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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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중심지 루앙의 성모 순례지 봉스쿠르 노트르담 대성당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14. 프랑스 루앙 ‘봉스쿠르 노트르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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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카트린 언덕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루앙. 지대가 높은 센강 오른편이 구도심이고, 왼편은 신시가지로 옛날에는 범람원이었다. 출처=shutterstock


격동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루앙

프랑스 중북부를 흐르는 센강은 프랑스의 굵직한 역사의 현장을 가로질러 영국해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철도가 놓이기 전에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던 큰길이었습니다. 강둑마다 인간의 탐욕과 갈등, 한편으로 소박한 이들의 신심과 희망의 흔적이 새겨져 있지요.

센강 하류의 도시 루앙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습윤한 지역에 물길이 굽이쳐 흐르는 곳이어서 홍수 때 범람할 우려가 있지만, 영국과 내륙의 파리를 이어주는 지정학적 위치로 로마 시대 때부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영국에다 노르망디 와인을 팔고, 파리에다 소금과 생선을 파는 등 교역이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늘 바이킹 등 이민족의 희생제물이 됐고, 백년전쟁, 종교 간 갈등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루앙을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보통 차로 몽생미셸로 가는 길에 시간 나면 들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앙을 본 사람은 많습니다.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꼽히는 모네가 그린 30점이 넘는 ‘루앙 대성당’ 연작 시리즈 덕분입니다. 루앙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루앙 성모승천 대성당입니다. 이곳은 고딕 예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성당으로 1389년의 대형 천문시계, 잔 다르크로 알려진 성녀 요안나가 화형당한 곳에 세워진 생트 잔 다르크 성당과 함께 루앙의 관광 명소로 꼽힙니다. 그런데 루앙에는 우리가 가봐야 할 오랜 순례지가 있습니다.
봉스쿠르 노트르담 대성당. 1840년 완공된 네오고딕 양식 성당으로 고딕 특유의 뾰족한 아치와 섬세한 장식,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 1919년 3월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봉스쿠르 성당을 준대성전으로 지정했다.필자 제공
 
봉스쿠르 대성당(위)과 성모 소성당(아래). 삼랑 형식이지만 내진과 후진을 감싸는 회랑은 없다. 파리의 생트샤펠 성당처럼 내부를 화려한 색으로 장식했는데, 파란색은 믿음, 녹색은 희망, 빨간색은 사랑, 금색은 하느님을 상징한다. 주 제대 왼편의 성모 소성당에는 16세기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는데, 비오 9세 교황의 승인을 받아 1880년 천상모후관을 씌워드렸다. 필자 제공

언덕 위의 생트 카트린 베네딕도회 수도원

루앙 구도심 남동쪽에 140m 높이의 생트 카트린 언덕이 있습니다. 모네가 ‘루앙의 전경’을 그린 곳으로 루앙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는 1030년에 설립된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11세기 초 시메온이란 이름의 수도자가 알렉산드리아 수도원에서 성 가타리나의 성해 일부를 가져오면서 수도원이 세워졌고, 도심의 생투앙 수도원에 순례자 사목을 맡깁니다.

영국을 정복한 윌리엄 공작 등 여러 노르망디 귀족의 후원으로 생트 카트린 수도원은 나날이 번성했고, 영국까지 진출했습니다. 도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1312년에는 언덕까지 계단도 놓았습니다. 루이 10세와 샤를 5세도 이곳을 순례했지요. 하지만 이곳은 루앙이 한눈에 들어오는 요충지라는 점이 수도원의 발목을 붙잡고 맙니다. 포병의 발전으로 적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큰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597년 1월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앙리 4세는 이곳 수도자들을 다른 수도원으로 옮기고 시설을 완벽히 파괴해 버리고 맙니다. 지금은 유물 하나만 박물관에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이듬해에 앙리 4세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스페인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기나긴 전쟁을 끝냅니다. 이런 역사의 격동 속에서도 루앙을 지켜온 성모 순례 성당이 지척에 있습니다.
 
루앙 노트르담 대성당(위)은 1145년 후기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가운데 151m의 채광 첨탑은 번개로 불타버린 뒤 네오고딕 양식의 주철로 다시 세웠다. 1979년 잔 다르크의 화형터에 세워진 생트 잔다르크 성당(아래사진 왼쪽)은 전통적인 북유럽 성당처럼 바이킹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외형인데, 잔 다르크를 휩싼 화염을 묘사한 천장의 곡선미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압권이다. 1389년에 세워진 대형 천문시계(아래사진 오른쪽)는 교역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도시임을 보여준다.필자 제공

루앙 시민이 찾는 착한 도움의 성모 순례 성당

강을 거슬러 1㎞ 정도 올라가면 봉스쿠르 노트르담 대성당이 나옵니다. 이곳 블로스빌르에는 11세기부터 성모자상을 모신 소성당이 있었습니다. 소성당은 1261년 봉스쿠르 본당이 되었는데, 센강 뱃사공들이 이곳을 자주 순례했기에 배 모형의 봉헌물이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1034년의 순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생트 카트린 수도원을 찾았던 순례자들은 이곳도 같이 순례했을 겁니다. 종교 갈등이 심했던 1552년에는 5만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1772년 12월 8일에는 모시던 귀족을 죽였다고 누명을 쓴 하인 네 명이 이곳 성모님께 도움을 청한 뒤 기적처럼 진짜 살인범이 나타나 자백해 누명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봉스쿠르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큰 피해를 보았지만, 16세기에 제작된 성모상만은 온전히 보존되어 성모 소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의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은 프랑스 여러 교구와 외국의 후원금으로 1840년에 새로 지었는데, 스테인드글라스에 당시 은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1842년 8월 15일 봉헌된 첫 미사에 루앙 14개 본당의 신자 2만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그 뒤로 봉스쿠르는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도시에 위험이 닥칠 때마다 루앙 교구장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희망의 장소였습니다.
 
잔 다르크 기념물. 봉스쿠르 대성당 근처에 있다. 성 요안나 동상 양옆으로 성 가타리나, 성 마르가리타의 동상이다.필자 제공


대성당을 나오면 루앙을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잔 다르크 기념물이 보입니다. 성인의 기적적인 활약으로 프랑스는 잉글랜드를 대륙에서 내쫓고 샤를 7세도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로부터 버려져 편파적인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당했습니다.

요안나 성녀의 기념물이 일상의 시련 속에 소박한 이들이 찾던 희망의 장소, 함께 기도하던 사랑의 장소에 들어선 건 우연이 아닐 테지요. 잔 다르크를 영국군에 넘기고, 종교재판을 주재하고 거짓을 증언했던 이들은 전부 영국과 이해관계가 얽혀있었습니다. 그녀를 이단으로 몰아야 샤를 7세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 있었고, 그게 곧 현재 자기 이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20년 후 잔 다르크에 대한 재심이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어 순교자로 복권되고, 1920년 성인으로 시성됐습니다. 굽은 것을 곧게 펴시는 주님의 시간표는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입니다.

 

<순례 팁>

※ 파리에서 루앙역까지 기차로 1시간 20분(생라자르역 출발), 자동차로 1시가 40분(A13).

※ 루앙역에서 남쪽으로 Rue Jeanne d’Arc를 따라 걷다 보면 왼편으로 대성당이 보인다. 그 자리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생트 잔 다르크 성당이다. 천문시계는 대성당 가는 길에 있다. 대성당에서 봉스쿠르로 가려면 강가로 나와 버스(F5)를 타고 Mairie de Bonsecours 정류장에서 하차.

※ 봉스쿠르 노트르담 대성당(18 Rue de la Basilique, Bonsecours) 미사 : 평일 11:30(화~토), 주일과 대축일 10:30 / 성체 조배 : 성 요셉 소성당 매주 목 9:3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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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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