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특히 할머니는 집안에서 ‘신앙의 전수자’다. 아울러 가정에 지혜를 전해주는 ‘영적 스승’이시다.
구교우라면 항상 묵주기도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또 묵주기도뿐 아니라 아침저녁 기도와 삼종기도 등 모든 기도를 할머니에게서 배웠고, 늘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를 추억할 것이다. 할머니의 간구로 집안에 성직자·수도자가 배출됐고, 신앙의 명맥이 이어졌다. 그래서 할머니는 가정 교회의 으뜸 교리교사다. 할머니의 가르침으로 가족 구성원들은 어릴 적부터 도덕의 가치를 깨닫고 하느님을 흠숭하기 시작하며,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집회서는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고,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고 가르쳤다.(집회 3,2-6 참조) 아울러 잠언은 “손자들은 노인의 화관이다”고 했다.(17,6) 바오로 사도도 티모테오에게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2티모 1,5)라며 할머니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지혜로우신 우리 할머니들은 자녀와 손주들의 신앙 교육에 있어 단순히 기도만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분들은 ‘덕’을 가르쳤다. 가정은 덕을 가르치기 딱 좋은 곳이다. 좋은 표양으로 물질적이고 본능적인 삶을 영성적 삶으로 고양시켰다. 때로는 엄한 훈육으로 매섭게 대하셨지만, 그들 나름대로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권장하고, 하느님 소명을 일깨우는 데 힘쓰셨다.
보석과도 같은 신앙 열정 풍겨나는 할머니
이번 호에는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사진에 담은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먼저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3월 오늘날 경기도 의왕에 자리한 하우현성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묵주를 든 처네 쓴 할머니’<사진 1>을 촬영했다. 당시 하우현본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르 각 신부가 사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과 궁핍 속에 자랐고 일용할 양식을 척박한 대지에서 힘겹게 얻었다. 그들의 부모는 일찍이 신앙을 위해 전 재산을 버렸다. 사랑하는 이들은 망나니의 칼에 피를 뿜었다. 쓰라린 빈곤 속에서도 신앙은 그들을 둘러싼 험준한 바위처럼 굳건했다. 존경스런 노인들도 오셨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저 눈동자들! 이 산골짜기에서 신앙을 구했고, 신앙은 그들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이 산골짜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91~193쪽)
베버 총아빠스는 박해 시대 교우촌을 일군 하우현성당 교우들을 애잔해했다. 그러면서도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노인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는 하우현 교우촌의 표징 중 하나로 묵주를 든 할머니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할머니는 오른손으로 묵주를 들고, 왼손은 지팡이를 꼿꼿하게 쥐고 있다. 미사보 모양으로 처네를 쓰고 머리를 감춰 성직자에게 예를 표하지만 허리를 곧추 세운 당당한 모습은 어떠한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온 삶과 신앙의 흔적을 증거한다. 무엇보다 평화로운 할머니의 얼굴에서 보석과도 같은 신앙의 열정이 풍겨 나온다.
베버 총아빠스는 같은 해 4월 초 갓등이성당을 방문했다. 그는 또 한 번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해 옹기를 굽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교우들을 조우했다. “빈털터리로 쫓기던 박해 시절, 옹기 일은 그나마 안전한 직업이었다. (?) 그때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깊은 신앙과 뜨거운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50쪽)
늘 기도하는 엄마와 박해를 이겨낸 할머니
베버 총아빠스는 갓등이 교우촌에서 할머니와 며느리·손녀 둘을 주인공으로 신앙 3대 가족을 촬영했다.<사진 2> 할머니는 갸름한 얼굴과 가냘픈 몸을 하고 있지만 손녀를 안고 있는 두 손만큼은 굵고 힘세 보인다. 가끔 말보다 손짓 하나가 더 웅변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손을 바로 지녀야 한다. 검게 그을고 굵고 단단한 할머니의 손은 ‘신뢰’와 ‘공감’을 안겨준다. 신앙 전달자의 강인함을 잘 보여준다.
반면 기도서를 들고 있는 며느리의 손은 곱다. 쌍가락지를 한 고운 손이 자신을 거두어들이듯 몸을 감싸며 겸손을 드러낸다. 겸손하고 차분한 며느리의 고운 자태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온유와 품위를 내비친다. 할머니와 며느리는 존재 그 자체로 손녀와 딸에게 아름다운 표양이 된다. 늘 기도하는 엄마와 박해를 이겨낸 할머니에게서 배우고 자란 그들은 벌써 기도 자세가 몸에 밸 만큼 잘 성장했다.
낯선 서양 신부의 모습에 놀라 칭얼대는 막내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멋쩍은 일을 제공한 베버 총아빠스 때문인지 큰 애는 뾰로통한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본다. 그런데도 그의 손은 엄마처럼 몸을 감싸고 있다. 우리 몸에서 오직 십자성호를 그을 수 있는 지체가 바로 손이다. 위 아래로 손녀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손과 몸을 감싸고 있는 며느리와 큰 손녀의 손은 우리에게 십자가 형상을 보여준다.
수도원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도안으로 사용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2월 말 백동 수도원이 자리한 동소문 밖 서울 근교에서 장옷을 입은 할머니와 손주들을 촬영했다.<사진 3> 장옷은 일종의 머리 덮개다. 손자 둘에 손녀 하나를 얻은 복된 할머니이다. 할머니 얼굴에는 손주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비친다. 손주들도 그 사랑을 잘 아는지 밝고 행복해 보인다. 특히 이 사진은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성당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의 도안으로 사용되었다.<사진 4>우리옷의 다채로움을 볼 수 있는 가치있는 사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표현대로라면 손주를 부양하는 데 희생을 아끼지 않는 할머니는 ‘옆집의 성인’이다. 비록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할머니의 얼굴에는 한결같은 일상의 성덕이 엿보인다. 외간 서양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사진을 찍지만 눈을 마주치지 못해 지그시 내리깔고 있다. 꼭 상대를 보지 않아도 그 본성을 꿰뚫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마태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