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1700주년을 맞은 올해, 일치 주간(18~25일)을 맞아 갈라진 형제 교회 한국 정교회 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한국명 조성암) 대주교를 11일 만나 신앙과 일치의 참된 가치를 물었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1960년 그리스에서 태어나 1991년 정교회 사제품을 받았다. 신학 박사이자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어과 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2008년부터 한국 정교회 대교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새 회장으로도 선임됐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두 교회 대화한 지 60년
서로 만남 가진다는 것 자체로 의미
일치의 가장 큰 방해물은 ‘현실 안주’
한국기독교교회협 회장으로서
교회 분열은 죄이기에 일치 노력 지속
기후위기·전쟁·폭력 등에 맞서 협력해야
1000년간 분열된 교회로 지내다 60여 년 전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갈라진 형제 교회로서 일치에 대한 생각을 여쭙습니다.
“서방과 동방 교회의 대분열 시기를 1054년으로 보면,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는 1000년간 함께한 형제 교회입니다. 하지만 이후 1000년을 분열 속에 살았기에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모든 교리에서 일치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대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는 예루살렘 성지에서 극적으로 만났고, 이듬해 상호파문을 취소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정교회를 방문해 십자군 침략을 정식으로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직접 혹은 대표단을 보내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때마다 교황청에서, 성 안드레아 축일인 11월 30일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학적 대화, 사랑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대화의 물꼬가 트인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두 교회가 만나고 대화를 시작한 지 이제 60년이 지났습니다. 100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는 건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말입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속속들이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었죠. 따라서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또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의 관계가 굉장히 좋다는 것도 희망적입니다. 오는 5월에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두 분이 또 만난다고 하죠.
하지만 여러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해 보면, 평신도 차원에서 분열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치의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현실 안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문해봐야 합니다. 교회가 분열되고 있는데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가. 상처를 주고 있는가’하고요. 아파하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말입니다.”
신앙의 한 뿌리로서 올해 제1차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첫 번째 공의회로서 공의회 제도를 정립했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한 사람이 설파한다고 정립되는 게 아닙니다. 주교들이 모여 함께 정하고, 체계를 쌓아 하나의 틀로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3년 반 동안 교리와 행정 체계 등을 정립해 오늘날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가 열리기 12년 전인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험난했던 박해가 끝났습니다. 100만 명 넘는 순교자들이 피로 교회를 지킨 것입니다. 에우세비우스 「교회사」를 보면, 공의회에 참석하는 주교들의 눈 한쪽이 없고, 팔이 잘려 있는 등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첫 번째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 이단이었습니다. 당시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동일본질이 아니라 유사본질이라는 아리우스주의가 성행했습니다. 성자가 성부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이죠. 그리스어로 동일본질과 유사본질은 모음 하나 다를 뿐입니다. 그 조금의 차이가 교리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만약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를 단죄하지 않았다면 인간 구원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성자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느님이 아니라 창조물이었다면,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하신 하느님으로서 인간이 하느님과 하나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새 회장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실 계획인가요.
“교회 일치를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교회 분열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죄스러운 상황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날은 기후 위기 속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기후 변화의 재앙적인 결과를 줄여나가기 위해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일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만, 교회 지도자로서 교회 건물을 세울 때 친환경적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경제적 이익이 우선시될 수 없습니다. 신자들에게도 생태적 감수성을 심어줘 일상에서 지구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모든 종류의 전쟁을 반대해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신체적·언어적 폭력과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까지 말입니다. 지난 15년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이에 준하는 유혈사태로 인한 죽음이 482 증가했다고 합니다. 또 한국은 계엄령 사태로 여러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쳤고, 자유·평화·평등·인권이 모두 위기에 처했습니다.”
화해와 용서가 참 힘듭니다. 우리가 화해의 길로 더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고 있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평화와 화해는 내면적인 것입니다. 이외의 평화는 누군가 균형을 잃으면 혼동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말하는 평화는 일시적인 현상이죠. 그리스도 없이는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올바르게 평화를 간직한다면, 도미노처럼 주변에 평화가 확장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울러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신앙인이 아니지만 영적인 무언가를 갈구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를 멈추고 더 영적으로 변한다면, 젊은이들로 가득 찬 교회가 되리라 희망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가치를 더욱 깊이 되새기며 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리스도인 삶의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신화(神化), 하느님 은총에 의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삶에 큰 영향을 끼치죠.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자살률이 매우 높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쉽게 절망하고 그렇듯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올해 희년의 문을 연 가톨릭교회에 한 말씀 해주신다면?
“가톨릭교회 성직자·수도자·평신도 모든 분을 사랑하고 형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1000년간 이어진 분열의 시간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 될 때, 우리 마음과 품 안에 모든 사람이 분별없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올바르고 진실되게 사랑할 줄 알면 주변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회 유익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갖춰집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희년을 맞이한 가톨릭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동시에 정교회도 새겨야 할 중요한 말씀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