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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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힘으로 땅 일구며 하느님 섭리에 순응한 교우촌 농민들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23.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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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가래질로 길을 내고 있는 농부들’, 유리건판, 1911년 3월, 경기도 하우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봄이면 들과 산비탈에서 밭 일구는 농부들

봄이다. 얇은 얼음이 햇빛을 피해 논두렁 귀퉁이에 움츠리고 있다. 농가 처마 밑 그늘에는 겨우내 쌓였던 눈이 봄볕에 파랗게 질려있다. 눈 녹은 양지에는 생명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햇살을 잔뜩 머금은 봄기운은 다시 땅속 깊숙이 스며들어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안팎으로 생명의 기운으로 데워진 땅이 숨구멍을 내고 눅진해진다.

이때부터 농부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겨우내 창고에 쌓아뒀던 농기계를 꺼내 하나씩 손질한다. 텅 비어 있던 들과 산비탈 밭이 흰옷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가는 곳마다 농부들의 일상을 빼놓지 않고 사진에 담았다. 박해를 피해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교우들의 생업은 그나마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굽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베버 총아빠스는 “계곡이 넓고 비옥해진 곳에서는 교우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난한 산간 지방에 들어서서 골짜기마다 흙으로 둑을 쌓아 논에 물 댈만한 곳이면 어디든 마을이 숨어있다고 했다. 바로 교우촌이다. 이처럼 우리 신앙 선조들은 신앙의 힘으로 척박한 땅을 모두가 배 곯지 않는 기름진 땅으로 일군 부지런한 농부들이었다.

교우촌 신자들은 봄이 오면 밭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괭이와 삽으로 길을 낸다. 가파른 산길 드문드문 서 있는 뒤틀린 소나무 사이사이에 작은 담배밭이나 조밭이 있다. 담배는 값나가는 기호 작물이었다. 그래서 교우들이 많이 재배했다. 산비탈을 까서 계단식 논밭을 조성해 놓았기에 마을에서 그곳으로 가는 길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파인 곳이 있으면 돌을 채우고 흙으로 다져 편편하게 한다. 토사가 내려와 좁아진 곳은 흙을 퍼내 다시 넓히고 겨우내 내린 눈으로 부러진 나무와 잔가지들을 치운다. 논밭으로 이어진 길을 단단히 다져놓아야 쟁기를 진 황소뿐 아니라 똥거름 지게를 진 농부들도 다니기 편하다. 논두렁 밭두렁을 손보는 것도 이때다. 두렁은 논이나 밭을 경계 짓고, 경작지에 댈 물을 모아 줄 뿐 아니라 넘치는 것도 막아준다.
 
<사진 2>노르베르트 베버, ‘쇠스랑으로 논을 가는 농부’, 유리건판, 1911년 3월, 경기도 하우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교우들이 가래질로 길을 내는 장면 목격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3월 28일 경기도 하우현 교우촌에서 밭농사 시작 전에 교우들이 길을 내는 장면을 목격했다.<사진 1>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그들의 분주한 작업은 마치 개미 떼처럼 뒤섞여 부지런을 떠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신작로 공사판이다. 한 무리는 자루가 긴 가래로 인접한 밭이나 가로변 비탈의 흙을 파서 길 위로 던지고, 다른 무리는 곡괭이로 길을 파헤쳤다. 한국인들은 무거운 무쇠 가래를 ‘왕소’, 즉 큰 황소라 부른다. 가래 하나에 적어도 세 사람이, 대개는 다섯 사람이 붙어 일한다. 그중 한 명은 가래를 땅에 박고 조종하는 지휘자다. 가래 자루 하단부에 묶인 두 가닥의 가랫줄을 장정 두서넛이 잡고, 땅에 꽂힌 가래를 힘차게 홱 잡아채면 흙더미가 큰 곡선을 그리며 멀리 나아간다. 길 양쪽은 잡초 태우는 연기로 자욱했다. 경작지를 깊이 파 뒤집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작업한다니 재미있다. 그러나 도보 여행자가 이런 신작로를 걷는 건 괴롭다. 이건 길이 아니라 숫제 새로 일군 밭이나 진배없다. 복사뼈까지 진창에 빠지니 비가 오지 않는 게 고마울 뿐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08쪽)

평야 지대 농부들의 삶은 산속 교우촌 농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웠다. 산굽이 따라 흐르는 강에서 평지까지 인공 수로를 만들어 물을 댔다. 그들은 대부분 벼농사만 짓는다. 수로를 따라 넘쳐 흐르는 강물을 용두레로 퍼올려 논에 물을 댄다. 산골 교우촌은 모든 걸 사람 힘으로 한다. 그나마 부지런히 파놓은 저수지 덕에, 수차를 이용해 끌어들인 계곡 물 덕분에 수월하게 골짜기 아래로 향한 계단식 논밭마다 물을 채운다.

베버 총아빠스는 하우현 교우촌에서 쇠스랑으로 논에 물을 대고 있는 한 교우의 모습을 촬영했다.<사진 2> 쇠스랑은 땅을 일구어 흙덩이를 부수고 써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다. 물이 대어져 있는 걸로 봐서 막 논농사를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높은 산을 배경으로 하고 농부 뒤에 층층이 논두렁이 있는 걸로 보아 사진 속 교우의 논은 분명 산능선 구릉에 있는 다랑논이다. 바짝 마른 억새들이 드문드문 있는 것으로 봐서 아직 찬바람이 부는 날씨다. 이런 추위에도 농부는 맨발로 논에 물을 대고 쇠스랑으로 땅을 으깬다. 박해를 이겨낸 신앙의 후손이 이까짓 추위쯤이야 하는 굳셈이 보인다. 왜소해 보이지만 단단한 몸, 쇠스랑에 으깨진 흙덩이를 보는 진지한 눈빛이 하느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거룩한 몸짓으로 다가온다.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밭매기를 하는 가족’,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청계동,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점심을 하고 있는 농부들’, 유리건판, 1911년~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무거운 쟁기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5월 황해도 청계동 마을을 방문해 김매는 가족을 촬영했다.<사진 3> 논밭에서 자란 쓸모없는 잡초를 뽑거나 흙에 묻어버리는 걸 ‘김매기’라 한다. 그리고 경작지에 따라 ‘논매기’ ‘밭매기’라 했다. 밭매기는 1년에 서너 번 하면 되는 논매기와 달리 풀이 자랄 때마다 수시로 해줘야 한다. 그래서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더 고달프다. 김매기에 제격인 농기구가 ‘호미’다. 청계동의 노부부와 딸인 듯한 여인이 호미로 밭매기를 하고 있다. 고랑이 제법 있는 걸로 보아 작은 밭이 아니다. 고랑에는 퇴비를 잔뜩 뿌려놓고 잘 발효되도록 짚으로 덮어두었다. 심어놓은 채소들 틈 사이로 잡초들이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밭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보여준다.

농부의 하루는 짧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결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식사도 논두렁에 앉아서 하기가 일쑤다.<사진 4> 밥과 국, 반찬 하나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진수성찬이다. 식사는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 자체가 ‘감사’요 ‘고마움’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식사하기 전에 하느님과 이 음식이 나오기까지 애쓴 모든 이를 위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사진 5> 노르베르트 베버, ‘쟁기를 지고 소를 몰고 가는 농부’, 유리건판, 1911년~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어느새 소리 없이 해가 노을만 남기고 서산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농부의 하루도 이제 마감이다. 베버 총아빠스는 귀가하는 농부의 모습을 빼놓지 않고 담았다.<사진 5> 온종일 함께 단단히 굳은 논밭에서 느릿느릿 무거운 쟁기를 끌었던 황소의 등에서 멍에를 푼다. 대신 농부가 무거운 쟁기를 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가는 동안만이라도 가볍게 가라는 황소에 대한 농부의 고마움이 드러난 행동일 것이다. 햇살에 검게 그을은 농부의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피어오른다. 한국판 ‘만종’이다.

리길재 베드로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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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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