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수레질하는 옹기장이’, 유리건판, 1911년 4월, 갓등이 옹기 마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신앙 선조들의 옹기는 신앙 증거의 수단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일까? 아마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득 담아 그 말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그릇’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것도 숨구멍이 있어 생명이 살아 숨쉬는 ‘질그릇’일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에 담긴 보물’로 비유하지 않았는가!(2코린 4,7 참조)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질그릇은 ‘사람’과 닮았다. 인간 역시 하느님에 의해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쉽게 깨지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이지만 더없이 사랑받고 널리 쓰이는 것이 질그릇과 사람의 닮은 꼴인듯하다.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고온에 구우면 ‘오지그릇’이 된다. 된장이나 김치 등 발효 식품을 담아두는 갈색 빛깔의 독이 바로 오지그릇이다. 그리고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칭해 ‘옹기’라고 부른다. 옹(甕, 瓮)은 우리말 ‘독’의 한자어다.
한국 천주교 박해사의 특징을 ‘옹기장이 신앙’이라 표현할 정도이니 옹기는 한국 천주교회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이 땅의 천주교인들은 깊은 산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로 숨어 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옹기나 숯을 팔아 목숨을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은 옹기를 단순히 생계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신앙 증거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십자가 모양의 넝쿨을 그리거나, 비둘기·포도나무 등을 무늬로 자신만의 신앙 고백을 옹기에 새겼다.
이 믿음의 표식으로 옹기는 단순히 음식이나 물건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하느님 보화를 담은 그릇으로 변화한다. 단순히 믿음의 표식이 새겨졌다고 해서가 아니다. 이 옹기들은 굽던 질가마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성사를 고대하던 교우들 믿음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신앙을 생활과 정신, 노동 안에서 실현함으로써 그 믿음을 완전한 사랑으로 변화시킨 신앙 선조들의 놀라운 힘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 때 그것이 사랑의 생활이 되고, 사랑의 행위가 된다는 것을 옹기에 새긴 작은 믿음의 표식으로 증거했다. 이 놀라운 신앙 선조들의 믿음의 삶이 오늘날까지 한국 교회의 바탕이 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무수한 그리스도인이 이런 옹기장이 신앙인의 후손들이다. 간혹 몇몇 성지에서 ‘한국의 카타콤바’라고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 한국의 카타콤바는 옹기를 굽던 산골 교우촌의 ‘질가마’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옹기 제작’,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이엉으로 옹기 말리기’, 유리건판, 1911년 4월, 경기도 갓등이 옹기 마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곡식도 담고 오물도 담는 삶의 그릇 ‘옹기’
이처럼 질가마에서 탄생한 것이 김수환 추기경의 ‘옹기 영성’이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옹기는 특별합니다. 오래된 옹기의 뚜껑을 열어보면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게 있습니다. 무자비한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켰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습니다. 곡식도 담고 오물도 담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그릇이었습니다. 오물조차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 세상에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소망을 담아 제 아호도 ‘옹기’로 정한 것입니다.”(김수환 추기경 말씀 중에서)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삶에서 활성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온전히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영성생활이다. 이 삶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뿐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9)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경기도 화성 갓등이성당을 방문해 옹기 마을 교우촌 일상을 사진에 담았다. 베버 총아빠스가 찾은 옹기 마을 교우촌은 갓등이성당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었다. 이곳 교우 150여 명의 조상들은 박해를 피해 이리저리 떠돌다 마침내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빈털터리로 쫓기던 박해 시절, 옹기 일은 그나마 안전한 작업이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더 좋은 흙과 땔감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척하고 신속히 은신처를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때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깊은 신앙과 뜨거운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50쪽)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옹기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먼저 수레질이다.<사진 1> 한 교우가 돌림판 위에 점토 덩어리를 올려놓고 돌리면서 수레로 쳐서 모양을 만든다. “길이가 50㎝쯤 되고, 너비는 손바닥에 약간 못 미치는 판때기로 평평하게 두드리더니, 발로 돌림판을 잽싸게 돌리면서 튼튼한 나무칼로 점토를 둥글게 깎아 냈다. 그런 다음, 점토를 동그랗게 말아 가장자리에 민첩하게 쌓아 올리고는 부드러운 반죽으로 점토판과 이어 붙였다. 가장자리가 점점 높아지면 형태 없던 흙덩이가 산뜻한 옹기로 탈바꿈할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50~251쪽)
드디어 작은 항아리 하나가 빚어졌다.<사진 2> 장인은 만족한 듯 두 손을 떨군 채 자신이 빚은 항아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느새 잔뜩 몰려든 교우촌 신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아마도 항아리를 빚는 것보다 서양 신부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왔을 것이다. “이제 표면도 매끈해졌고, 처음에는 곧추서서 투박했던 옹기가 바닥부터 제법 우아해졌다. 배는 볼록하고 아래위는 날렵했다. 옹기장이가 재빨리 손잡이를 붙이면 첫 공정이 성공적으로 완수된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52쪽)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질가마’, 유리건판, 1911년 4월, 경기도 갓등이 옹기 마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5> 노르베르트 베버, ‘옹기 장수’, 유리건판, 1911년 4월, 경기도 갓등이 옹기 마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옹기 팔러가서 성직자·교우들과 연락 취해
성형된 옹기는 자연 건조 과정을 거친다. 이곳 교우들은 이엉을 엮어 그늘을 만들어 그 속에서 옹기를 말렸다.<사진 3> “옹기들이 천천히 건조되고 있다. (?) 방마다 짚을 깔아 두었다. 흙벽을 두껍게 쌓고 입구를 낮추어 옹기의 균열을 막는 데 필요한 냉기를 유지했다. (?) 이 어두운 방에서 몇 주 동안 건조된 옹기는 새로운 시련을 맞는다. 큼지막한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52~253쪽)
드디어 질가마에 불이 들어갔다.<사진 4> “마을 끝에 길이 25m, 너비 2.5m의 가마가 완만하게 경사진 둔덕으로 펼쳐져 있다. 둔덕은 약 15도 경사를 이루며 저수지로 이어진다. 가마의 긴 쪽에는 흙을 쌓아 열기를 보존했고, 윗부분은 진흙으로 덮어 아치형을 이루었다. 가마 아래쪽 끝에는 화덕을 만들어 열기가 가마 전체에 전달되도록 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53쪽)
가마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열기가 식자 교우들은 옹기를 조심스레 끄집어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가차 없이 박살을 냈다. 제대로 된 옹기를 한가득 지게에 싣고 읍내로 내려간다.<사진 5> 장터로 가는 길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꽃이 얼굴에 피어오른다. 그는 읍내 장에 가서 옹기도 팔뿐더러 세간의 눈을 피해 성직자·교우들과 연락도 취한다. 그렇게 성직자를 만나 성사를 받고, 세상 돌아가는 정보도 수집해 교우촌으로 돌아온다. 옹기 덕에 목숨을 부지하고 기본적인 생활은 영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