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산책길 옆 나뭇가지들에서 여린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고 예쁘고 대견해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4~5월, 녹색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요즈음 인기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오프닝 곡 ‘봄’과 이 곡의 가사 속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봄 봄 봄 봄 봄이여”도 마음에 콕 들어와 박힌다.
그러나 2025년의 봄을 그 자체로 맞이하기에 우리는 무언가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프고 이 가시가 뽑히지 않을까 불안하다. 물론 그 근원은 작년 12월 3일 계엄사태다. 12·3 계엄 이후 벌써 5개월째 대다수 국민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폭력적이고 반헌법적이며 반민주적 증오의 말과 행동들이 대규모 군중 집회와 유튜브에서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법원을 향한 폭동이 실제로 자행됐고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조차 믿지 않는 등 그야말로 헌정 질서 자체를 부인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대규모 군중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여파는 우리 모두의 일상에도 그대로 파고들어 우리 내면에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대중은 이 상황에 ‘내란성 불안’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일시적일 것 같았던 이 불안이 만성화돼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더 심해지고 있다. “선생님, 오늘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선고일을 발표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해요? 어제도 잠을 통 못 잤어요. 요즈음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도 느껴요. 어떤 때는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요.”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지인들과 제자들을 만나 듣는 이야기에 나의 불안도 가중된다.
각자의 방법으로 이 불안을 덜어보려 안간힘을 쓴다. 뉴스나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를 안 보는 등 소위 불안을 자극하는 정보를 회피하거나 차단하기도 한다. 반대로 군중 집회에 적극 참여해 불안을 토해내기도 한다. 혹자는 스터디 모임을 꾸려 납득할 수 없는 극우 집단의 말과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애쓴다.
이런 자구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태가 해결되기 전엔 아마도 내란성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파면되고 대선이 끝나더라도 명백한 반헌법적 말과 행동은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극우세력을 옹호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바뀌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하다. 이미 2020년 총선부터 극우 개신교와 손잡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행보는 극우세력의 준동이라는 방아쇠를 당겼고, 이제는 그들의 규모와 힘이 보수 정당을 숙주로 삼아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 국민의 내란성 불안을 만성화할 충분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녹색의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질 만개한 봄을 기다리는 것은 개인도 집단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는 우리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한 난관을 헤치고 나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 가능성과 힘을 믿으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녹색의 봄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김인숙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