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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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가 가장 기쁜 날이고 즐거운 삶의 항해이길 기도드립니다

[선교지에서 온 편지] - 알래스카에서 천영수 마론 신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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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로 사목 중인 알래스카 앵커리지-주노대교구 바다의 성요한 성당 앞에서. 천영수 신부 사진 제공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갔을 때만 해도

그곳에 뼈를 묻을 줄 알았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제 삶의 여정이

지금은 알래스카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버지 전상서

아버지 저는 언제나 바다가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작은 성당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성당 앞바다를 바라보면 제 고향 강릉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왠지 바다를 보면 모든 그리움이 잊혀집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일 미사에 참여한 가족들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어릴 적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 특별히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약 2년 전 이곳 알래스카 ‘앵커리지-주노대교구’로 발령받고 와서 알래스카의 수도인 주노에서 1년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이곳 대주교님께서 발령 내신 알래스카 최남단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 섬으로 왔습니다.

예전에 아프리카에 오셨던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야기해주었고, 한국에 오신 선교사들도 그랬듯이 모두 한 달이 넘는 기간 배를 타고 자신들의 낯선 임지로 오셨다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그리 먼 곳을 무슨 마음으로 왔을까 헤아려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새로 부임한 본당에 오기 위해 알래스카주의 주도 주노에서 출발해 21시간 배를 탔습니다. 물론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일주일씩 배와 차로 이동하는 신부님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배를 타고 부임 받은 성당으로 이동하면서 예전 아프리카로 향했던, 그리고 한국으로 향했던 선교사들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지난날 한국의 수많은 시골과 낙도를 배를 타고 찾아가 돌보시던 선교사들의 열정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이 섬에는 제가 사목하고 있는 ‘바다의 성 요한 사도 성당’이 있습니다. 본당에는 100여 명의 신자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지만, 섬 전체 인구는 약 4000명, 그리고 제가 사는 마을 인구는 700여 명입니다.

대다수가 어부인 이 지역과 본당 구성원 특성상 한여름은 낚시 철이라 많은 사람이 미사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미사에 오시는 경우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곳에서 잡은 신선한 연어 등 생선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갓 잡은 연어들을 손에 받아들고 감사를 주고받다 보면 고향 생각이 납니다. 알래스카의 작은 섬마을은 연어들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그리움과 의무로, 그리고 본능으로 다시 고향을 찾는 모습을 보며 저도 선교사로서 소박한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머나먼 여정 끝에 고향을 찾아와 다시 한 번 힘차게 바다를 지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을 보면서 저는 요즘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제가 알고 있는 어르신들을 기억하며 제 나이 때 아버지와 어르신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사셨는지 여쭙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삶의 끝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긴 여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요즘 이곳 알래스카 남동부에 살면서 큰 배들을 자주 타게 됩니다. 번화한 도시로 가려면 3시간가량 배를 타야 합니다. 그곳 ‘케치켄’에 가면 수많은 선착장이 있습니다. 특히 여름이면 수많은 배들, 특히 관광 크루즈들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운항하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아무리 멀리 오간다 해도 출발지와 목적지가 정해져 있음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승객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다양한 모습이 연상됩니다. 여정 사이에 좋은 날씨와 풍경을 만날 수도 있고, 짓궂은 날씨와 풍랑을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우리가 가는 길에서 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제가 타고 가고, 바라보는 배들과 같이 출항해 목적지로 가고 있는 제 삶의 여정을 다시 돌아봅니다.

아버지, 저는 처음 사제품을 받고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보낸 몇 년을 기억합니다. 그때에도 지면을 통해 아버지께 편지를 올린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아프리카에 뼈를 묻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제 삶의 여정이 지금은 이곳 알래스카의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바다의 성요한 성당 주일 미사 모습.   천영수 신부 사진 제공

멀리 설산이 아름다운 알래스카 주도 주노의 풍경. 천영수 신부 사진 제공

제가 아프리카에 살다가 지금은 알래스카의 시골 섬마을에 살고 있지만 제 삶의 목표가 바뀐 것이 아닙니다. 삶의 무대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당신이 필요한 곳에 보내주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신자들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선교사로서 제 삶을 성찰해봅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한국이 그립지 않은지, 또는 제가 사는 시골 동네가 좋은지입니다. 저는 늘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고,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지냈던 아프리카 사람들을 사랑했던 만큼 이곳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곳 사람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프리카 사람들을 사랑했는지 늘 돌아봅니다.

이제 제가 한국외방선교회에 입회한 지도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열여덟,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던 꿈이 이젠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목적지를 향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끝없이 구원을 향한 여정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하는 이들의 어떠한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제가 함께 만나는 분들이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라 믿기에 저는 오늘도 신자들과 행복한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기쁜 날이며, 가장 즐거운 삶의 항해이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버지, 못 뵌 지 꽤 되었습니다. 선교사로 살겠다며 집을 나와 조국을 떠나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수님 안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도를 통해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버지께 편지를 쓰면서도 옆에 함께 계신 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 아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소명에 잘 응답해 주어진 길을 잘 걸어 예수님과 본당 신자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럼 기도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뵙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아들 한국외방선교회 천영수 마론 신부 올림





천영수 마론 신부 / 알래스카 앵커리지-주노대교구 바다의 성요한 사도 성당

후원 문의 : 02-3673-2525(미주 : 310-922-1502)

우리은행 : 1005-301-587887, 재단법인 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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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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