▲신앙과 은총을 통한 의화 ▲의화된 사람들의 선행 등에 대한 교리도 가톨릭과 루터교 사이에 충분히 합의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2006년 7월엔 감리교가 이 선언문에 동의하고 서명하며 세 그리스도교 교파가 함께 성명을 발표하는 성과도 이뤘다.
1054년 동·서방교회 갈라지고 중세 종교개혁 등 분열 반복
20세기 들어 대화 본격 시도, 교리적 이견 놓고 합의 도출
‘하나의 종교’ 통합 아니라 각 교회 정체성 지키며 공동선 위해 노력
성모 마리아에 대해 성공회와 일치된 의견 보여
성공회-로마가톨릭국제위원회(ARCIC)는 2005년 5월 「마리아: 그리스도 안의 은총과 희망」이라는 제목의 합의 문서를 발표했다. 합의 문서엔 가톨릭교회의 ‘무염시태’와 ‘성모승천’ 교리에 대해 가톨릭과 성공회의 일치된 의견이 담겼다. 위원회는 앞선 공동성명에서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은 성공회와 가톨릭교회의 오랜 논쟁 주제였다”고 설명했다.
문헌은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 요한복음 속 성모 마리아 이야기를 분석한 뒤 초대 교회가 성모 마리아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 다뤘다.
가톨릭교회와 성공회가 분리된 후 1854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무염시태’(원죄 없이 잉태)가, 1950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성모승천’ 교리가 선포됐는데, 합의문서는 “1854년과 1950년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두 가지 가르침은 이 합의 문서에서 설명한 성경과 초기 교회 전승이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언급했다. 무염시태와 성모승천 교리에 대해 성공회도 받아들인 것이다.
동방교회와의 화해와 교리 논의들
1054년 상호 파문으로 갈라진 동방교회와의 관계도 20세기 들어 화해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동방교회와의 재결합 시도는 사실 1274년 리옹공의회를 시작으로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종교를 넘은 동방과 서방 간 복잡한 정치·역사적 이유로 인해 무산됐다.
9세기가 넘게 이어진 상호 파문은 1965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동방정교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에 의해 폐기됐다. 또한 ‘가톨릭-동방교회 국제신학위원회’를 발족해 대화를 이어오며 교리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
199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아시리아 동방교회 마르 단하 4세 총대주교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공동 선언」, 2007년 교황청 일치평의회(현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페르가모의 요안니스 수석 대주교의 만남에서 동방교회 측이 로마 주교(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로마 주교의 수위권 행사 방식과 무류성, 두 교회 간 남아 있는 역사적 문제들은 두 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의미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으로 교회는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갈등과 오해로 곪은 상처들을 제거해 왔다. 다만 교회는 이 일치운동이 교회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하나의 종교’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라, 공통된 부분을 발견하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주교회의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 위원회 총무 임민균(그레고리오) 신부는 그리스도교가 지속적으로 교리 합의를 위해 노력해 온 것에 대해 “모든 핵심 교리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조건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구원을 공통으로 중심에 둔 그리스도교들이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짓지 않고 일치할 수 있는 부분은 토론하고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신부는 이어 “신앙을 가지는 것이 사람들에게 당연시되는 사회는 이미 지난 지 오래”라며 “그럼에도 첨예하게 갈등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교파는 달라도 협력하고 양보하면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도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