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 인류가 지속적인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2015년 파리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약속한 산업혁명 직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한계선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직전보다 1.5도 넘게 상승했다. 영국 보험계리사협회(IFoA)는 1월 16일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지구 기온이 3도 이상 상승한다면 온난화로 인해 40억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대한민국의 한 청년도 팔을 걷어붙였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Zero Energy Building, ZEB)로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앞장서온 ㈜써냅스 대표 손준혁(파비아노, 29, 서울대교구 용산본당)씨가 그 주인공. 건축물에 신재생에너지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제로 에너지 건축
“기후위기 원인 중 하나가 온실가스인데, 바로 이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가 건축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도 건축물에 ‘넷 제로’(Net-Zero), 그러니까 건물의 사용 에너지와 생산 에너지의 합을 최종적으로 0으로 해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제로 에너지 건축물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2004년 3월 연면적 3000㎡ 이상 신축·증축·개축하는 공공건물 공사비의 5 이상을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이후 건물의 예상 에너지 사용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했다. 올해는 공급의무 비율을 34까지 늘렸다. 민간 건물 적용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만 시행하다 올해부터 전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학교인지 다세대 주택인지, 건물의 용도·연면적·세대수 등 조건에 따른 기준이 지자체마다 다르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설계가 이뤄지다 보니 적용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어떤 신재생에너지원을 적용해야 가장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도 난제다. 손씨가 이 분야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며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손씨는 “사람의 손으로 하던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설계를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번거로움은 줄이고 공사비를 고려한 정확한 설계를 제공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적용에 대한 건축 현장의 신뢰를 높여나가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손씨는 “친환경 컨설팅사에서 근무하며 사업에 필요한 경험도 쌓아나갔다”며 “출원한 특허를 바탕으로 공동의 집 지구를 보호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을 두고 소규모로 회사를 운영한 지 2년가량 됐지만, 국내 건축물 설계와 공사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도록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손씨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한 한 민간건설업체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필요한 부분을 딱 짚어서 견적을 내줄 줄은 몰랐다”며 환경을 고려한 설계에 만족감을 표했다. 기존 공사비보다 평균 20를 절감하기도 하는 등 환경과 비용,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손씨는 뜻하지 않게 경험한 불안과 공포가 자신의 특기와 관심을 살려 지구 환경과 인류를 위해 쓰는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막 전해질 무렵 건강이 안 좋아졌어요. 코로나 증상이었던 것도 같은데,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당시 코로나 환자에게 보인 사회 태도 또한 너무 무서워 병원에도 가지 못했거든요. 위축되고 나서 다시 용기 내어 나가보려 해도 지나가던 차가 덮쳐 오진 않을까, 갑자기 간판이 머리 위로 떨어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할 정도였죠.”
손씨는 유아세례를 받고 신자로 살아왔지만, 이때만큼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 번은 정말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한 다짐이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손씨는 “희한하게도 그제야 모든 것이 고마워졌다”며 “어쩌면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조차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고 여겨졌다”고 했다.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작품으로 관심을 갖게 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생명을 살리는 데 보편적으로 이바지해보고 싶었어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저의 노력으로 인류가 1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 여기며 삶의 목표로 삼게 됐죠.”
특허 출원 등 기쁨과 보람
이를 위해 출원한 특허만 3개, 고정식·추적식 입체형 태양전지 모듈과 이를 이용한 태양광발전기 디자인권도 4개나 얻었다. 진심과 열정으로 임한 덕분인지 최근에는 아산나눔재단의 기후테크 창업가 육성사업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청년 사업가이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한다는 기쁨과 보람을 양분 삼아 뚜벅뚜벅 나아가는 중이다.
선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믿음은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손씨는 “주관적이지만 건축 시장 자체가 워낙 보수적이라 신기술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선 더욱 그러다 보니, 관련 정보를 얻고자 지금도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평생 먹을 술을 다 먹어 보는 것 같다”는 농담도 얹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점점 강화되는 규제와 함께 손씨의 회사 문을 두드리는 곳이 늘고 있다. 손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건강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교회의 도움 요청이라면 언제든 응답
그는 2021년 한국 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을 바탕으로 시작한 생태적 회심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방법을 제시하며 “교회도 기후위기를 막는 데 동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당을 수놓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다.
손씨는 “투명한 필름 또는 컬러 필름 형태의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을 활용해 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꾸밀 수 있다”며 “디자인이 가능한 BIPV 특성으로 성당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건물에 사용되는 화석 연료 에너지량을 줄여 궁극적으로 기후동행에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응답하겠다”고 했다.
손씨는 또 “건물에 신재생에너지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견적 서비스만 제공하는 지금의 사업 형태를 넘어 성능 좋은 신재생에너지원을 국내에 직접 납품하고 시공까지 하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건축물과 신재생에너지 사이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회사명을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Sun)과 세포끼리의 결합을 뜻하는 ‘Synapse’를 합쳐 ‘써냅스’라 지었습니다. 장기적으로 국내에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도입하길 원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나라에도 봉사하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겠다는 제 꿈이 국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