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 자녀를 위한 그룹홈 ‘베타니아’에 살고 있는 4명의 학생 중 3명이 학교에서 돌아와 수녀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가 운영하는 북향민 자녀를 위한 그룹홈 ‘베타니아’(시설장 이선중 수녀)가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8세부터 고교 졸업까지를 기준으로 현재 초등학생 두 명, 고등학생 두 명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30일 이기헌 주교 주례로 거행되는 설립 10주년 기념 미사를 앞두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금남’의 집 베타니아를 찾았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10년째 현재 학생 4명 돌봐
아이들 특성에 맞는 교육과 함께
캠프·봉사활동 등 다양한 체험 도와
평양에서 시작한 수도회 한반도 평화 기도하며 헌신
북향민들의 자녀 양육 돕고
통일 후 북녘 사도직 미리 준비
살아남은 아이들
“누군가를 도우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잖아요.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저부터 실천하려고요.”
간호사가 꿈인 희진(가명, 고2)양은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이론으로 배워서가 아니다.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본능(?) 같은 것이다. 희진양은 북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중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홀로 잡혔다. 먼저 남한에 와있던 엄마와 언니,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 수녀는 밤낮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걱정했지만, 어디서나 예쁨받던 어린 희진이는 보란 듯이 가족 품에 안겼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이미 그때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곤 베타니아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선한 영향력을 꿈꾸는 학생이 됐다.
옆에서 언니 얘기를 듣던 미연(가명, 초4)양도 한마디 거든다. “저도 뚜렷이 기억난다고요. 3살에 메콩 강을 건넜는데, 만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깜깜했어요. 그때 악어를 봤거든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강에서 나올 때까지 잡힐 뻔했다니까요. 태국에 가서는 사람들이 많은 감옥에 갇혔었어요. 저야 뛰놀았죠. 하나원에서는 방이 두 번 교체됐는데, 꽃향기 나던 로션 바르는 걸 좋아했어요.”
11살 아이는 긴박했던 탈북 과정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도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런 미연양의 꿈은 정신과 의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도 분명 희망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라도 그 희망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초등학생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란 사실을 일찌감치 체험한 아이들은 어른을 위로하고 있었다.
저희 엄마는 북향민입니다
또박또박 할 말 다하는 똑순이 같으면서도 아직은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 이곳에서 지낸다. 학교에서 이들이 북향민 자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담임 선생님뿐이다. 시설장 이선중 수녀는 그 역시 아이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언젠가 한 아이가 집에 와서 울음을 멈추지 않더라고요. 친한 친구에게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했답니다. 그 친구는 엄마한테, 그 엄마는 또 단체 대화방에서 다른 엄마들에게 얘기했다더군요. 그걸 우리 아이가 알았습니다. 그때 제가 강하게 얘기했죠. ‘북한에서 온 게 죄야? 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한 번만 더 괄시하면 수녀님에게 데리고 와. 혼내 줄 테니까’하고요. 그제야 울음을 그치더라고요.”
희진양은 “중학교 때는 이런 상황들이 불편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흔들렸던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수녀는 “그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토닥였다.
꼬리표가 일등 티켓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뗄 수 없는 꼬리표처럼 그들을 늘 따라다닌다. 베타니아에선 이 꼬리표를 ‘일등 티켓’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가족회의가 있는 날이면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본다. “곱창·닭발·마라탕이요!” 다음날 곧바로 그 음식들이 나온다. 남부럽지 않게 좋은 옷도 입힌다. “우리 집 한 아이가 8살 때 친구를 데려온 적 있습니다. 그 친구가 여기 분위기를 보고 엄마에게 자기도 베타니아에서 살겠다고 했다더군요.”
베타니아는 담임 선생님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아이들 특성에 맞는 교육은 물론, 가족캠프, 엄마와 함께하는 봉사활동과 추억 여행 등 지적·정서적 성장을 돕고 있다. 또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필리핀 나보따스 빈민 지역 가정 체험, 캄보디아 코미소 기술학교와 킬링필드의 역사현장 견학, 전쟁으로 피해 본 이들이 사는 베트남 희망의 집 방문 등 일반 가정에서 체험하기 힘든 세계 곳곳의 현장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예멘 난민, 이주배경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연합 캠프에도 참가했다. 이 수녀는 “한국말 못하는 친구들을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잘 도와줬는지 모른다”며 “국경 없는 어린이 모임이 따로 없었다”고 흐뭇해했다.
특히 원 가족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한 달에 2박 3일, 방학이면 열흘씩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준다. 이 수녀는 “부모와 우리의 신뢰가 아이들 양육에 매우 중요하다”며 “그걸 아이들도 알고 있어 지금껏 큰 사건·사고 없이 잘 커 주고 있다”고 했다.
베타니아의 보살핌 끝에 이미 4명은 고교 졸업 후 적성을 살려 명문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했다. 현재 있는 4명도 웹툰과 피아노 등 자신의 특기를 살리는 중이다. “잘 자라줘 고마울 따름입니다.”
마라도로 떠난 '베타니아' 가족캠프에서 단체사진. 이선중 수녀 제공
웹툰 작가를 꿈꾸는 '베타니아' 학생 작품.
기도해요 칭찬해요
“성당 가는 게 제일 재밌어요!” 베타니아 아이들은 주일 오전 9시 미사에 가기 위해 7시부터 준비한단다. 왜 성당 가는 게 좋으냐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수님 만나러 가니까요”라는 답이 나온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고요. 가치관이 맞거든요.”
매일 저녁에는 성모상 앞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시간도 가진다. 평일 저녁엔 보육 교사가 엄마처럼 돌본다. 수녀들이 함께하는 주말 저녁 기도 땐 일주일 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감사했던 일, 사과하고 싶은 일 등을 서로 나누며 관계의 깊이를 더한다.
또 베타니아에는 ‘칭찬함’이 있다. 본래 인가 시설에는 봉사자를 고발하는 ‘진정함’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칭찬하면 안 되느냐는 아이들 요청에 만들었다. 가족회의 때 공개하면서 가장 많이 칭찬받은 아이에게 상을 준다. 그 덕에 아이들은 서로를 돕는 일이 일상이 됐다.
이문수 신부 주례로 새해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베타니아' 학생들. 이선중 수녀 제공
저희 수도회 고향도 북한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1932년 북한 평양에서 설립됐다. 그러다 중공군 개입으로 평양이 위험해지자 남쪽으로 내려와 민족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채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켰다. 북한에는 아직도 생사를 알지 못하는 수도 가족들이 있다. 이에 수도회는 민족화해와 북한 복음화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며 헌신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5년 3월 30일 여자 수도회 중에선 최초로 북향민 자녀 그룹홈 베타니아를 설립했다. 북한이나 중국·한국에서 출생한 자녀를 둔 북향민 여성이 남한에서의 양육과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사정을 접하면서다. 부모의 자립과 그 자녀들의 정서적·심리적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수녀는 “북향민을 돕는 게 우선이지만, 저희는 통일되면 북한으로 가야 될 수도원”이라며 “북향민과 그 자녀를 통해 문화를 익히는 차원도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이유를 들어보니 마음은 있지만, 북에서는 너무 힘들게 사니까 고맙다는 말을 할 일이 없어 습관이 안 된 거라더군요. 그 다음부턴 마음만 받고 있습니다. 작은 문화이지만, 이런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참 예쁘잖아요. 사실 사도직을 하면서 이만큼 보람을 느끼기 쉽지 않거든요. 아이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에겐 축복의 10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