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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봉 주교 선종] 한국 교회에 찐사랑 전해준 ‘착한 목자’ 두봉

두봉 주교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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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두봉 주교가 1999년 7월 26일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주교수품 30주년 및 칠순 축하식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제로 산 70년 동안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길 때 하느님께 칭찬받을 일은 ‘사제가 된 것’입니다.”(2023년 7월 24일 사제수품 70주년 감사 미사 중)

예수님께 탄복해 71년 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국 교회를 행복과 사랑으로 안내한 목자.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레나도 주교가 4월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좌우명 ‘기쁘고 떳떳하게’를 실천하며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자 아버지로 헌신한, 그야말로 ‘착한 목자’의 본보기가 되는 삶이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첫 소임인 대전교구 대흥동본당 보좌 신부(1955~1965) 시절. 왼쪽은 당시 주임이었던 고 오기선 신부.

 

 


‘기쁘고 떳떳하게’ 산 목자 
1954년 전쟁의 상흔 간직한 한국으로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농촌사목에 힘써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에서 함께 살며  
환한 미소로 사제·신자들에게 모범 보여 
71년간 한국 교회에 한없는 사랑 베풀어 





예수님께 반해 사제가 되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사랑이시다.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기에 최고의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분이다.”

프랑스 태생인 두봉 주교의 본명은 ‘르네 마리 알베르 뒤퐁(René Marie Albert Dupon)’. 1929년 9월 2일 오를레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사제를 꿈꿨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대신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할 때, 종교철학 교사였던 한 사제가 남긴 이 말이 확신을 줬다. ‘그래, 나도 예수님처럼 평생 사랑을, 행복의 길을 가르치자.’

대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953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았다. 이듬해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퐁 신부는 12월 19일 마침내 선교지에 도착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자신의 친구 역시 참전해 목숨을 잃은 이 땅에 뒤퐁 신부는 ‘뼈를 묻을 각오’를 했다.

그리고 1955년 대전대목구 대흥동본당(현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했다.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고 오기선(1907~1990) 신부를 도와 10년 동안 열정적으로 사목했다. 프랑스 성(姓)을 한국식으로 바꾼 ‘두봉(杜峰)’이란 이름도 오 신부가 지어줬다.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란 뜻도 된다. 그렇게 프랑스인 뒤퐁은 한국인 두봉으로 이 땅에서 70년 삶을 시작했다.

두봉 신부는 대전교구 학생회와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 지도 신부·교구 상서국장을 지냈다. 이어 1967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이 됐다. 그러다 1969년 5월 29일 한국 교회 15번째 교구가 탄생했다. 대구대교구가 관할하던 경북 북부 지역이 새 교구로 분리·설정된 것이다. 안동교구다. 그리고 초대 교구장으로는 만 39세의 두봉 신부가 임명됐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필두로 한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12번째 교구장(주교로는 13번째)이었다. 착좌식은 1969년 7월 25일 거행됐다. 1951년 사제수품 후 안동본당(현 목성동주교좌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했던 고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 주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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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각각 서울대교구장과 안동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과 두봉 주교.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제공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 실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朝聞道 夕死可矣, 조문도 석사가의)’.”

새 목자의 탄생을 맞이하던 안동교구민들은 프랑스 출신 주교가 「논어」를 인용하자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전국에서 유교 전통이 가장 강한 교구 특성을 고려한 두봉 주교의 섬세하고 친근한 면모가 잘 드러난 대목이다. 이어 두봉 주교는 “여러분이 가꿔놓은 기름진 토양에 소담스러운 꽃 한송이를 심어놓고 싶은 게 소망”이라며 “외지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 고장 발전을 위해 필요한 종으로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두봉 주교가 바라는 안동교구의 방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살리는 교회 공동체’였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교회가 돼야 한다.” 그 일념 아래 교구뿐 아니라 지역 사회가 함께 발전할 방안을 늘 고민했다. 21년간 교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교구 기틀 마련은 물론, 경북 북부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첫 시작으로 여성 교육의 문호를 넓혔다. 교구 설정 이듬해인 1970년 상지여자전문학교(현 가톨릭상지대학교)를 개교했다. 경북 북부에서 처음 설립된 여성 고등교육기관이자 한국 최초 전문대학의 탄생이었다. 1972년 상지여자 중·고등학교도 건립했다. 배움을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마리스타 야간학교와 학생회관, 한센병 전문 병원인 영주 다미안의원도 들어섰다. 신체장애인 자립과 재활을 위한 직업훈련원을 짓는 데에도 두봉 주교가 큰 금액을 지원했다.

1973년 두봉 주교가 신자와 지역민을 위해 건립한 안동문화회관은 가장 오래 많은 이에게 사랑받은 공간이다. 변변한 문화 시설 하나 없던 경북 북부에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성전(동부동성당)과 함께 공연·전시·영화 상영 등 다양하게 쓰인 회관은 가뭄의 단비 같은 공간이었다. 때론 보릿고개를 맞아 주민들이 먹고 자는 보금자리요, 반독재 투쟁의 구심체이기도 했다. 명맥이 끊긴 하회별신굿탈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가 복원된 장소도 이곳이다. 두봉 주교 지원을 받아 초대 관장 고 류한상(베드로)씨가 이뤄냈다.

이처럼 지역 사회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두봉 주교는 2019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앞서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과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그리고 백남상·만해실천대상을 받기도 했다. 상금은 역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였다.


 

 

 

두봉 주교가 안동교구장 재임 시절 1981년 11월 18일 안동 농민회관 축성식 및 추수감사제를 거행하고 있다.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제공

 

 


농민을 사랑한 주교, 목자를 사랑한 양 떼

안동교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본당보다 공소가 많은 ‘농촌 교구’다. 농가 출신인 두봉 주교는 산업화, 즉 정부의 공업 일변도 정책 속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농민들의 애환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에 교구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공소에 들를 때마다 신자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느라 밤 12시까지 잠 못 드는 일도 적잖았다.

이때 안동교구는 전국 교구 최초로 사목국에 농촌사목부를 설립하는가 하면, 정부의 차별과 억압에 맞서 농민들과 연대했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1979년 발생한 ‘안동 가톨릭농민회 사건’인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었다.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오원춘(알폰소) 청기분회장이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폭행당한 일이다. 영양군청이 불량 씨감자를 보급하자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 활동에 앞장선 것이 이유였다.

두봉 주교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그 실태를 알리고, 전국적인 기도회도 열었다. 유신 정권은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개입과 10·26 사건으로 추방이 취소됐다. 그 배경에는 두봉 주교와 김 추기경·윤공희 대주교를 만나 의견을 경청한 교황의 현명함이 깔려 있었다. 두봉 주교는 1981년 농민 의식 계발을 위한 교육장과 도서관 등을 갖춘 안동 농민회관(현 프란치스꼬 청소년의 집)을 건립하기도 했다.

목자가 양을 사랑한 만큼 신자들 역시 두봉 주교를 깊이 존경했다. 사제수품 25주년인 1978년 은경축을 기념해 신자들이 십시일반 성당을 건립했다. 태화동성당이다. 사정이 어려운 신자들이 건립비 7000만 원 중 1900만 원을 마련하자 두봉 주교는 감격해 전 세계에 협조를 요청했다. 곳곳에서 지원금을 보내왔고, 프랑스에서 요양 중인 파리외방전교회 방여종(Paillet, 1906~1998) 신부도 3000만 원을 쾌척했다.

 

 

 

1992년 서울대교구 능곡본당 행주공소(현 의정부교구 행주본당) 신자들과 함께. 1990년 안동교구장직을 사임한 두봉 주교는 행주공소 옆 조그만 집으로 이사했다.

 

 

 


한국인 교구장 탄생을 위해 사임하다

1990년 두봉 주교는 61세 나이로 사임했다.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한국인이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방인(현지인) 주교와 사제를 양성해 어엿한 자치 교회로 성장하도록 돕는 게 파리외방전교회 정신이기도 했다. 애당초 두봉 주교는 1969년 안동교구장 임명조차 고사했었다. 이후로도 네 차례나 사임을 요구했는데, 마침내 교황청이 수락해준 것이었다. 후임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였던 고 박석희(1941~2000) 주교가 제2대 안동교구장이 됐다.

새 주교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두봉 주교는 시골 본당이나 공소 사목을 원했다. 김수환 추기경 초청으로 당시 서울대교구 능곡본당 행주공소(현 의정부교구 행주본당)로 갔다. 그때 한 할머니 신자가 자주 두봉 주교 주교관에 들러 밥과 반찬을 해주고 가곤 했다. 동네에서 불량아로 유명한 고등학생 손자가 두봉 주교를 만나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친손주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두봉 주교의 모습에 감화한 손자는 성실한 청년으로 자랐다.

두봉 주교는 1995~2003년 다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행주를 떠나 경북 의성군 봉양면 도양리 문화마을에 터를 잡았다. 고향으로 돌아오시라는 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요청이었다. 문화마을에 정착한 이유는 일대에 신자가 없었기 때문. 천상 선교사였던 그는 집 문패에 ‘두봉 천주교회’라 쓰고 모든 이를 반갑게 맞았다. 그렇게 두봉 주교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봉양 두씨가 됐다.

 

 

 

 

 

 

 

 

 

 

 

두봉 주교가 2023년 7월 24일 자신의 사제수품 70주년 감사 미사가 거행된 안동교구 의성성당에서 축하 공연에 나선 사물놀이패와 함께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우고 있다.

 

 

2022년 10월 26일 서울대학교 가톨릭공동체 연합회 초청으로 토크 콘서트에 나선 두봉 주교가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소탈하되 아낌없이 나누는 삶

“예수님께서 원하시며 우리가 건설해야 할 교회는 가난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가난한 교회이어야 합니다.”(1975년 2월 15일 명동대성당 사순 특강 중)

두봉 주교의 삶은 참으로 소탈했다. 한평생 그는 자신의 것이라곤 하나 없이, 남에게 내어주기만 했다. 자신은 귀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주교 문장과 사목 표어조차 정하지 않았다. 주교복도 교구 설정 직전 추기경으로 서임된 김 추기경의 것을 받아 입었다. 자신은 그렇게 살았지만, 사제들이 행여라도 가난한 교구 소속이라고 기죽을까 봐 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용기를 북돋워 줬다. 한 번은 개인 재산을 털어 열흘 동안 교구 사제단과 제주도 관광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좌우명처럼 사제들도 늘 ‘기쁘고 떳떳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였다. 2003년 두봉 주교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아 권 주교는 ‘기쁘고 떳떳하게’를 교구 사목표어로 정했다. 그리고 20년 뒤 두봉 주교의 사제수품 70주년 감사 미사 축사에서 권 주교는 말했다.

“주교님 같은 사제의 본보기인 큰 어른을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저 또한 힘들고 지치고 주저앉고 싶을 때 주교님의 모습에서 다시 힘을 받고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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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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