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공식적인 첫 작품은 후원자였던 리아리오 추기경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술 취한 바쿠스(1497)’였다. 이 대리석 조각상은 로마의 술(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흥건히 취해 술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로마인들이 신의 축복이라 부른 포도주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인 술이다.
하지만 포도주를 포도주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다. 미생물의 이 놀라운 역할은 1864년에 와서야 프랑스 화학자이며 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서 밝혀진다. 파스퇴르는 프랑스 북동부 릴 대학 화학 교수로 있을 때 지역 양조업자로부터 포도주 제조 시 제대로 발효되지 않고 시큼해지는 현상에 대해 조사 의뢰를 받고 해결책 찾기에 몰두한다. 파스퇴르는 포도주 제조 때 사용하는 도가니에 효모가 아니라 유산균이 들어있는 경우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아세트산균에 의해 포도주가 시큼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과학사에서 빛나는 파스퇴르의 업적은 발효나 부패,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포도주의 주재료인 포도의 포도당 1분자가 효모에 의해 분해되면 최종적으로 에탄올 2분자와 이산화탄소 2분자가 생성되는데 이 과정이 에탄올 발효다. 효모 같은 단세포 생물의 생화학적 작용이 술의 에탄올을 만들어준다. 만약 포도주가 산소에 노출되면 아세트산 발효가 진행되어 식초가 되어버린다. 먹다 남은 포도주의 마개를 제대로 밀봉하지 않으면 시큼해지는 이유다.
2000년 전에는 포도주를 만들 때 포도를 으깨서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아 발효시켜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에탄올과 함께 생성되는 이산화탄소 기체는 가죽 부대를 부풀게 한다. 오래된 가죽 부대는 탄성이 떨어지고 뻣뻣해 결국 가죽 부대가 터지게 되어 술을 버리게 된다. 설사 터지지 않더라도 부푼 부대의 갈라진 틈으로 공기 중의 산소가 들어가면 포도주는 아세트산 발효가 일어나 시큼해져 마시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새 술은 탄력이 있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성경에도 이에 대한 말씀이 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8) 이 말씀은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2025년이라는 새 술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우리 사회는 그 술을 담는 부대이다. 정치·경제·문화·예술·교육·신앙 등 모든 분야에서 2025년은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초심을 잊지 말고 발전과 도약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 본질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의 본질, 교육자는 교육의 본질, 의료인은 의료의 본질, 신앙인은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과 역할과 시스템을 바꾼다고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철학과 결단력, 구습을 타파하려는 행동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초심을 회복해 기본으로 돌아가 본질을 회복하려 노력할 때 진정으로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인 개개인이 모두 새로운 각오로 거듭나 새 술을 담을 만한 새 부대가 되기를 기도한다.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