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교황청 수교 60주년인 2023년, ‘첫 여성’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탄생했다. 이례적으로 한복을 입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주인공 오현주(그라치아) 제17대 대사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WYD) 개최 확정·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한국 주교단 사도좌 정기 방문(앗 리미나) 등 2023년 1월 5일 부임 후 2년간 한국 가톨릭교회가 누린 영광의 순간마다 오 대사 또한 한국을 대표해 자리를 함께 빛냈다.
오 대사는 취임 2주년을 맞아 본지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한-교황청 수교 60년 이후 양국 관계사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과정에 함께한다는 보람이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교황청과 한국 정부·한국 교회가 함께 번영하도록 지원하는 가교 역할을 임기 마지막 날까지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리=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 한국 정부와 한국 교회를 위해 2년 동안 바쁘게 달려오셨습니다. 소회와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요.
“‘감사’와 ‘도전’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가 교황청에서 위상을 높인 다양한 계기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한-교황청이 상호 친선과 우의를 높이는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문제 해결에 손잡을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교황청 외교단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대사관 주관 행사도 열어 역할을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첫 번째 일은 2023년 12월 11일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거행한 한-교황청 수교 60주년 미사입니다. 교황청과 한국 정부·한국 교회가 자리를 같이해 삼자 간 유기적 협력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습니다.
지난 10월 바티칸에서 고 이태석(살레시오회) 신부의 삶과 유산을 다룬 영화 ‘부활’을 상영한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유산을 지키며 남수단 톤즈에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는 살레시오 가족들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내용만큼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신부의 묘비에 쓰여있듯 ‘가장 작은 이를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한국 성직자·수도자들의 삶을 널리 전할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 새해 교황님을 알현하셨을 때, 어떤 말씀을 들으셨나요? 특별히 당부하신 것은요?
“교황께선 그간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새해 1월 9일 외교단과의 신년 하례에서도 “70년 넘게 분단된 한반도 상황 등 현대의 장벽들이 이산가족을 낳고 불신과 두려움의 근원이 되고 있다. 장벽이 인류를 분리하는 것이 아닌, 서로 만나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거듭 표명하셨습니다.
이날 교황께서는 제게 개별적으로 “한국 상황을 잘 듣고 있다. 한국 국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도 말씀하시며 최근 국내 어려움과 관련해 우리 국민을 위로하셨습니다.
교황께선 지난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직후 주일 삼종기도에서도 희생자를 애도하는 기도를 청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 가톨릭교회의 미래가 있고, 한국 교회가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교황과 교황청의 기대와 믿음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후 국제사회 원조를 받았던 한국이 산업화·민주화를 모두 달성하고 다른 나라와 그 경험을 공유하는 국가가 됐듯이 한국 교회도 아시아 지역 교회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이끌어내는 소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가톨릭 공동체 전체가 교황청의 보편적 역할과 활동에 관심을 두고 동참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면서 한국 정부·한국 교회와 교황청 관계도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대사관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며, 2025년 희년 계획도 궁금합니다.
“WYD는 한국 교회만의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로, 범정부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대사관도 문화체육관광부·외교부 등 주요 관련 부처에 행사 준비에 필요한 사항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교황청과 서울대교구의 준비에도 필요한 지원을 다하고자 합니다.
교황청이 사도좌이자 주권 국가로서 분쟁·빈곤·기후변화 등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 교회는 교회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는 위상을 높이고, 한국 정부도 세계적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그 중요한 계기가 바로 2027 서울 WYD입니다.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한국 정부도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선을 지향하는 교황청과 더 높은 차원의 협력관계를 이룰 것입니다.
올해 희년을 맞아 한국 순례자들의 방문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에, 교황청과 주이탈리아대사관과 긴밀한 연락 체계를 갖춰 순례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와 한국 문화를 알릴 행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북한군이 파병돼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교황청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교황께서 대외적으로 북한군 파병 문제를 언급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만 ‘모든 전쟁은 악’이라고 규정하시면서 우크라이나·가자지구 전쟁 등의 시급한 종전과 인도주의 복원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여러 번 내셨습니다.
북한군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욱 악화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부추기는 일임을 고려할 때, 교황께서도 큰 우려를 가지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 제가 만난 교황청 고위 성직자도 북한군 파병이 전쟁 장기화와 확전을 부추길 수 있는 데다 한반도·동북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조성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했습니다.”
- 국내 정치 상황이 혼란스럽습니다. 외교 업무 수행에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교황청도 이에 주목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황청은 통상 한 나라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진 않습니다. 다만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지난 12월 한국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과 이후 상황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국민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치적 혼돈 상황을 극복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며, 한국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 수호 의지를 변함없이 신뢰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습니다. 다른 국가 외교단도 한국이 겪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 영감을 줄 것이라며 우리 민주주의의 강인함과 회복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 첫 여성 주교황청 한국대사이십니다. 바티칸 내 여성 외교관이 증가하고, 교황청 요직에도 여성 기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티칸 내 여성 대사의 수는 이미 전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여성 외교관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대사관만 해도 저를 포함해 직원 4명 중 3명이 여성입니다. 최근엔 역사상 최초로 여성 수도자가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이는 평소 다양한 기회에 교회와 사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고 강화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교황의 뜻이 반영된 결과이며,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새해에 희망하고 기도하시는 바는요?
“한국이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번영하는 것이 정부 대표로 와있는 대사에게는 가장 큰 외교 자산입니다. 저는 이런 외교 자산과 한국 가톨릭 공동체의 성원을 바탕으로 우리 위상이 확실히 각인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국민 한 분 한 분의 평온한 일상이 회복되고, 지금의 어려운 정치상황을 극복해 더 강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