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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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쇄신의 롤 모델이었던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18. 오스트리아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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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하우 계곡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 도나우강 암벽 위에 자리한 웅장한 수도원 단지로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무대가 된 곳이다. 출처=shutterstock

빈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를 동서로 관통하는 A1 고속도로를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바하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도나우강이 보이며 고즈넉한 마을 뒤로 암벽에 우뚝 솟은 요새의 실루엣이 나타납니다. 오스트리아의 역사·신앙·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성지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매년 50만 명이 넘는 이가 이곳을 찾습니다. 그 웅장함과 수려한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어느새인가 인터체인지로 나가게 되지요.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 동쪽 정면인 베네딕토홀. 시계 위 박공에 갈라디아서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라(Absit glorirari nisi in cruce)”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오스트리아 왕가의 중심지 멜크 수도원

수도원에 도착하는 순간, 1089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와 신앙·예술의 정수가 한껏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궁전처럼 보이는 입구로 이곳이 왕궁인가 싶다가도, 정면 베네딕도홀 입구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라(Absit glorirari nisi in cruce)’는 문구에 이곳이 세상 가치와 다른 세계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무대였던 수도원에 들어선 것이죠.

사실 이곳은 원래 오스트리아 변경백의 성(城)이었습니다. 976년 신성로마제국의 오토 2세는 변방이었던 오늘날 오스트리아 지역을 바벤베르크 가문에 맡깁니다. 바벤베르크 가문은 멜크를 근거지로 삼아 동북쪽으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군사적으로 멜크의 중요성이 떨어지자, 1089년 레오폴드 2세 변경백은 멜크성을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바꿉니다. 이때부터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바벤베르크 가문의 장지(葬地)로서 정치·종교의 상징이었으며, 중세 전반에 걸쳐 수도자들의 필사와 교육으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합니다. 수도원 필사실에서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1564년까지 역사를 기록한 「멜크 연대기」(1123~1564) 「성모 찬송」(1132년경)이 제작됐고, 1160년부터는 소년합창단 학교도 운영됐습니다.
멜크 수도원 도서관. 1089년 람바흐 수도원에서 베네딕도 규칙서를 가져오면서 설립됐다. 발터 아빠스 시절인 1224~1247년 제작된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여러 필사본 등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귀중한 필사본 1888점과 10만여 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다.

공의회 후 교회 개혁의 본보기

1297년의 대화재를 비롯해 큰 시련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특히 14세기 자연재해와 전염병, 서방 교회 분열로 교회 전반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베네딕도회 수도원들도 재정적 위기와 규율 쇠퇴로 심각한 위기를 맞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는 교황을 한 명으로 추대해 교회 분열을 종식할 수 있었지만, 바랐던 교회 개혁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중세 초 베네딕도회가 게르만족 복음화의 사명을 부여받았듯, 이번에도 개혁의 첨병 모델이 된 건 멜크 수도원이었습니다.

1418년 빈 대학 총장이자 수비아코 수도원 아빠스였던 니콜라우스 자이링어가 시찰관으로 멜크에 파견돼 수도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고 전례를 쇄신합니다. 이 개혁은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 수도원에 영향을 미쳤고, 멜크 수도원은 학문과 예술·문화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다시 굳건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서관은 다시 중요한 역할을 맡는데, 멜크 수도원의 필사본 2/3가 이때 만들어졌지요.

물론 종교 개혁의 광풍 앞에 철옹성은 없었습니다. 수도생활이 거의 중단될 뻔했고, 세속 영주의 개입도 늘어났습니다. 튀르크족과의 전쟁으로 국가 세수를 확대하느라 수도원은 재정적으로 더욱 쪼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신교에 맞선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 방침은 멜크 수도원이 부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학식이 있는 이들이 입회하고 수도원 학교도 혁신되며 우수한 수도자가 양성됐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화려한 바로크 수도원 모습은 이를 배경으로 탄생했습니다.

1700년 서른 살의 나이로 아빠스가 된 베르톨트 디트마이어가 젊음의 패기로 야콥 프란타우어 건축가 및 여러 예술가와 함께 1702년부터 40여 년간 수도원에 바로크라는 새 옷을 입힙니다. 건축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그 내면에 숨겨진 깊은 상징을 구현하는 데 성공합니다.
멜크 수도원 성 콜로만노 보조 제대(좌)와 성해 현시용 성광(우). 보조제대 석관에 오스트리아 왕가의 성인인 콜로만노의 성해가 모셔져 있다. 매년 10월 13일 축일에 사용하던 성인의 두개골 현시용 성광은 현재 수도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멜크 수도원 성당 주제대(좌)와 천장 프레스코화(우). 주제대의 “정당하게 입증되지 않으면 왕관을 쓸 수 없다(ON CORONABITUR NISI LEGITIME CERTAVERIT)” 비문처럼 신앙의 삶을 증거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성 콜로만노·성 베네딕도를 중심으로 성당 제대가 구성되어 있고, 천상에서 받을 상이 프레스코화에 구현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왕가의 성인 콜로만노 성해 모신 곳

넓은 성직자의 뜰을 지나 중앙 분수 좌측 옆으로 난 아케이드 길을 지나면 수도원 성당입니다. 두 개의 금탑과 돔으로 이곳이 하느님의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금박·스투코·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본랑과 높이 솟은 아치형 천장은 수많은 순례자에게 기도와 묵상의 거룩한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좌측 보조 제대에는 수도원과 마을의 수호성인인 성 콜로만노의 성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왕조를 연 바벤베르크 가문이 최초로 모신 성인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콜로만노는 아일랜드 왕의 아들이었지만 권력과 부를 전부 포기하고 성지 순례를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빈에서 30㎞ 떨어진 슈토케라우에 다다랐을 때, 주민들이 스파이로 여겨 붙잡아 고문한 뒤 죽였다고 합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가 전쟁 중이었기에 의심할 만도 했을 겁니다. 죄수라서 그냥 엘더베리 덤불에 시신을 버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고 주변에 꽃이 피어난 것을 보고 뒤늦게야 성인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2년 뒤인 1014년 10월 13일 바벤베르크 가문의 멜크성으로 성해를 옮겨 모십니다. 그래서 멜크에서는 매년 10월 13일 성인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죠.

멜크 수도원 성당에는 1362년 루돌프 4세 공작이 기증한 성 십자가 성유물와 다른 성유물도 모셔져 있습니다. 천국을 보는 듯한 프레스코화와 섬세하게 조각된 기둥, 벽면 장식에서 보이는 각 시대 예술가들이 남긴 정교한 손길….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밀려옵니다. 질병과 죽음으로 절망에 허덕이던 시대, 순례자들은 천상 같은 바로크 성당에서 천국을 꿈꾸며 현실을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을씨년스러운 현실 속에 사는 우리도 주님의 집에서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순례 팁>

※ 빈·린츠에서 자동차나 기차(장크트 푈텐에서 환승)로 1시간 소요. 멜크 기차역에서 시내 중심가를 지나면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 수도원 투어(독/영) - 비수기 평일 : 11:00 ·13:30·15:00(가이드 투어), 주말과 대축일 : 10:00~16:30(개인)·11:00· 13:30·15:00(가이드 투어). 성수기 : 9:00~ 16:30/17:30. 비수기에 도서관·대리석 홀 등을 보려면 가이드 투어 필수(1시간 소요). 도나우강 유람선에서 보는 멜크 수도원과 바하우 계곡의 모습이 절경이다.

※ 수도원 성당 미사 전례 : 주일 9:00, 평일 7:00(월~토) / 매일 12시 정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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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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