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키지 관광에서 샤르트르는 빠지지 않는 단골 장소입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80㎞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인 데다, 1130년부터 13세기 중엽까지 당시 최고 기술로 지은 프랑스 고딕 건축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2~13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매력적인 관광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순례자들이 샤르트르 대성당을 찾는 이유는 조금 다릅니다. 바로 이곳이 1300여 년의 프랑스 성모 신심의 본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랑스 청년들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출발해 2박 3일간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도보로 순례합니다.
‘샤르트르 학생 순례’의 계기는 프랑스 작가 샤를 페기가 경험한 치유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는데, 1912년 둘째 아들이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에 처하자 성모님에게 매달립니다. 그는 아이가 기적처럼 치유된 후 감사의 마음으로 샤르트르까지 순례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기까지 샤르트르 순례길을 여러 번 걸었습니다.
1935년부터 소르본 대학생들이 그를 기리며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맞춰 샤르트르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프랑스 수도권인 일드프랑스의 8개 교구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청년 샤르트르 순례’로 확대됐습니다. 1983년부터 전통주의자 중심으로 매년 성령 강림 대축일의 ‘그리스도교 순례’도 더해져 매년 청년들이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성모님 베일이 모셔진 곳
샤르트르 대성당을 순례하게 된 데에는 성모님이 예수님을 낳을 때 걸쳤다고 전해지는 ‘성의(聖衣, Sancta Camisa)’, 즉 성모님 베일이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왕 루이 9세부터 루이 14세까지 거의 모든 프랑스 왕이 이곳을 순례했으며, 800년 넘게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5세기 팔레스타인에 성지 순례하던 갈비오스와 칸디도스 귀족 형제가 나자렛에서 어느 늙은 과부의 집에 묵게 됐습니다. 그녀는 성모님 장례에 참석했던 이의 후손으로 성모님의 베일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형제는 베일을 몰래 복제품으로 바꿔치기해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뒤 성모님 베일은 블라케르나이 성모 성당에 모셨는데, 성유물 덕분에 루스족 등 이민족의 침입을 막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12세기 영웅 서사시 「카롤루스 대제의 순례」를 보면, 카롤루스 대제와 12명의 성기사가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돌아가는 길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성의를 가져옵니다.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면, 정황상 카롤루스의 청혼을 받은 동로마제국의 이리니 여제가 선물했을 듯합니다. 그 후 876년 손자인 카롤루스 2세가 샤르트르 대성당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이 아닌 왜 샤르트르였을까요? 이곳이 켈트족 사제인 드루이드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종교적 축제를 벌이던 성소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성당 중 유일하게 샤르트르 대성당에 무덤이 없는 이유도 아마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 겁니다.
대성당 크립타의 33m 깊이 우물은 이곳이 드루이드 여신의 성소임을 알려줍니다. 4세기 중반 복음이 전해지면서 켈트족의 성소가 ‘아벤티노 성당’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우물 앞에 모셨던 ‘지하의 성모’는 여신에 대한 숭배가 성모 마리아 공경으로 바뀐 반증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통해 퍼진 성모 신심
12세기 초 성모 신심은 아일랜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을 통해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를 거쳐 프랑스로 퍼져나갑니다. 성모님의 베일이 모셔진 샤르트르에도 많은 순례자가 몰려들었습니다. 수도자들은 성모님을 이상적 순결과 헌신의 모델로 여겼고, 중세 기사도에서도 여주인에 대한 헌신을 이상화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 공경은 쉽게 중세 사회에 녹아들 수 있었지요. 프랑스 대성당에 ‘우리의 귀부인, 여왕’을 뜻하는 명칭이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1194년 6월 10일 밤 화재로 기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거의 전소합니다. 서쪽 정문과 지하 소성당만 무사했지요. 다행히 성모님 베일은 지하 소성당에 옮겼기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새 성당을 지으라는 계시처럼 받아들였고, 프랑스에서 제일 큰 대성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성모 신심으로 탄생한 빛의 궁전
평원의 전원 마을에 우뚝 솟은 두 첨탑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성당 입구부터 포탈 팀파늄에 장대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랍니다. 길이 130.2m, 너비 16.4m, 높이 36.55m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에 넋을 놓기 마련이죠. 빛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조금 눈여겨보면, 이 공간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는 표현의 총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하 소성당에는 ‘지하의 성모’, 지상에는 성모님의 베일과 사라고사 필라르의 성모를 본뜬 ‘기둥의 성모’, 하늘에는 코발트블루 색으로 ‘푸른 성모’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유리창의 성모’와 ‘성모님의 영광’을 주제로 한 북쪽 장미창 등 모든 공간이 성모님 이미지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자녀들과 성모님을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겁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마음, 성모 신심 덕분에 샤르트르 대성당은 이렇게 아름다운 빛의 궁전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순례가 우리 마음이 주님의 집이 되는 계기가 되길 빕니다.
<순례 팁>
※ 파리·오를레앙에서 자동차로 1시간, 파리-몽파르나스 역에서 기차로 1시간. 주차는 ‘Q-Park Cathédrale’이 대성당과 가깝다.
※ 김인중 신부 작품이 소장된 스테인드글라스 박물관(5 Rue du Cardinal Pie), 1888년 우리나라에 진출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의 모원(5 Rue Saint-Jacques). 샤르트르 빛의 축제!(매년 4월부터 1월 초 매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