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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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믿음의 불꽃 타오르는 또랑또랑한 눈망울 담아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26. 미사보를 쓴 여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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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미사보를 쓴 여교우’, 유리건판, 1911년 3월 경기도 하우현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주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주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다. 아울러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가톨릭교회는 주님 부활의 참의미를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파스카의 신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다시 얻게 해 주는 의화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의화는 죄로 생겨난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은총에 대한 새로운 참여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가서 내 형제들에게 전하여라’(마태 28,10) 하고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셨듯이, 부활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양자 입양을 실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다. 이 양자 입양은 그분의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외아들의 생명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54)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은 ‘주님 부활’이라는 초자연적 생명,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생명 참여에 기초한다. 주님 부활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그리스도를 형제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 은총을 선사했다.

주님 부활에 참여시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주님은 당신께 대한 믿음이 없는 곳에선 당신의 전능을 드러내지도,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셨다. 오직 당신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그러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라고 하셨다.

주님께 대한 믿음은 ‘세례’로 이어진다. 세례와 부활은 서로 맞물려 어우러져 있다. 교회가 주님 부활 대축일에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인류의 죄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사명을 주신다.(마태 28,19 참조) 이 사명은 주님 말씀 그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에 모든 이를 참여시키라는 것이다. 이 말씀으로 사도들과 교회가 베푸는 세례는 예수님 세례에 참여하는 것이 되고, 그분이 당신의 세례와 함께 앞당겨 사셨던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포겔 원장 신부와 갓등이 교우들’, 유리건판, 1911년 4월 경기도 갓등이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의 상징 ‘미사보’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한국 사진 중에는 세례성사를 주제로 한 것은 없다. 다만 견진성사 사진은 몇 장 있다. 하지만 베버의 작품 중에는 ‘미사보를 쓴 여교우들’의 모습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미사보를 쓴 여교우들을 촬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3월 경기도 하우현 교우촌 성당을 방문할 때부터 미사보를 쓴 여교우들을 잊지 않고 촬영했다. 그는 하우현성당을 배경으로 미사보를 쓴 여교우들(본지 1798호 2025년 2월 23일 자 참조)을 촬영한 다음 따로 한 여교우를 단독 촬영했다.<사진 1> 산 능선을 배경으로 촬영한 여교우는 또랑또랑한 눈매를 지녔다. 아마도 베버 총아빠스는 그의 눈매에 매력을 느껴 촬영을 부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저 눈동자들! 이 산골짜기에서 신앙을 구했고 신앙은 그들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이 산골짜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93쪽)

사진 속 주인공은 갓 시집온 새댁인 듯하다. 앳된 얼굴에 왼손 약지에 쌍가락지를 낀 것이 이를 짐작케 한다. 산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신에 두껍고 심지가 박혀있는 밑창을 댄 것이 이채롭다.

베버 총아빠스는 하우현성당에 이어 갓등이성당을 방문해 미사보를 쓴 여교우들을 사진에 담았다. 1911년 4월 1일 갓등이성당을 방문한 그는 교우들의 열심한 신앙생활에 큰 감명을 받았다. “집집마다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릴 때도 열심한 신자들의 기도 소리는 끊일 줄 몰랐다. 사제는 셋인데 제대가 하나뿐이라 이른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지만, 좁은 경당은 벌써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미사 내내 싱그러운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41쪽)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미사보를 쓴 어머니와 아들’, 유리건판, 1911년 4월 경기도 갓등이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미사보 양 끝 잡고 쑥스러운 표정 지어

베버 총아빠스는 이 열심한 신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과 동행했던 포겔 원장 신부와 여교우 둘을 모델로 촬영했다.<사진 2> 플라치도 포겔 신부는 독일 마인탈의 성 루드비히수도원 원장으로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한국 방문 때 그를 초대했다. 서울에 지을 아빠스좌 수도원 부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백동수도원은 포겔 신부가 원장으로 있던 성 루드비히수도원보다 빨리 선교지에 세운 오틸리아연합회 최초의 아빠스좌 수도원이자 동아시아 첫 번째 성 베네딕도회 아빠스좌 수도원이 됐다.

미사보를 쓴 두 여교우 뒤에서 포겔 신부가 포즈를 취했다. 여교우들은 미사보 양 끝을 다소곳이 잡고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여교우들 모두 속바지를 입고 짚신을 신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미사보를 쓴 어머니와 아들도 촬영했다.<사진 3> 기와를 얹은 한옥 성당을 배경으로 했다. 젊은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카메라를 피했다. 모자의 옷차림과 손에 낀 가락지로 보아 그나마 살림이 넉넉한 집안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사진 4> ‘미사보를 쓴 여성 신자들과 루치우스 로트 신부·알렉시오 브란들 신부’, 랜턴 슬라이드, 1935년 10월(?),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 또는 원산주교좌성당(?),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느님의 종’ 로트 신부 은경축 행사 촬영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는 ‘미사보를 쓴 여성 신자들과 루치우스 로트 신부·알렉시오 브란들 신부’라는 제목의 랜턴 슬라이드가 있다.<사진 4> 로트 신부는 훗날 비오 12세 교황으로 즉위한 독일 뮌헨 주재 교황대사 에우제니오 파첼리 대주교의 비서로 일하다 1924년 한국에 파견됐다. 브란들 신부는 1925년 덕원 수도원에 파견됐다.

로트 신부는 덕원수도원과 선교 사업의 모든 책임을 맡았던 ‘덕원의 맏아들’로 우리말 「미사경본」과 「아이들의 미사 고해성사 안내」 등 다양한 전례서를 펴냈다. 그는 1949년 5월 북한 공산 당국에 체포돼 감옥살이하다 1950년 10월 3~4일 밤에 처형됐다.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심사 중이다.

이 사진의 촬영자와 장소·연도는 미상이다. 하지만 「분도통사」를 보면 1935년 10월 16일 루치우스 로트 신부의 첫 서원 25주년 은경축 행사 때 촬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로트 신부의 은경축을 축하하기 위해 브란들 신부가 이날 덕원수도원 또는 원산주교좌성당 노천 무대에서 종교극을 펼쳤는데 사진 속 아이들의 복장이 무대 의상인 듯하다.

1925년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한국을 재방문했을 때 루치우스 로트 신부는 연길 육도포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연길에 홍수가 나서 베버 총아빠스가 방문하지는 못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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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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