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이 막 지난 1일 호주 멜버른대교구에서 열린 특별한 서품식에 함께했다. 두 명의 이주민 사제가 주교로 서품되는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한 사람은 필리핀 출신, 다른 한 사람은 베트남 출신으로, 두 주교 모두 이민자로 호주 땅에 뿌리내리고 사목해온 신부님들이었다.
특히 필리핀 출신 주교님은 나와 친분이 깊은 사제로, 같은 수도회에서 형제처럼 지냈던 분이다. 2015년 그는 선교 사제로 멜버른대교구에 파견돼 몇 개 본당에서 사목하며 필리핀 이민자들과 성소가 부족한 지역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그를 곧바로 보좌 주교로 임명하셨다. 필리핀 출신 사제가 호주 가톨릭교회 주교로 서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함께 주교로 서품된 베트남 출신 신부님은 13세에 가족과 호주로 이주해 공학을 전공한 후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걸었다.
이는 본토 출신 성직자 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이주민 사제를 주교품에 올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 된 신앙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라 생각한다.
인종과 신분의 차별이 없음을 선포한 바오로 사도의 선언 “이제 유다인도 없고 그리스인도 없으며 (중략)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 3,26-28 참조)라는 이 말씀이 서품식을 통해 눈앞에서 실현되는 듯했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평가받는데, 교회 역시 그 흐름 속에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흔히 이주민을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며 도움받아야 할 대상, 연민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단순한 자선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노동시장의 대체 인력, 결혼 배우자 확대, 글로벌 교육시장의 일부 등 다양한 기능적 역할로만 이주민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이주민을 하나의 ‘인격체’로, 같은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번 주교 서품은 필리핀과 베트남 이주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이주민에게 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줬다. 그리고 2025년 희년의 주제인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말이 저 멀리 호주 남쪽 끝자락에서부터 힘차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윤종두 신부(마산교구 창원이주민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