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7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과학과 신앙] (19)본 걸 믿는 걸까, 믿는 걸 보는 걸까(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얼마 전 17세기 유럽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바로크 시대 미술에 큰 발자취를 남긴 카라바조와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을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특히 이번에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요한 복음 20장의 한 장면을 그린 ‘성 토마스의 의심’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카라바조의 원본은 아니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후대 작가가 완성한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소장본이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토마스와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라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표현한 이 그림은 토마스가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를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와 극사실주의적 표현으로 마치 현장 상황을 보는 듯한 ‘성 토마스의 의심‘은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그림을 통해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와 좀처럼 그림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믿음이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는 것이며, 믿음에 대한 보상은 믿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떠올리며 가톨릭 신자로서 삶의 자세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 세상에는 안 보고도 믿어야 할 것이 있으며, 그와 반대로 반드시 눈으로 보고 믿어야 할 것이 있다. 전자는 신앙적 측면에서의 믿음이며 후자는 세속적 삶에서 접하게 되는 사회현상과 뉴스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첨예한 정치적 의견 대립과 이에 따른 집단 간 갈등으로 시끄럽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갈라선 서로의 정치 신념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인간은 어떤 사회현상이나 인간 행동에 대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현대의 뇌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믿음 혹은 신념의 형성은 분석적이고 합리적 과정의 산물이라기보다 개인적 경험·기억·감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대뇌 속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서로 다른 영역들이 복잡한 신경망들과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뇌는 인체의 몸무게 중 단 2 정도이지만 하루 중 섭취하는 에너지의 20나 소비한다. 따라서 에너지를 소비하며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보다는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주관적 믿음을 바탕으로 어떤 현상을 바라보며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내리는 효율성에 따라 작동하기도 한다. 거짓뉴스와 선동가들에게 현혹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피상적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하느님께 청해야겠다. 지금 나는 세상에 대해 보는 것을 믿고 있을까, 믿는 것을 보고 있을까?


전성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2-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3. 7

시편 31장 8절
당신의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니 당신께서 저의 가련함을 굽어보시어 제 영혼의 곤경을 살펴주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