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정연정(티모테오) 몬시뇰이 콘클라베 시작부터 새 교황의 선출과 발표 순간까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끽한 설렘과 감동, 환희의 순간을 기록해 전해 왔다. 정 몬시뇰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숨을 멈추고 마음을 활짝 열어 새 교황의 축복에 흠뻑 빠져들었다“며 ”예수님 마음을 지닌 사목자를 새 교황으로 선출한 하느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다”고 전했다.
지난 4월 28일 콘클라베 날짜가 공지됐다. 성 베드로 광장 주변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직자부 앞에 만들어진 스탠드형 부스에 공간이 부족하여 맞은편 주교부 앞에도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등록한 취재진이 5천 명가량이라고 했다.
광장에서 ‘천사의 성’으로 연결되는 ‘화해의 길’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배경으로 좋은 화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명당 자리를 선점하느라 언론사들 경쟁이 뜨거웠다. 기자들은 언어와 관계없이 취재에 응할 대상들을 섭외하느라 사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반 군중들도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거나 나름의 특종 사진을 만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군중들의 얼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빈 자리를 채워줄 착한 목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5월 7일 오후 4시 30분에 새 교황의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133명의 추기경 행렬이 시작됐다. 새 교황을 뽑을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경당으로 입당하고 개별적인 선서 장면이 방송으로 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성령이 교회를 돌보고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콘클라베 첫 번째 투표에서 새 교황은 선출되지 않았다. 이날 저녁 9시 무렵에 무려 10분여 동안이나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콸콸 터져 나온 시커먼 연기를 보면서도, 절망스러운 장탄식을 단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밝은 미소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색깔의 기대감을 안고 내일을 약속하며 흩어졌다.
다음 날인 5월 8일 오전 11시 50분쯤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에서 희미한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더니 이내 순식간에 시커먼 검은 연기가 뿜어 나왔다. 결국 콘클라베의 세 번째 투표까지도 새 교황 선출은 무산됐다. 그런데 전날 저녁때와는 달리 검정 연기의 양이 적었고 연한 흰색을 띤 잿빛 연기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막연했던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추기경들의 표가 거의 한쪽으로 모였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중천의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저녁 6시가 채 안 되어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약 4만 5천 명의 군중들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귀가 찢어질 듯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곳곳에서 태극기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굴뚝에서 흰 연기가 펄펄 쏟아져 나왔다.
약 1시간 후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의 장막이 열리고, 도미니크 맘베르티 수석 부제 추기경이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장엄하게 선포했다. 그런데 많은 이의 예상과 달리 뜻밖의 이름이 호명되자 주위가 술렁였다. 조금 후 군중들 사이에서 새 교황은 미국 출신 프레보스트 추기경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곧이어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가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라는 첫 마디에 이어 새 교황은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즉 ‘로마와 온 세상에’ 첫 축복을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숨을 멈추고 마음을 활짝 열어 새 교황의 축복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번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아프리카 출신 추기경한테서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목자에게 투표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양 냄새 나는 목자’로 표현했고, 그 모습으로 선종하기 바로 전날까지 교황직을 수행했다. 새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페루에서 주교로 사목할 때 작은 말을 타고 산 위에 사는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모습과 엘니뇨로 인한 수해 때에 긴 장화를 신고 피해당한 신자들에게 달려갔던 사진들을 보았다.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목자’를 새 교황으로 선출한 하느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했다.
‘논 세데 바칸떼, 체 일 파파(Non Sede vacante, c’? il Papa).’ 이탈리아어로 ‘(교황좌는) 공석이 아니다. 교황이 있다!’는 뜻이다. 새 교황의 선출로 ‘슬픔과 절망’이 ‘기쁨과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 짤막하고 단순한 표현 안에 교회의 신비, 신앙의 신비, 부활의 신비가 담겨 있다.
이제 새 교황 레오 14세의 사목 표어인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In Illo uno unum)된 모습으로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사도 13,52 참조),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묵시 7,17 참조), 주님을 알고 따라야 한다(요한 10,27).’
천상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지상의 레오 14세 교황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우리를 앞서 걸어가면서 ‘희망의 순례자’로 이끌고 있다.
글 _ 정연정 티모테오 몬시뇰(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원장)