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교황 알현 때 통역, 교황 "따뜻하고 친절한 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현택 몬시뇰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격려하고 있다. 한현택 몬시뇰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기리며.
2013년 2월 로마에 유학을 왔을 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사임으로 로마의 사도좌는 공석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3월 13일 밤 로마 시내에 있는 모든 성당의 종이 울리며, 새 교황님의 선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나타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광장의 모인 군중에게 축복을 청하셨습니다. 이 겸손하신 모습을 보며, 왜 이런 기도가 떠올랐는지 몰랐지만, 이렇게 기도를 드린 기억이 납니다.
“주님, 겸손한 목자를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교황님께서 이토록 겸손하신 분이니 오늘 환호하는 사람들 중에 나중에는 갖가지 이유로 토라지는 사람도 생기겠지요. 그래도 저는 끝까지 교황님 편에서 교황님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2015년 9월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님의 부름을 받아 인류복음화성(현 복음화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교황청에서 일한다고 해도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을 앞두고, 교황님의 비서로부터 대통령님의 교황님 알현 때 통역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통역하는 날 아침, 긴장되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우황청심환을 먹고 통역을 하러 갔습니다. 마침내 교황님 집무실 문이 닫히고, 교황님과 대통령님 사이에 앉아 통역을 시작하자 오히려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 대화의 내용이 말도 못하게 좋았기에, 대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통역할 수 있었습니다. 또 대화 중에 두 분이 서로를 따뜻한 존중의 눈빛으로 바라보셨던 것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기회에 교황님의 비서께서는 제게 통역을 부탁하셨습니다. 한 번은 통역을 갔다가 너무 떨린 나머지 교황님을 “성하”(Santit?)라 부르지 않고, 입에 익숙한 단어인 “신부님”(Padre)이라고 부르고 말았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교황님께서는 당황한 저를 보고 싱긋 웃어 주셨습니다.
1년에 몇 번씩 뵙는 일이 잦아지자 교황님께서는 저를 보시면 “네가 또 왔구나. 잘 왔다”라고 반갑게 맞아주시며 “잘했다”, “고맙다”는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말씀 하나하나 참으로 귀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교황님은 참 친절하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에는 통역을 부탁받고, 교황님 집무실에 다소 일찍 도착해 밖에서 교황님께서 불러주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황님 비서께서는 밖에서 기다리는 저를 보시고, 자신과 함께 들어가 기다리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황님 집무실에 조용히 들어가 교황님께서 업무 보시는 것을 숨 죽이고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교황님께서 모든 문서에 서명을 마치시고 일어나시어 제 옆에 서셨을 때,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엉겁결에 “저는 복음화부에서 근무하는 아오스딩 신부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교황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신부님은 신부님부터 복음화하고 있습니까?”(Ti sei lasciato evangelizzare?)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곧바로 “예, 교황님. 저도 저부터 복음화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날 교황님의 이 질문은 제 마음속에 심겨진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자주 되새기며 저 심겨진 씨앗이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매번 교황님 말씀을 통역하는 것을 도와드린 후 교황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면, 세상에 그렇게 높으신 분 옆에 있다가 왔는데도 그렇게 높은 분 옆에 있다가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마치 편안한 할아버지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통역을 도와드릴 때마다 교황님께서는 자주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그 미소를 보고 나면 저의 동그랗게 말린 어깨도 펴지고, 긴장한 얼굴에도 미소가 피었습니다. 아? 그리운 교황님.
지난 9월 우리나라 주교님들께서 로마에 사도좌 정기방문을 오셨을 때 주교님들의 교황님 알현에 통역을 맡았던 순간은 교황님을 통역으로 도와드렸던 일들 중 가장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무려 90분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주교님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 통역하면서도, 주교님들을 뵐 때마다 문득 문득 전학 온 학교에서 형님들을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또 교황님께서 우리 주교님들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우리말로 옮기며 종종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통역하는 신부의 입이 마를까 말씀 중에 친히 제게 물도 따라 주셨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90분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특히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을 좋아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저는 그분의 몸짓과 말씀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성 베드로 광장의 노숙인 분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그분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바티칸 안에 그분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설치해주셨고, 개인용 텐트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성 베드로 광장을 감싸는 베르니니의 회랑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 그치지 않고, 노숙인 분들이 비를 맞지 않고 밤을 지낼 수 있는 지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올해 사순 시기 내내 병으로 고통받으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셨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 나가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하느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담으시고, 마지막 힘을 다해 ‘부활 대축일 교황 강복’(Urbi et Orbi)으로 세상과 인류를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이슬처럼 하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포도밭의 성실한 일꾼이 마지막까지 당신께 받은 사명을 몸과 마음으로 남김없이 수행하고 지상 순례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교황님을 하늘 아버지의 나라에 보내드리며, 소화 데레사 성녀의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바쁘게 지낼 것”이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온 세상의 본당 신부님’으로서 모든 영혼을 사랑하신 교황님께서도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하늘 나라에서 당신의 전구로 우리를 계속 살뜰히 보살펴주실 것입니다.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산타 마르타 집으로 달려가 목관 위에 누우신 교황님 앞에서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리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사랑하는 교황님, 땅 위에서 교황님을 뵐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습니다. 이제 교황님께서 성인들 가운데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심을 믿으며 슬픔을 이기려 합니다. 저도 제게 땅 위에서 주어진 날들을 주님의 제자로 열심히 살다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다시 기쁘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한현택 몬시뇰 / 교황청 복음화부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