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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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맨에서 세계적 나전칠기 작가로… “교황님 의자 또 만들어야죠”

[이상도 선임기자의 톡(talk)터뷰] 교황 미사 집전 의자 제작한 김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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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영준 작가. 그의 뒤에 보이는 작품명은 ‘코스모스’다. 조개에서 나오는 다양한 색깔을 이용해 제작했다. 빌 게이츠가 반한 작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사용한 의자
느티나무 원목에 옻칠만 33번
자연산 조개 빛 이용 생명력 불어넣어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도 작품 주문
“나전칠기 기술 세상과 나누고 싶어”



2014년 나전칠기 명인 김영준(베드로) 작가는 아주 특별한 의자를 만들었다. 그해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주례할 미사 때 사용할 ‘교황의 의자’였다. 작가는 의자에 검정 옻칠을 하고 교황 문장을 새기고 자개(조개껍데기)로 장식했다. 8월 18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의자가 공개됐다. 앞서 그는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에게 작품 4점을 팔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났다. 그를 양평 나전칠기미술관에서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평화, 그리고 의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사목 방문이 확정됐다. 8월 14~18일 4박 5일 동안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비롯한 빡빡한 일정이 잡혔다. 마지막 행사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였다. 교황이 미사 때 사용할 의자가 필요했다. 교황청에서 작가의 이름표를 다 뗀 채 의자를 심사했고 김영준 작가의 의자가 채택됐다.

“제 의자가 소박하지만 절제되고 품격 있는 교황님 성품과 제일 잘 어울렸다고 들었습니다. 의자를 만드는 데 8개월이 걸렸습니다. 느티나무 원목에 옻칠을 33번 했습니다. 길한 숫자이자 예수님 생애로 여겨지는 ‘33’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잖아요. 등받이 부분에 교황 문장을 새기고 작은 자개를 붙였고요, 손잡이 양쪽 정면에는 자개로 교황 방한 로고를 만들어 부착했습니다.”

8월 18일 명동대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됐다. 교황이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행사였던 이날 미사에는 대통령과 7대 종단 지도자 등 주요 인사 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탈북자와 납북자 가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 아픔을 간직한 이웃들이 참석했다. 교황은 그날 미사에서 평화와 화해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김영준의 관심은 온통 의자였다.

“교황님이 ‘용서와 화해는 인간 시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 미사 내내 의자에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교황님을 의전하는 측에서 미사 하루 전 갑자기 교황 문장이 너무 화려하게 보일 수 있으니 안 보이게 가려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천으로 다 가렸거든요. 미사가 끝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교황님이 저와 악수하고 포옹해주셨습니다.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홍문택 신부와의 만남과 이별, 고통

김영준 작가가 교황 의자를 만들게 된 계기는 경기도 연천에서 저소득층 대상 ‘화요일아침예술학교’를 설립한 홍문택(2017년 4월 27일 선종) 신부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우연히 예술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차에 태워준 적이 있어요. 학교로 연락하니 다음날 홍 신부님이 저한테 달려왔어요. 오자마자 바로 학교로 가자고 해요. 가보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이더라고요. 학교를 만든 취지를 듣고 반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강의하고 있었을 때인데, 화요일아침예술학교에서 저는 나전칠기를, 대학원생 제자들은 서양화를 무료로 가르쳤어요.”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홍 신부가 의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교황 방한 1년 전인 2013년 여름 무렵이었다. “갑자기 ‘우리, 의자 만들자!’ 그래요.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그래요, 만들죠’ 했죠. 둘이서 작업을 많이 했어요. 홍 신부님이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교황 방한 로고 ‘일어나 비추어라’를 붙이고, 교황 문장을 새기고 자개를 붙이는 것도 함께했죠.”

그랬던 홍 신부는 2017년 갑자기 선종했다. 그에겐 엄청난 충격이자 인생 최고의 고통이었다. “정말 동반자라 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정신·육체적으로도 최악이었습니다.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고지혈과 고혈압, 당뇨도 심했고요. 너무 힘들어 ‘바다로 들어가 그냥 죽을까?’란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전주에 계신 신부님이 가르쳐준 자연치유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죠.”

 
경기 양평 나전칠기미술관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의자. 김영준 작가는 교황 의자 같은 중요한 작품은 만약을 대비해 꼭 2개를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관에는 교황 방한 의자를 비롯해 빌 게이츠에 판 ‘초충도’ 등 똑같은 모양의 작품이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사용했던 소반과 찻잔. 그의 작품에는 나비가 새겨진 경우가 많다. 나비가 자유롭게 나는 것처럼 인간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증권맨에서 나전칠기 작가로

김영준 작가의 첫 직장은 증권회사였다. 1984년 동서증권에 입사한 그는 소위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MBC에서 3년간 증권 시황을 전했고, 증권 관련 책도 썼다. 당시 아파트 3채를 살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인생 멘토로 모시던 손병두(요한 보스코, 전 한국평협 회장) 동서경제연구소 사장이 회사를 그만둘 때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1995년 퇴직했을 때가 38살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LA 아트&디자인 아카데미스쿨에서 2년간 공부했습니다. 또 이탈리아 밀라노의 도무스 아카데미에도 갔습니다. 거기서 나전칠기로 예술작품을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2001년에는 일본 가나자와에서 다시 2년간 옻칠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경기 양주에 공방을 만들고 강남에 전시장을 열었지만, 나전칠기 장롱은 팔리지 않았고 예술품으로 내놓은 자개 작품도 찾는 이가 드물었다. 그 사이 퇴직금도 거의 까먹었다. 그러던 중 결정적 계기가 찾아왔다. 프랑스 파리 전시회 도중 우연히 세계적 기업가 빌 게이츠가 그의 작품을 본 것이다. “2007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초청으로 파리에서 작품 전시를 했습니다. 호텔에 머물던 빌 게이츠가 그걸 봤죠. ‘코스모스’ 2점과 ‘초충도’ 2점을 샀습니다. 2008년에는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X-BOX)에 자개를 새겨달라는 부탁이 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방한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줄 선물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세계적 예술가로 거듭났다. 2009년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아이폰 케이스에 자개를 새겨넣었고, 2010년 아랍에미리트 공주의 화장대를 만들었다. 2017년에는 태국 왕실 초청 전시회를 가졌고, 2024년에는 미국 CNN에도 출연했다.



나전과 빛, 하느님

나전칠기는 얇게 간 자개를 사용해 무늬를 만들어 붙이고, 그 위에 여러 번 옻칠해서 완성하는 전통 공예기법이다. 그는 천연 재료인 조개의 빛을 이용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저는 자연산 조개를 씁니다. 양식 전복에서 나오는 색과 자연산 전복의 색깔은 완전 달라요. 제 작품 코스모스는 조개에서 나오는 여러 색을 이용해 만든 것이에요. 자개는 노랗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푸른 빛이 돌기도 합니다. 진짜 아름다워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빛을 주셨죠. 자개는 그 빛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엔 유독 나비가 많다. 빌 게이츠가 주문한 게임기에도, 교황 방한 때 제작한 작은 소반에도 나비가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죠. 나비가 자유롭게 나는 것처럼 인간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찻잔에 새긴 건 원인데 원이 곧 우주잖아요. 인간들이 좀더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빌 게이츠에게 판 작품인 ‘초충도’ 앞에 김영준 작가. 작품 속 나비, 가지 등은 모두 자개로 장식되어 있다. 

나눔과 희망, 꿈

김영준에게 나전칠기는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다. 더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고 나눔을 실천하는 매개체다.

“나전칠기를 배우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제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다들 포기했습니다. 제 작품을 팔아 돈이 마련되면 돈을 주면서 배우게 할 겁니다. 장애인과 소외계층에게 나전칠기 기술을 전수할 수도 있고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더 많은 나눔의 기회를 주고 치유와 희망을 전하는 것, 그게 앞으로의 제 역할입니다.”

2027년에는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열린다. 그에겐 다시 한 번 교황 의자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대회가 열리면 교황님이 방문하실 텐데, 기회가 된다면 의자를 다시 만들어야죠. 그 전이라도 명동성당이든 어디든 제 작품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raelly1@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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