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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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무지갯빛 노년 생활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노인이 살아야 사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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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뭐하지? 뭐라도 하겠지.”(은퇴 직전)

“오늘은 뭐하지? 어디 가야 되지?”(은퇴 직후)

평생 다닌 직장과 일터에서 은퇴하기 전후 흔히 하는 말들이다. 은퇴 전 막연한 계획을 세우다가 은퇴 후엔 마땅히 ‘갈 곳’과 ‘할 일’이 없는 게 자신과 가정을 위해 억척같이 살아온 이들의 실상이다. 여행도 쉼도 얼마 지나면 한계가 온다.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든 예외 없이 마주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5명 중 1명이 이런 상황에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점점 늘어날 전망으로 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사회도 활력을 잃게 되는 시대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위례 인생학교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를 위한 학교로 2020년 개교했다. 인생후반설계 수업. 백만기 교장 제공

대한민국은 노인의 나라 
2024년 말 초고령사회로 진입 
고령사회 진입 7년 만에 65세 인구 20 넘어


다른 나라들은  
프랑스는 교육·소통의 장, 제3기 인생대학 마련 
영국은 노인들끼리 수업 만드는 형태로 발전 




가속 페달 밟은 초고령화

전 세계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는 20개국이 넘는다. 하지만 속도가 다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가 된 지 7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당초 일본의 기록인 11년보다 4년이나 빠른 속도다.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시기는 2000년으로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들어선 것이다. 1865년 가장 먼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프랑스는 고령사회까지는 가는 데 115년이 걸렸다. 미국은 73년, 독일은 40년이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고령화는 6·25전쟁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가 차례로 노인 인구에 편입된 영향이다. 앞으로 14년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2039년엔 노인 인구가 2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은퇴 후 30년, 어떻게 살 것인가

예견은 했지만,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더해지면서 감당하지 못할 속도가 된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이사 한정란(베로니카, 한서대) 교수는 “교육만 제대로 이뤄져도 노인 문제의 반 이상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력 감소에 따른 생산성 악화와 경세성장률 하락, 국민연금 불균형 등 초고령으로 인한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노인 자체에 대한 교육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예전과 달리 노인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건강한 노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을 찾아주는 곳도, 할 일도 없다. 이 시점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떠오른다. 바로 실존과 고독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고독부 신설이 느는 추세가 이를 방증한다. 또 건강하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진 않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멈춘 뒤 어디를 향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남은 세월은 30여 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해외에선 제3기 인생대학(U3A)

이미 19세기 중엽 고령화가 시작된 프랑스는 가장 먼저 노인을 위한 교육과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1975년 지자체와 대학이 나서 만든 은퇴자를 위한 대학 U3A(University of 3rd Age, 제3기 인생대학)가 시발점이다. 전체 생애를 4주기로 나누는데, 제1기는 태어나 학습하고 성장하는 시기, 제2기는 사회에서 생산하고 활동하는 시기, 제3기는 퇴직 후 노년의 시기, 제4기는 임종 시기다. U3A는 이 세 번째 시기를 건강한 노년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대학이다. 일반 대학 안에 있고, 대학 교육과정을 준용해 학점을 이수하고 수료하는 형식이다.

프랑스의 U3A가 지자체와 대학의 영역이 강했다면, 영국으로 옮겨가면서 학습자 주도적인 형태로 변형됐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지역 사회가 공간을 만들어 노인끼리 수업하는 형태다. 누구라도 대학을 만들 수 있는 개념이다. 현재 영국 전역의 1000개 넘는 대학에서 40만 명 이상이 함께하고 있다. 최근 영국 U3A 회원들은 키더민스터 역의 긴 둑을 산림 지대로 탈바꿈시키고, 허브 정원을 심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커뮤니티 철도 파트너십 상’ 중 ‘It’s Your Station’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지역 사회를 살리는 데 노인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위례 인생학교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를 위한 학교로 2020년 개교했다. 요들반 학생들. 백만기 교장 제공
 
위례 인생학교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를 위한 학교로 2020년 개교했다. 위례 인생학교의 산상음악회. 백만기 교장 제공


만족도 높은 인생학교 
회원 540여명, 저렴한 비용에 다양한 과목
자체 모임과 전시회 등 활발한 참여와 운영 


인생학교의 강점 
민간 주도로 확장성과 창의성 뛰어나 
성당 공간 활용 등 가능성 풍부 





인생학교

“사회생활하느라 전혀 접하지 못했던 악기 연주나 스케치도 해보고 있습니다. 외국어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일흔의 나이에 새 인생이 펼쳐졌습니다.”(위례 인생학교 학생 박규석씨)

“학생으로 왔다가 일본어 전공을 살려 지금은 선생으로 있습니다. 반응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가르치는 보람에 여기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인생학교 일본어 교사 고미숙씨)

한국형 U3A(제3기 인생대학) ‘위례 인생학교’(경기 성남시 소재)의 모습이다. 2020년 개교한 위례 인생학교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를 위한 학교다. 운영위원과 강사 모두 자원봉사자로 구성됐다. 따라서 강사료가 따로 없고 회비만으로 운영된다. 회원은 처음 1만 원만 내면 된다. 재료비 등 운영비 명목으로 과목당 3개월에 2만 원을 내고, 10만 원이면 1년간 사진촬영부터 금융과 경제, 오카리나, 요들송, 영어·일본어, 철학사, 심리상담 등 20여 개 전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한 달에 1만 원이 안 되는 셈이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수준이다. 이조차 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수강료를 줄일 생각도 하고 있다.



노인이 행복한 사회, 배우고 나누고 다시 사회로

이런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강사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강사가 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위례 인생학교’를 이끌고 있는 김상형 교장도 학생으로 왔다가 가치관이 맞아 교장까지 하게 됐다.

설립 후 코로나19를 겪고도 현재 540명의 회원이 있고 매 학기 회원 중 300여 명이 수업을 등록한다. 강사도 40여 명이다.

U3A를 표방해 위례 인생학교를 설립한 백만기(스테파노) 초대 교장은 이미 2013년 문을 연 ‘분당 아름다운 인생학교’를 통해 그 가능성을 봤다. 2020년 당시 150여 명의 회원이 25개 강좌를 운영하는 궤도에 오르자 교장직을 후임에게 넘기고 위례 인생학교를 세운 것이다.

회원 수가 보여주듯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동아리도 결성해 자체 모임도 갖고 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학예회와 전시회도 연다. 학생들은 서로 배움에서 그치지 않고 한 달에 두 번은 성남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집’(대표 김하종 신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김상형 교장은 “초고령사회에선 노인이 행복해야 사회도 행복할 수 있다”며 “스스로 생동감을 얻어 나눔의 삶을 사는 인생학교 학생들은 노인이 혜택만 받는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히 사회에 필요한 시민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스레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인생 후반기에 다시금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백만기 교장은 “은퇴 후 가장 큰 문제는 ‘소외’”라며 “인생학교의 연결고리가 노인 고독과 자살률을 간접적으로나마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백만기(왼쪽) 초대 교장과 김상형 교장.



마흔에 시작하는 은퇴 공부

「마흔에 시작하는 은퇴 공부」의 저자이기도 한 백 교장은 “금융업에 종사하다 마흔에 은퇴를 목표로 세우고 50대 초반에 사표를 냈다”며 “대입 시험을 고3에 준비하는 것과 고1부터 준비하는 데에 차이가 있듯, 은퇴 준비도 일찍 할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닥쳐서 하거나 뭐든 되겠지 해선 절대 안 됩니다. 늘어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고립되죠. 은퇴 준비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찾아도 은퇴 준비의 반은 이룬 겁니다. 돈만 좇거나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규정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배워야 합니다.”



물려주는 지혜

백 교장은 휴먼 라이브러리(인간 도서관)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람이 한 권의 책이 돼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들려주는 차원이다. 실제로 백 교장을 통해 재취직을 한다든지 인생길을 다시 개척하는 이들이 있다. 백 교장은 “인생학교에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다”며 “젊은 세대와도 관계하면서 세대 간 소통에 물꼬를 트는 좋은 제도”라고 했다.

한정란 교수는 “초고령사회는 다른 말로 다세대 공존사회”라며 “세대 자체는 독특한 특성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속하게 되는 연속되는 과정이기에 한데 어울리며 이해를 넓히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초고령사회의 해법

한국에서는 노인복지관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사회 노인을 위한 종합복지시설이다. 여기서 교육 부분이 가장 크게 차지하며 사회복지사가 그 몫을 담당한다. 한 교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지만, 노인 교육에 대한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시행하는 게 아니므로 욕구별로 나열하는 형식이라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장은 “인생학교가 복지관과 목표는 같을 순 있지만, 민간이 주도하기 때문에 확장성과 창의성에서 차이가 크게 나고, 다양한 인력이 확보돼 예산도 필요 없다”며 “초고령사회의 주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대학·교회 등에서도 인생학교를 새로운 모델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세종시·서초구 의회 등이 견학 후 시행을 논의 중이며, 충북 서원대학교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지난해 업무협약을 맺고 ‘청주 인생학교’ 현판식을 열었다. 진주 삼일교회와 새문안교회도 인생학교를 모델로 삼아 ‘진주 인생학교’ ‘50+ 아카데미’를 출범했다. 백 교장은 “지역에 맞게 소규모로도 시행할 수 있다”며 “전국에 인생학교 100개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간만 있다면

이처럼 각 지역에서 인생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지만, 공간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실정이다. 백 교장은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공공기관이 적지 않고, 학력인구 감소로 빈 교실, 경로당 등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인생학교는 평일에 운영하기 때문에 성당에서도 남는 공간을 내어준다면 오며 가며 가톨릭교회 분위기를 접하면서 자연스러운 전교활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도 은퇴하면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합니다. 예수님도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당신이 계신다셨잖아요. 장을 마련해주면 길을 잃었던 시니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은퇴 이후 삶이 행복해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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