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24)‘한국 교회의 자선가’ 이성우 안토니오
한국 교회의 숨은 자선가 이성우 대표이사. 그는 남양성모성지 후원회장이자 바티칸 정원에 모자이크 성모화를 봉헌하기도 했다.
수차례 넘긴 ‘죽을 고비’
다섯 번의 대형 교통사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불명…
큰 후유증 없이 보너스 같은 삶
대물림하고 싶은 ‘기부’
30여 년 전 부모님이 봉헌한
진동 가르멜 수도원 축복식에서
기부하는 삶 살아야겠다 다짐
“줄 수 있어 감사”
마뗄암재단 오랜 후원자이자
남양성모성지 후원회장
바티칸 정원 한국 성모화 봉헌 등
수많은 곳에 후원·기증
“저는 인터뷰는 안 합니다. 대신 맛있는 밥 한끼 사드릴게요.”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바티칸에서였다. 역대 교황들의 산책로인 바티칸 정원에 한국의 성모를 담아낸 모자이크 성화 ‘평화의 모후’(심순화 작)가 걸렸는데 그 작품의 축복식이 열린 날이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축복식이 거행됐고, 이 작품을 봉헌한 이성우(안토니오, 69, 성은실업 대표이사)씨도 참석했다. 그는 유흥식 추기경에게 교황 축복장을 받았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바티칸 정원에 울려 퍼졌다.
“바티칸 정원에 아름다운 한국 성모님화를 봉헌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고, 12년 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40분간 의식을 잃었지만 아무런 후유증 없이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 번 저를 살려주신 이유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 해를 넘긴 지난 1월 중순. 그를 인천시 강화군 마니산로에 있는 마뗄암재단 강화쉼터에서 다시 만났다. 이곳에서 이영숙(베드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와 함께하는 것이 인터뷰 조건(?)이었다. 강화쉼터는 암 환자들의 요양시설이다. 이영숙 수녀는 암환자와 사별가족을 위한 기도와 피정을 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수녀는 이 대표의 어머니(고 이수희 아가타)가 딸처럼 여길 만큼 돈독한 사이였다.
어머니의 신앙 유산 ‘기부’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모후를 봉헌했을 때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무척 기뻐하셨을 거 같아요. 이렇게 자선할 수 있는 탤런트를 제게 물려 주신 어머니한테 감사드려요. 내가 남을 도와줄 능력이 되는 게 참 감사해요. 돕고 싶어도 능력이 안 되면 못하잖아요. 저는 그저 하루 밥 세끼 잘 먹으면 되고요.”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 미국 LA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989년 부모님이 봉헌한 경남 창원의 진동 가르멜 수도원 축복식에서 부모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을 보고 ‘나도 잘 되면 부모님처럼 좋은 일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아버지(고 이경형 요셉)는 이공계 서적 출판사를 운영했다. 신앙심이 남달리 깊었던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고 기부하는 분이었다. 한국순교복자수녀원이 서울 청파동에 들어설 때 수도방 17곳을 가족들 이름으로 봉헌했고, 강남구에 새로 짓는 본당 일곱 군데에 각 1억씩 봉헌했다. 이름 남기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어머니는 ‘그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라고 가까이 지낸 이영숙 수녀에게만 털어놨다.
어머니의 신앙 유산인 ‘기부’를 물려받은 그는 마뗄암재단의 오랜 후원자이면서 남양성모성지 후원회장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도 기증했다. 지난해 10월 한국가톨릭문화원에서 열린 가수 바다(비비안나)의 첫 성가 발표 음악회도 후원했다.
오는 5월 남양성모성지에 설치될 ‘천사의 상’이 이탈리아에서 제작 중이다. 모두 그가 기부한 돈으로 이뤄진 일이다. 서울대교구 한남동본당 총회장도 지낸 그는 차량이 없는 호스피스 봉사자 수녀에게 차량을 선물하고,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의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 7명도 후원했다. 이 중 4명이 사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한 신학생이 사제가 될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뒤에서 대줬다. 본당에서는 15년째 주차봉사를 하고 있다.
이성우 대표가 기부하는 삶을 결심하게 한 진동 가르멜 수도회의 대리석. 수도원을 봉헌한 부모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섯 차례의 교통사고와 의식 불명··· ‘덤으로 주어진 삶’
그는 2012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40분간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 호텔에서 회의하다가 잠시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한 초등학생 아이가 다가와 “아저씨, 담배는 몸에 나쁜데 왜 피우세요?”라고 했고, 그는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한 후 아이를 돌려보냈다. 식사 후 담배를 피우는데 머리가 빠개지듯 아프더니 몸에 힘이 풀려 쓰러져 119에 실려갔다.
“그 아이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청바지에 초록색 스웨터를 입었어요. 지금은 대학생이 됐을 거예요. 50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그 사고 이후에 끊었죠.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그 아이와 약속을 지켰어요.”(웃음)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살짝 어눌해지고, 왼쪽 발의 감각이 약간 둔해졌다.
“큰 교통사고를 여러 번 당했어요. 유리창·핸들이 다 부서졌는데 몸에 피 한 방울 안 난 일도 있었고요. 사고를 당할 때마다 하느님께 ‘왜 저를 계속 살려주세요?’라고 되물었죠.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하셔서 살았다고 느껴요. 좋은 일을 하라고 보너스 같은 삶을 계속 주시는구나 생각합니다.”
거액의 기부를 하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요즘은 가끔 이름을 남긴다. 그는 1989년 부모님이 봉헌한 진동 가르멜 수도원 축복식에서 부모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을 보고, 그도 자녀들에게 기부라는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졌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되묻는다. 그에게 누군가의 요청은 하느님이 시키시는 일이다.
지금까지 어느 기관에 총 얼마나 기부했는지 일목요연한 답을 듣고 싶었지만, 금액을 물을 때마다 이 대표는 “액수는 쓰지 말아달라”며 “오늘 인터뷰는 없던 걸로 하자”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 결국 기사에 돈 액수는 쓰지 않기로 했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두 차례 새벽 미사를 봉헌한다. 매일 남산에서 1시간 동안 산책을 하며 묵주기도 20단을 바친다. 한 단 한 단 기도가 필요한 지인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기부하면 좋아요. 나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 정말 좋습니다.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뻐요. 나는 전혀 기억을 못 하는데 받은 사람은 기억하더라고요. 본당에서 청소년분과장을 하며 아이들 밥을 많이 사줬는데, 한 어머니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데, 어렸을 때 분과장님이 밥을 많이 사주셨다고, 자기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나는 준 걸 잊었지만 받은 사람은 기억해주는구나.”
그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싶고, 할 일도 많다”고 했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